김시찬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수찬, 대사간,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치명(穉明)
초천(苕川)
시호
충정(忠正)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00년(숙종 26)
사망 연도
1766년(영조 42)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대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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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수찬, 대사간,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명(穉明), 호는 초천(苕川). 홍주(洪州) 출신. 김상용(金尙容)의 현손이며, 김광현(金光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수민(金壽民)이고, 아버지는 좌랑 김성도(金盛道)이며, 어머니는 신상(申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1년(경종 1) 진사가 되었으며, 1735년(영조 1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 노론에 속하였으며, 예문관검열을 거쳐,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로 조태구(趙泰耉)·유봉휘(柳鳳輝)·이광좌(李光佐) 등 소론일파의 처벌을 청하였다가 당시 탕평책에 반대한다 하여 흑산도로 유배되었다가 1740년(영조 16) 수찬(修撰)으로 복관되었고, 1755년(영조 31)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1759년(영조 35) 부제학(副提學)을 제수받고 이를 사양하는 글을 바쳤으나, 그 글 속에 불경스러운 구절이 있다 하여 다시 흑산도에 유배되어 1764년(영조 40) 풀려나왔다. 1806년(순조 6)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초천집(苕川集)』이 있으며,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국조방목(國朝榜目)』
『뇌연집(雷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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