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749년, 화승 의겸 등이 그린 영산회괘불도 및 괘불도의 밑그림.
내용
본존 석가여래는 키 모양의 커다란 거신광(擧身光)을 배경으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다. 오른손을 무릎까지 길게 내렸으며, 왼손은 가슴 높이로 들어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석가여래의 좌우에는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꽃 봉오리를 든 보현보살이 서 있다.
삼존불의 위쪽에는 상반신만 표현된 다보여래와 아미타여래가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아미타화불이 표현된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백의(白衣)를 입고 있으며, 정병(淨甁)을 두 손으로 잡고 있다. 대세지보살은 정병이 묘사된 보관을 쓰고 합장하고 있다.
본존의 가슴에는 커다란 만자(卍字)가 표현되어 있으며, 이외 수많은 범자(梵字)가 불보살의 신체에 새겨져 있다. 석가여래의 두광(頭光) 좌우에는 연꽃대좌에 앉아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과 설법인을 한 노사나불이 표현되어 있어 삼신불을 의미한 것으로도 보인다.
1661년 간행된 의식집인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는 불보살을 의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청하는 거불(擧佛) 절차가 있는데,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의 3불 4보살은 이 『오종범음집』의 거불 절차를 도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내소사 「영산회괘불탱」[1700]](E0012492)에 처음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각 존상의 명칭이 화면에 병기되어 있어, 존상들이 석가모니불 · 다보여래 · 아미타여래의 3불과 문수 · 보현 · 관음 · 대세지의 4보살임을 알 수 있다.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의 제작을 주도한 수화승 의겸은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승으로, 개암사본을 포함하여 [청곡사 「영산회괘불탱」[1722]](E0056265), [안국사 「영산회괘불탱」[1728]](E0034538), [운흥사 「괘불탱」[1730]](E0040426), [다보사 「괘불탱」[1745]](E0067108) 등 동일한 도상의 괘불 5점을 그렸다. 의겸이 그린 괘불도는 모두 영산회 의식에 봉청되는 청중들이 단순화된 특징이 있다.
한편, 통도사성보박물관에는 개암사 괘불탱의 초본이 전한다. 크기와 존상들의 배치, 존상 사이의 간격 등을 고려해 볼 때 개암사 괘불탱을 조성하기 위해 제작한 초본임을 알 수 있다. 이 초본은 현존하는 것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초본인 동시에 괘불화의 밑그림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초본과 완성본의 제작 과정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개암사영산회괘불탱』(문화재청, 성보문화재연구원, 2016)
- 『개암사 괘불』(국립중앙박물관, 2014)
- 『통도사성보박물관 괘불탱 특별전: 24 부안 개암사 괘불탱』(통도사성보박물관, 2011)
- 『특별전도록5: 한국의 불화초본』(통도사성보박물관, 1992)
논문
- 신광희, 「부안 개암사 괘불화」(『통도사박물관 괘불탱 특별전: 24 부안 개암사 괘불탱』, 통도사박물관, 2011)
- 정명희, 「의식집을 통해 본 괘불의 도상적 변용」(『불교미술사학』 2, 통도사 성보박물관, 불교미술사학회, 2004)
- 정명희, 「조선 후기 괘불탱의 연구」(『미술사학연구』 242·243, 한국미술사학회, 200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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