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사 영산회 괘불탱 및 초본 ( )

부안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부안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회화
작품
국가유산
1749년, 화승 의겸 등이 그린 영산회괘불도 및 괘불도의 밑그림.
이칭
이칭
개암사 영산회괘불도 및 초본
작품/서화
창작 연도
1749년
작가
의겸 등
소장처
개암사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 및 초본(開巖寺 靈山會 掛佛幀 및 草本)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불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97년 08월 08일 지정)
소재지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 개암사 (감교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 및 초본은 1749년 화승 의겸 등이 그린 영산회괘불도 및 괘불도의 밑그림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고, 거기에 더해 관음과 대세지보살, 다보여래와 아미타여래가 그려진 칠존 형식의 영산회괘불이다. 18세기의 대표적 불화승인 의겸의 주도하에 총 13명이 참여하여 완성하였다. 삼베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1,321㎝, 가로 917㎝이다.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목차
정의
1749년, 화승 의겸 등이 그린 영산회괘불도 및 괘불도의 밑그림.
내용

1749년(영조 25) 수화승 의겸(義兼)의 주도하에 영안(永眼), 희민(敏熙), 호밀(好密), 인영(印影), 관성(冠性), 태총(太聰), 색민(色敏) 등 모두 13명의 화승이 제작에 참여하여 완성하였다. 삼베 바탕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세로 1,321㎝, 가로 917㎝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사에 있으며,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본존 석가여래는 키 모양의 커다란 주1을 배경으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다. 오른손을 무릎까지 길게 내렸으며, 왼손은 가슴 높이로 들어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석가여래의 좌우에는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꽃 봉오리를 든 보현보살이 서 있다.

삼존불의 위쪽에는 상반신만 표현된 다보여래와 아미타여래가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아미타화불이 표현된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백의(白衣)를 입고 있으며, 정병(淨甁)을 두 손으로 잡고 있다. 대세지보살은 정병이 묘사된 보관을 쓰고 합장하고 있다.

본존의 가슴에는 커다란 만자(卍字)가 표현되어 있으며, 이외 수많은 범자(梵字)가 불보살의 신체에 새겨져 있다. 석가여래의 주2 좌우에는 연꽃대좌에 앉아 주3을 한 비로자나불과 설법인을 한 노사나불이 표현되어 있어 삼신불을 의미한 것으로도 보인다.

1661년 간행된 의식집인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는 불보살을 의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청하는 거불(擧佛) 절차가 있는데,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의 3불 4보살은 이 『오종범음집』의 거불 절차를 도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내소사 「영산회괘불탱」[1700]에 처음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각 존상의 명칭이 화면에 병기되어 있어, 존상들이 석가모니불 · 다보여래 · 아미타여래의 3불과 문수 · 보현 · 관음 · 대세지의 4보살임을 알 수 있다.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의 제작을 주도한 수화승 의겸은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승으로, 개암사본을 포함하여 청곡사 「영산회괘불탱」[1722], 안국사 「영산회괘불탱」[1728], 운흥사 「괘불탱」[1730], 다보사 「괘불탱」[1745] 등 동일한 도상의 괘불 5점을 그렸다. 의겸이 그린 괘불도는 모두 영산회 의식에 봉청되는 청중들이 단순화된 특징이 있다.

한편, 통도사성보박물관에는 개암사 괘불탱의 초본이 전한다. 크기와 존상들의 배치, 존상 사이의 간격 등을 고려해 볼 때 개암사 괘불탱을 조성하기 위해 제작한 초본임을 알 수 있다. 이 초본은 현존하는 것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초본인 동시에 괘불화의 밑그림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초본과 완성본의 제작 과정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의의 및 평가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 및 초본은 괘불과 초본이 함께 남아 있는 희귀한 예로서, 조선 후기 괘불화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의겸이 그린 괘불도 중 마지막 작품으로, 선행 도상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자세, 채색, 문양 등에 일부 변화를 주어 개암사본만의 개성을 확보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개암사영산회괘불탱』(문화재청, 성보문화재연구원, 2016)
『개암사 괘불』(국립중앙박물관, 2014)
『통도사성보박물관 괘불탱 특별전: 24 부안 개암사 괘불탱』(통도사성보박물관, 2011)
『특별전도록5: 한국의 불화초본』(통도사성보박물관, 1992)

논문

신광희, 「부안 개암사 괘불화」(『통도사박물관 괘불탱 특별전: 24 부안 개암사 괘불탱』, 통도사박물관, 2011)
정명희, 「의식집을 통해 본 괘불의 도상적 변용」(『불교미술사학』 2, 통도사 성보박물관, 불교미술사학회, 2004)
정명희, 「조선 후기 괘불탱의 연구」(『미술사학연구』 242·243, 한국미술사학회, 2004)
주석
주1

부처나 보살의 온몸에서 나오는 빛. 우리말샘

주2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탱화 따위에서 머리 언저리에 동그라미를 그려 나타낸다. 우리말샘

주3

금강계 대일여래의 인상(印相). 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쥔다. 오른손은 불계를,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깊은 뜻을 나타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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