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9년(영조 25) 수화승 의겸(義兼)의 주도하에 영안(永眼), 희민(敏熙), 호밀(好密), 인영(印影), 관성(冠性), 태총(太聰), 색민(色敏) 등 모두 13명의 화승이 제작에 참여하여 완성하였다. 삼베 바탕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세로 1,321㎝, 가로 917㎝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사에 있으며,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본존 석가여래는 키 모양의 커다란 주1을 배경으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다. 오른손을 무릎까지 길게 내렸으며, 왼손은 가슴 높이로 들어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석가여래의 좌우에는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꽃 봉오리를 든 보현보살이 서 있다.
삼존불의 위쪽에는 상반신만 표현된 다보여래와 아미타여래가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아미타화불이 표현된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백의(白衣)를 입고 있으며, 정병(淨甁)을 두 손으로 잡고 있다. 대세지보살은 정병이 묘사된 보관을 쓰고 합장하고 있다.
본존의 가슴에는 커다란 만자(卍字)가 표현되어 있으며, 이외 수많은 범자(梵字)가 불보살의 신체에 새겨져 있다. 석가여래의 주2 좌우에는 연꽃대좌에 앉아 주3을 한 비로자나불과 설법인을 한 노사나불이 표현되어 있어 삼신불을 의미한 것으로도 보인다.
1661년 간행된 의식집인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는 불보살을 의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청하는 거불(擧佛) 절차가 있는데,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의 3불 4보살은 이 『오종범음집』의 거불 절차를 도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내소사 「영산회괘불탱」[1700]에 처음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각 존상의 명칭이 화면에 병기되어 있어, 존상들이 석가모니불 · 다보여래 · 아미타여래의 3불과 문수 · 보현 · 관음 · 대세지의 4보살임을 알 수 있다.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의 제작을 주도한 수화승 의겸은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승으로, 개암사본을 포함하여 청곡사 「영산회괘불탱」[1722], 안국사 「영산회괘불탱」[1728], 운흥사 「괘불탱」[1730], 다보사 「괘불탱」[1745] 등 동일한 도상의 괘불 5점을 그렸다. 의겸이 그린 괘불도는 모두 영산회 의식에 봉청되는 청중들이 단순화된 특징이 있다.
한편, 통도사성보박물관에는 개암사 괘불탱의 초본이 전한다. 크기와 존상들의 배치, 존상 사이의 간격 등을 고려해 볼 때 개암사 괘불탱을 조성하기 위해 제작한 초본임을 알 수 있다. 이 초본은 현존하는 것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초본인 동시에 괘불화의 밑그림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초본과 완성본의 제작 과정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 및 초본은 괘불과 초본이 함께 남아 있는 희귀한 예로서, 조선 후기 괘불화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의겸이 그린 괘불도 중 마지막 작품으로, 선행 도상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자세, 채색, 문양 등에 일부 변화를 주어 개암사본만의 개성을 확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