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별장이 되었다. 1269년(원종 10) 임연(林衍)이 원종을 폐위하고 동생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세운 사건으로 세자로 있던 왕이 파사부(婆娑府: 九連城)까지 갔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다.
1282년(충렬왕 8) 5월에 왕의 측근에 있으면서 안전하게 보좌한 공이 있는 신하에게 포상을 내릴 때, 7품인 별장으로서 5품에까지 오를 수 있도록 하는 특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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