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출생. 김기범(金箕範) 목사의 5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1910년에 인천 영화소학교를 마친 후 1915년부터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였으며, 이화학당대학 예과, 이화학당 유치사범과에서 수업을 마치고 1932년에 미국 애반스톤에 있는 국립교육대학에서 3년간 유학하였다.
해방 이후 1947년에 미국 콜럼비아대학교 사범대학 대학원에서 대학 행정학의 연구과정을 1년간 이수하였으며, 1956년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26년 이화학당 유치사범 교원을 시작으로 이화보육학교 교원 및 부속 이화유치원 원장, 그리고 이화여자전문학교 보육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 부장, 총무처장, 그리고 2년에 걸친 총장직무대리역을 수행하였다.
국내 최초의 사립 사범대학인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의 설립인가를 1949년에 받아 초대 학장을 역임하였으며 1968년에 이화 봉직 42년간을 마감하고 정년퇴임하였다.
한국 유아교육의 선각자로, 진보주의 교육이론을 교육실천에 접목하였다. 뿐만 아니라 초·중등교원 양성체제에 관한 미래지향적 구상을 실천하고 각급 학교 교원자격의 전문화를 솔선 추진하였다.
사범대학의 설립 이후에는 유치원 초등·중등교사를 4년제 대학수준에서 양성하게 하였으며 중등교사를 위해 과학교육과 사회생활 교육의 통합교과 운영을 일찍이 시도하였다. 또한 최초의 특수교육과 시청각교육(교육공학)과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첨단시설을 갖춘 부속 유치원, 부속 초등학교, 부속 중·고등학교를 운영하여 교생실습에 만전을 기하였다.
사회봉사 영역에서는 문교부 대학교육위원, 대한여학사협회 회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및 집행위원, 매향여자중·상업고등학교 재단이사장, 대한 YWCA 연합회 회장 등 많은 분야에서 활동을 하였다.
특히 1951년부터 약 20여년 간 책임을 지고 발전시켜 온 한국어린이교육협회(미국ACEI 한국지부)는 그간 유치원 초등교사의 재훈련과정을 마련하여 현장교육의 질적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서울특별시 교육공로자표창, 대한교육연합회 교육특수공로상, 인촌상, 그리고 ‘자랑스런 이화인상’ 외 많은 상을 받았으며 평생 독신으로 고귀한 인품과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