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개(天開). 안동 출신. 할아버지는 김추길(金秋吉)이고, 아버지는 감사 김성구(金聲久)이며, 어머니는 민환(閔桓)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7년(숙종 13)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고, 1687년(숙종 13)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언(正言) · 지평(持平)을 역임하였고, 1693년에는 도당록(都堂錄)에 오르고 수찬(修撰)이 되었다. 1690년 정언으로 재직 중 세자책봉하례(世子冊封賀禮)에 참석하지 않은 영돈녕부사 조사석(趙師錫)을 “교만하고 인신(人臣)의 예(禮)가 없다.”고 탄핵하여 귀양보냈다.
그런데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숙종의 미움을 받아 실각하고 소론이 득세하자, 파직당하여 명천(明川)으로 귀양갔다. 저서로는 『북천록(北遷錄)』과 잡저(雜著)가 전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한국계행보』(조용승, 198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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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정묘식년사마방목(丁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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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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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파직 및 귀양 : 『숙종실록』 27권, 1694년(숙종 20) 8월 24일. "임원구·이희무가 조사석의 무죄와 김여건·이동근의 처벌을 논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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