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건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정언, 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천개(天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의성(義城)
  • 사망 연도1697년(숙종 2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수찬(修撰)
  • 출생 연도1660년(현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양수 (청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개(天開). 안동 출신. 할아버지는 김추길(金秋吉)이고, 아버지는 감사 김성구(金聲久)이며, 어머니는 민환(閔桓)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7년(숙종 13)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고, 1687년(숙종 13)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언(正言) · 지평(持平)을 역임하였고, 1693년에는 도당록(都堂錄)에 오르고 수찬(修撰)이 되었다. 1690년 정언으로 재직 중 세자책봉하례(世子冊封賀禮)에 참석하지 않은 영돈녕부사 조사석(趙師錫)을 “교만하고 인신(人臣)의 예(禮)가 없다.”고 탄핵하여 귀양보냈다.

그런데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숙종의 미움을 받아 실각하고 소론이 득세하자, 파직당하여 명천(明川)으로 귀양갔다. 저서로는 『북천록(北遷錄)』과 잡저(雜著)가 전한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한국계행보』(조용승, 1980)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정묘식년사마방목(丁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82])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파직 및 귀양 : 『숙종실록』 27권, 1694년(숙종 20) 8월 24일. "임원구·이희무가 조사석의 무죄와 김여건·이동근의 처벌을 논계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