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례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군수, 첨지중추부사조사오위장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수곡(修谷)
  • 화보(和父)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818년(순조 1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첨지중추부사조사오위장
  • 출생 연도1740년(영조 1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종 (안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군수, 첨지중추부사조사오위장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화보(和父), 호는 수곡(修谷). 아버지는 김교행(金敎行)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7년(정조 1) 생원이 되고, 1793년에는 향천(鄕薦: 향촌의 추천)을 받아 동몽교관에 올랐다.

그 뒤 벼슬이 군수에 이르렀고, 1810년(순조 10) 사자(嗣子: 대를 이을 왕자)를 시종한 공으로 첨지중추부사조사오위장(僉知中樞府事曹司五衛將)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근엄하고 준수하며 아울러 인덕을 지녔다.

군수로 고을을 다스릴 때는 언제나 명성을 구하지 않고, 오직 유교적 교화만을 숭상하여 인정(仁政)을 베풀기에 노력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학문을 좋아하고 사치를 싫어하였으며, 특히 유학에 심취하여『가례(家禮)』와 『근사록(近思錄)』을 옆에 두고 그 정신구현에 항상 노력하였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노주집(老洲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