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경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공안부윤, 조군도총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연성군(蓮城君)
  • 시호위정(威靖)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산(安山)
  • 사망 연도1419년(세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개성부유후
  • 출생 연도1345년(충목왕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완기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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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공안부윤, 조군도총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산(安山). 아버지는 진주목사 김성경(金星慶)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고려 때에 벼슬하였으나, 새 왕조 창업에 찬성하고 이성계(李成桂)를 지지하였다.

조선 개국 후 삼군절도사를 거쳐 이조전서를 지냈는데, 인사관리를 잘하였다. 1396년(태조 5)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가 되어 전라도와 충청도 각지의 성을 수축하고 군비를 점검하는 한편 병선(兵船)의 허실을 조사하였다.

1400년 이방간(李芳幹)의 난이 일어나자 한성부윤으로서 이방원(李芳遠: 뒤에 태종)에 협력하여 이를 진압,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고,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졌다. 그 뒤 공안부윤(恭安府尹)이 되었는데, 병을 핑계로 명나라의 사행을 회피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404년(태종 4)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 1408년 개성부유후(開城府留後)를 역임하고, 1410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용맹하고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나, 재물을 좋아하여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시호는 위정(威靖)이다.

참고문헌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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