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경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공안부윤, 조군도총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위정(威靖)
이칭
연성군(蓮城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45년(충목왕 1)
사망 연도
1419년(세종 1)
본관
안산(安山)
주요 관직
개성부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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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공안부윤, 조군도총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산(安山). 아버지는 진주목사 김성경(金星慶)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고려 때에 벼슬하였으나, 새 왕조 창업에 찬성하고 이성계(李成桂)를 지지하였다.

조선 개국 후 삼군절도사를 거쳐 이조전서를 지냈는데, 인사관리를 잘하였다. 1396년(태조 5)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가 되어 전라도와 충청도 각지의 성을 수축하고 군비를 점검하는 한편 병선(兵船)의 허실을 조사하였다.

1400년 이방간(李芳幹)의 난이 일어나자 한성부윤으로서 이방원(李芳遠: 뒤에 태종)에 협력하여 이를 진압,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고,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졌다. 그 뒤 공안부윤(恭安府尹)이 되었는데, 병을 핑계로 명나라의 사행을 회피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404년(태종 4)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 1408년 개성부유후(開城府留後)를 역임하고, 1410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용맹하고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나, 재물을 좋아하여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시호는 위정(威靖)이다.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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