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주 출생. 195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60년 필리핀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영주 · 봉화 · 영양 지역에서 민주공화 당으로 입후보하여 1963년부터 1980년 5·17사태 때까지 제6·7·8·10대 국회의원 당선자로 오랜 기간 의정활동을 하였다.
여당 당료로서의 편력은, 1963년 민주공화당 기획부 차장, 1966년 당기위 원장, 1967년 원내총무와 대변인으로 이어졌으며, 1971년 제8대국회 재무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본 뒤 1973년 안동문화방송 회장을 거쳐, 1979년 4선의원으로 민주공화당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80년 5·17비상계엄 확대조처로 국회가 해산되고 정당활동이 전면금지된데다 그해 11월 12일 정치쇄신법에 따른 정치활동 규제 대상자로 되어 더 이상 의정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 김영삼(金泳三)계와 김대중(金大中)계의 재야인사들이 연합하여 1984 년 5월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발족시킬 때 핵심요원으로 참여하여 상임운영위원이 되어, 신한민주당 창당의 모체가 되게 하였고, 이듬해 민추협 부의장으로 민주화투쟁에 기여하였다.
1987년 민족 문제연구소 회장으로, 다음해 민주당 정무위원을 지내다 노태우(盧泰愚)정부가 들어선 1988년 12월 교통부장관에 임명되어, 1990년 3월까지 재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