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황해도 장연 출신. 아버지는 김성섬(金聖蟾), 어머니는 안성은(安聖恩), 남편은 최영욱(崔永旭)이다.
1907년 미국북장로교 선교사가 설립한 서울 연동여학교(蓮洞女學校: 지금의 정신여자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해 1913년 일본 동경여자학원 중등부를, 1916년에는 고등부를 졸업했다. 1926년 미국 조지아주 액네스스칼여자대학에서 학사학위를, 1927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16∼1919년 정신여자중학교 교사, 1922년 교감이 되었다. 그 해에 창설된 광주 기독교청년회의 첫 교육 사업으로, 서창균(徐昌均)과 자선음악회를 주선해 기금을 마련, 광주시 양림동에 있는 유치원을 인수하도록 도와주었다.
같은 해 3월 김활란(金活蘭)과 함께 중국 북경에서 개최된 세계기독교학생대회(WSCF)에 참석하였다. 6월 중순에는 하령회를 조직, 김활란·유각경(兪珏卿)과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를 만든 뒤 총무가 되어 농촌운동과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6년에는 미국 프린스턴에서 개최된 WSCF에 참석하였다.
그후 여성운동이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계열로 분열되자, 신간회(新幹會)의 자매 단체로 1927년 근우회(槿友會)를 조직하였다. 1937년까지 광주시 수피아여자중학교 교감을 지냈으며, 1928년 인도에서 개최된 WSCF에 참석하였다. 또한, 각종 토론회의 강사로 활약해 조선기독교청년회(YMCA)와 YWCA 활동에 활력소 구실을 하였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수피아여자중학교 교장에 취임했고, 1947년 정신여자중학교 교장이 되었다. 1950년 미국북장로교 여신도4차대회에 참석했으며, 1962년 정신학원 이사장, 그 뒤 명예교장·명예이사장을 지냈다.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이 수여되었다. 저서로 『성경사화대집』과 번역본 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