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연각(硯覺). 부산 출생. 어릴때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수학한 뒤 동 기장보통학교를 거쳐 1921년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독립운동의 요람지로 알려진 이 학교에서 배일사상이 싹터 일생동안 교육의 신조로 삼았다.
1929년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사학에 투신, 함흥 영생고등여학교에서 생물과 수학을 가르치다가 1939년함흥 영생중학교로 옮겨 교무주임직을 맡았다. 함흥에서는 12년간 부전호의 담수어연구에 몰두하였다.
1941년 동래고등여학교로 옮겨 교무직을 맡았고, 1945년 광복이 된 뒤 부산 문화계의 대표로 추대되었으나 사퇴하고 경남고등여학교 교장으로 취임한 뒤 1947년 모교인 동래중학교 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49년 3월 부산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고 학제변경에 따라 그해 6월 부산고등학교 초대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오륙도가 바라보이는 이 학교 교정에서 푸르게 출렁이는 청조(靑潮)의 기상을 학생들에게 일깨우고 자학자습의 학풍을 세웠으며, 전국에서 실력있는 교사들을 영입하여 부산고등학교의 학력이 전국에 떨치게하였다.
1954년 문교부 한글간소화정책에 반대, 부산시 중등학교 전교원들이 제출한 연판장에 대표로서 서명하여 대통령에게 반대성명서를 제출하여 세상에 경종을 울렸다. 1956년 부산수산대학 학장에 취임하였고, 1963년 3월 부산교육대학 초대학장으로 부임하였다.
1968년 부산시교육회 회장에 피선되었으며, 1969년 정년퇴임기념으로 동료 교수와 후학들이 『보리를 밟는 마음』을 엮어내었으며, 1993년 부산중고등학교 총동창회는 기념문집 『진리의 창문가에서』를 발간하고 동문들의 성금을 모아 모교교정에 그의 흉상을 세웠다.
1967년 부산시문화상(교육부문)을 받았고, 1968년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킨 공로로 교육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