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현종 때 김훈과 최질이 일으킨 반란.
내용
그리하여 1014년 박성(朴成) · 이협(李協) · 최가정(崔可貞) · 임맹(林孟)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문신들로서 그러한 주장을 해오던 황보 유의(皇甫兪義)와 장연우(張延祐) 등을 포박하고 왕을 협박하여 이들을 귀양보내었다.
그리고 무신으로서 상참(常參)은 모두 문신을 겸하게 하였으며, 또 어사대(御史臺)와 삼사(三司)를 금오대(金吾臺)와 도정서(都正署)로 각각 개편하였다. 이로부터 무관이 문관을 겸하여 정사를 함부로 하게 되자 국가의 기강이 문란하게 되었다.
이에 전 화주방어사 이자림(李子琳, 王可道)이 왕에게 올린 계교에 따라 현종은 먼저 이자림을 서경유수판관으로 임명하고 미리 서경에 보내어 친히 장락궁(長樂宮)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이 때에 이자림 등은 술에 취한 김훈 · 최질 · 이협 · 최가정 · 임맹 등 19인을 주살하였다. 그리고 황보 유의 · 장연우를 다시 불러 기용하고 무신들이 고친 관직의 이름도 모두 복구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전기 정치권력과 유학사상: 현종대의 金訓, 崔質 등의 軍人亂을 중심으로」(마종락, 『震檀學報』 80, 1995)
- 「고려전기 중방체제의 성립」(김대중, 『국사관논총』 61, 199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