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 ()

논산시 전경
논산시 전경
인문지리
지명
충청남도 동남부에 위치한 시.
정의
충청남도 동남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계룡시 두마면, 대전광역시 · 금산군, 서쪽은 부여군,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 · 익산시, 북쪽은 공주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6°59′∼127°20′, 북위 36°04′∼36°16′에 위치한다. 면적은 554.81㎢이고, 인구는 12만 4232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11개 면, 2개 행정동(11개 법정동), 421개 행정리(173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다.

자연환경

계룡산과 대둔산(大屯山, 878m) 줄기가 군의 동북부에서 동남부에 걸쳐 지나고 있어 험준한 산악지를 형성하고 있다. 북서부에서 남서부는 평균높이가 60m 내외의 낮고 평평한 구릉지가 전개되는 전형적인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지닌다.

남북방향으로 뻗은 계룡산은 연천봉(連天峰, 742m) · 향적산(香積山, 575m) · 국사봉(國師峰, 421m) · 함지봉(咸芝峰, 386m) · 천호봉(天護峰, 386m)으로 연결된다. 진안고원(鎭安高原)과 철산고원(鐵山高原)으로 이어져오는 산지는 대둔산을 정점으로 하여 바랑산(555m) · 월성봉(650m) 등이 벌곡면 · 양촌면 일대에 산지를 이루고 있다. 대둔산의 동서 방향으로 장재봉(長才峰, 487m) · 작봉산(鵲峰山, 421m) · 옥녀봉(玉女峰, 410m) · 함박봉(咸博峰, 332m) 등이 연결되어 전라북도와 도계를 이룬다.

금강의 지류가 계룡산과 대둔산으로부터 발원하여 북서류 내지 남서류한 뒤 논산천에 집수된 다음, 강경읍 부근에서 금강본류에 흘러든다. 강경천(江景川)은 연무읍 · 채운면 · 강경읍 일대를 흐르며 논산천에 합류한다.

주요 하천으로는 노성천(魯城川) · 연산천(連山川) · 갑천(甲川) · 성평천(城坪川) · 방축천(防築川) 등이 있는데, 주변에 넓은 논강평야와 낮은 구릉지가 발달되어 관개가 용이하다. 소수로는 논산농지개량조합저수지 등이 있어 농업용수로 이용된다.

토양은 일반적으로 하성토(河成土)인데, 논의 토양은 암갈회색의 치양토이고, 밭은 자갈을 포함하는 사양토(砂壤土)이다.

기후는 남부서해안형으로 연평균 기온 12.9℃, 1월 평균기온 -0.2℃, 8월 평균기온 26.5℃이며, 연 강수량은 1,651.3㎜이다. 서리는 10월 말부터 내려 이듬해 4월 초순에 끝난다.

역사

금강 유역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출토되었고, 1965년에 양촌면 신기리에서 발견된 고인돌 및 채운면 하리, 성동면 원북리, 은진면 토량리와 등화리, 노성면 송당리, 연산면 청동리 등의 고인돌에서 출토된 마제석검과 동검 등으로 선사시대의 문화를 알 수 있다.

백제의 웅진문화권 시절이던 동성왕에서 성왕 때에는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으면서도 성을 쌓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화전 양면정책을 썼던 것 같다. 연산의 황산성을 비롯하여 여러 곳의 산성들이 모두 이때에 축성된 것이다.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오자 기울어져가는 백제를 구하려고 결사대 5천 명을 뽑아 황산벌에서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계백의 묘가 부적면 충곡리에 있다.

이 지방은 백제시대에는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과 덕근군(德近郡)에 속했고, 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황산(黃山) · 이산(尼山) · 덕은(德殷) · 석산(石山)의 4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황산이 연산(連山)으로, 덕은(德殷)이 덕은(德恩)으로, 석산이 석성(石城)으로 개칭되었다. 왕건은 후백제의 신검으로부터 황산에서 항복을 받아 삼한을 통일하게 된 것은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하여 황산을 천호산으로 고치고 그 밑에 개태사를 지었다.

968년(광종 19)에 제작한 반야산 밑의 미륵보살석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륵상일 뿐 아니라 고려시대의 불교예술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러한 예술과 신앙이 고려왕조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자 태조는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도읍지를 논산의 계룡산 신도안에 정하기로 하고 2월부터 역사를 시작했으나 반대의견으로 인해 중지하고 서울로 옮기게 되었다. 중엽에 와서는 논산 일원이 예향(禮鄕)을 이루는 고장이 되었다.

김장생(金長生)이 그 선구자로 많은 학자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그 아들 김집(金集)은 김현(金灦)과 아울러 당대의 예학의 연원을 잇는 주자학의 선구자이었다. 한편 노성의 윤증(尹拯)은 송시열(宋時烈) · 유계(兪棨)와 그 장인 권시(權諰)에게서 배워 예학에 밝았고 당시 소론의 영수로 조야의 관심을 끌었다.

그 뒤 후학들이 학통을 계승하여 이 지방에 서원을 세우고 인재를 길러내었다. 강경의 죽림서원(竹林書院)을 비롯하여 돈암서원(遯巖書院) · 충곡서원(忠谷書院) · 휴정서원 · 효암서원(孝巖書院) · 행림서원(杏林書院) · 노강서원(魯岡書院) 등이 있었다.

덕은군은 시진현(市津縣)과 합쳐져 세종 때 은진현(恩津縣)으로 되었다. 1646년(인조 24)에 이산현 사람인 유탁(柳濯)이 모반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은진 · 이산 · 연산이 폐합되어 평천역(平川驛) 서쪽에 은산현(恩山縣)이 설치되었다가 1656년(효종 7)에 세 현이 다시 설치되었다. 이산현(尼山縣)은 영조 때 이성현(尼城縣)으로, 정조 때 노성현(魯城縣)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한편,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로 논산에 남아 있게 된 서원은 연산의 돈암서원과 광석의 노강서원뿐이었으나 그 뒤 거의 복원되었다.

1919년 3월 논산읍을 선두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강경읍과 연산면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행진이 계속되었다. 논산 출생의 김태오(金泰午)는 논산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옥사하였다. 그 밖에 권기수(權基洙) · 배영식(裵榮植) · 이충규(李忠圭) 등이 옥사하거나 총살당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은진군과 연산군의 전부와 노성군의 소사면을 제외한 전부와 석성군 · 공주군 · 진잠군(鎭岑郡) 등의 일부지역이 병합되어 논산군이 설치되었다. 1931년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개 읍, 14개 면이 되었으며, 1938년에는 논산면이 읍으로 되었다.

1962년 두마면에 신도안(新都內)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63년 1월 1일 구자곡면의 7개 리(里)와 전라북도의 익산군 황화면이 합해져 연무읍으로 승격되었고, 구자곡면의 나머지 삼전리 · 왕암리 · 야촌리는 가야곡면에, 시묘리는 은진면에 편입되었다.

1966년 7월 10일 마전(麻田) 출장소가 폐지되었다. 1973년 가야곡면의 석서리가 양촌면으로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 가야곡면의 중산리와 양촌리 일부가 양촌면에, 양촌면의 신량리가 연산면에, 은진면의 토량리 일부가 연무읍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에는 은진면 강산리 · 내동리 · 관촉리가 논산읍에, 1989년 1월 1일에는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가 두마면에 편입되었다.

1993년 군간 경계 조정으로 상월면 원오리 일부가 공주군 계룡면 월곡리로 편입되었으며, 1996년 3월 1일 도농복합으로 논산군 전체가 시로 승격되고, 논산읍을 취암동과 부창동으로 분리하였다. 2003년 9월 19일 논산시 두마면이 계룡시로 분리되었다.

유물 · 유적

양촌면의 논산 신기리 지석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와 성동면 원봉리의 남방식 지석묘가 있다. 특히 신기리 출토 마제석검과 석촉은 학술적 가치가 크다. 채운면 심암리, 성동면 원북리와 등화리 · 관촉동 · 강산동 등지에서 마제석검과 석촉, 연산면 청동리에서 청동검, 노성면 송당리에서 동검과 동과가 발견되었다.

또한 연산면의 논산 표정리 고분군(충청남도 기념물, 1994년 지정), 가야곡면의 논산 육곡리 고분군(충청남도 기념물, 1994년 지정)이 있고, 양촌면의 신흥리 고분군, 연산면 백석리 · 표정리의 백제고분군이 있다.

산성으로는 연산면 표정리의 황산성(충청남도 기념물, 1985년 지정), 등화리의 논산 황화산성(충청남도 기념물, 1993년 지정)을 비롯하여 부적면 외성리의 외성산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 대둔산성 · 달이산성(達伊山城) · 청동리 산성(靑銅里山城) · 산직리 산성(山直里山城) · 득안산성(得安山城), 노성면 성당리의 논산 노성산성(사적, 1995년 지정), 강경읍의 옥녀봉산성, 양촌면 모촌리의 모촌산성(茅村山城) 등이 있다.

봉수로는 강경산봉수 · 황화산봉수 · 노성봉수 등이 있다. 또한 연산리의 연산아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관촉동의 관촉사(灌燭寺) 경내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1963년 지정) · 관촉사 석등(보물, 1963년 지정) · 관촉사 배례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관촉사 석문(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은진 관촉리 비로자나석불입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과 석탑이 있다.

또한 연산면 천호리의 개태사지(충청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와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1963년 지정) · 개태사 철확(충청남도 민속문화재, 1973년 지정) · 개태사 오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 개태사지 석조(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양촌면 중산리의 쌍계사 경내에 쌍계사 대웅전(보물, 1964년 지정) · 쌍계사 부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그리고 부적면 신풍리의 영사암(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 논산 신풍리 마애불(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그리고 연산면의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 논산 덕평리 석조여래입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논산 탑정리 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이 있다.

그 외에 벌곡면의 논산 수락리 마애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연산면 연산리의 송불암 미륵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연산 송정리 마애삼존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 상월면 상도리에 논산 상도리 마애불(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04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은진면 교촌리의 은진향교, 노성면 교촌리의 노성향교 · 노성궐리사(충청남도 기념물, 1978년 지정), 연산면 관동리의 연산향교, 임리의 논산 돈암서원(사적, 1993년 지정)이 있다. 그 밖에 광석면 오강리의 노강서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부적면 충곡리의 충곡서원지(충청남도 기념물, 1976년 지정), 그리고 강경읍 황산리의 죽림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가야곡면 육곡리의 행림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산로리의 효암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연무읍 금곡리의 금곡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과 봉곡서원과 연산면 임리에 김집선생 사당(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연산면 임리에 돈암서원 유경사(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 응도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 돈암서원 원정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 등이 있다. 한편 연산면에는 고정리 양천허씨 정려(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가 있다.

이 밖에도 노성면 내사리에 파평윤씨 재실(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 병사리에 충헌공 윤전 재실(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6년 지정),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7년 지정), 강경읍 황산리의 팔괘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과 임리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이 있다. 또한 대우리에 논산 영사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 연산면 고정리에 논산 영모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 연산 영사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2년 지정) 등이 있다.

그리고 노성면 장구리의 윤황선생 고택(충청남도 민속문화재, 1985년 지정), 연산면 오산리의 임수택 가옥(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교촌리의 논산 명재 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 윤증 가의 유품(중요민속문화재, 1970년 지정), 상월면 주곡리의 논산 백일헌 종택(중요민속문화재, 2012년 지정)과 이삼장군 유물(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등이 있다.

능묘와 비석으로 연무읍 금곡리의 전 견훤묘(충청남도 기념물, 1981년 지정), 은진면 용산리의 익성군 신도비 및 무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이 있다. 김장생선생 묘소 일원(충청남도 기념물, 1984년 지정) · 김계휘 신도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가 있다.

또한 부적면 신풍리의 계백장군 유적 전승지(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 · 전 계백장군묘, 가야곡면 양촌리의 성삼문의 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벌곡면 양산리에 김집선생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노성면 호암리에 김임 신도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8년 지정) 등이 있다.

전적류로는 연산면 관동리의 성주도씨 종중 문서일괄(보물, 1981년 지정), 화학리에 익안대군 영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 성동면 우곤리의 남양전씨 종중 문서 일괄(보물, 1981년 지정), 부적면 부황리에 신임일기(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6년 지정) 등이 있다. 교지로는 연산면 고정리의 김장생 문묘배향교지(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 · 임리에 김집교지(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가 있다.

그 밖에 노성면의 연산 화악리의 오계(천연기념물, 1980년 지정), 광석면의 갈산리 곰솔(충청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 가야곡면의 육곡리 은행나무, 성동면 개척리에 성동 은행나무(충청남도 기념물, 2000년 지정) 등이 있다.

채운면 삼거리의 강경 미내다리(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와 야화리의 논산 원목다리(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원북리에 논산 석성 수탕석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4년 지정) 등이 있다.

상월면 학당리에 무안박씨요여(충청남도 민속문화재, 2004년 지정)가 있다.

한편, 연산면 청동리에는 연산 백중놀이(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91년 지정)가 전승되고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380년(우왕 6)에 창건된 은진면 교촌리의 은진향교가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이어서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노성면 교촌리의 노성향교와 조선 후기에 창건된 연산면 관동리의 연산향교 등이 있다.

사학 교육기관으로는 조선 세조 때의 문사 최청강이 지금의 연산면 임리에 세운 아한정사(雅閑精舍)가 최초로 추정되고 있다. 돈암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4년(인조 12)에 김장생이 중건하여 양성당(養性堂)으로 개칭한 것이다.

그 밖에 임진왜란 이전에 설립되었고 1713년(숙종 39)에 중건된 가야곡면 산로리의 효암서원(일명 갈산서원), 1626년(인조 4) 지금의 강경읍 황산리에 설립된 죽림서원, 1675년(숙종 1) 노성에 설립된 노강서원, 1692년 연산에 설립된 충곡서원, 1699년에 설립된 휴정서원, 1702년에 설립된 구산서원, 1716년(숙종 42) 노성에 설립된 춘추사(春秋祠) 등은 조선 말엽까지 이 지방 유생교육을 담당하여 왔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07년 강경공립보통학교가 처음 개교했고, 1910년을 전후하여 종교계의 사학기관으로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즈(Williams)와 목사 샤프의 부인 앨리스(Alice,H.S.)가 공주의 영명학교와 같이 설립한 논산의 영화학교(永化學校) · 만동학교(萬東學校) · 진광학교(眞光學校)가 있었다.

일반계 사학으로 윤상욱(尹相郁)이 설립한 신명학교(新明學校), 김상기(金商琦)가 설립한 인천육영학교(仁川育英學校), 김상준(金商俊)이 설립한 은진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 사립학교는 일제의 통제와 간섭이 심하여 1915년 이후 점차 폐교되었다. 이어 1911년 1면 1교의 교육체제가 갖추어졌다.

광복 후에 각급 학교가 급증하여,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4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13개교, 대학교 3개교, 대학원 6개교가 있다.

이 밖에 1972년에 개관한 군립논산도서관이 있어 이 지방 교육 및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1957년에 개원한 논산문화원은 각종 문화예술행사를 주관하여 향토문화의 개발 및 창달에 공헌하고 있다.

민속

다른 지방에서도 널리 행해지고 있는 윷놀이 · 널뛰기 · 연날리기 · 쥐불놀이 · 그네뛰기 · 씨름 그리고 고누 · 숨바꼭질 · 닭잡기 등이 전승되고 있다.

집단신앙으로는 채운리 골뜸의 산제(山祭)를 비롯하여, 가야곡면 육곡리의 산신제, 연산면 오산리의 산신제, 상월면 주곡리의 장승제, 상월면 대명리의 산신제 등 여러 마을에서 다양한 형태의 집단의식(集團儀式)을 찾아볼 수 있다.

채운리의 속칭 골뜸은 인접한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신작리와 같은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이 마을 가운데를 지나는 길을 경계로 충청남도와 전라북도가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전라북도의 신작리 주민들과 함께 같은 마을신을 모시고 함께 산제를 지낸다.

제장에는 동네 사람들이 송정나무 · 곰솔나무라 부르는 큰 소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밑에서 산신에게 제를 올린다. 1972년까지는 매년 음력 정월초 길일을 택해 제를 올렸으나 그 뒤부터는 매년 음력 3월 3일 오전에 제를 올린다.

과거에는 주민 가운데서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을 유사(有司)로 선정하여 모든 제의(祭儀)를 주관하도록 했으나, 30여 년 전부터는 별도로 유사를 선정하지 않고 동촌계(東村契)의 계장이 자동적으로 유사가 되어 제의를 주관한다.

제의에서는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년을 기원하고, 각 가정의 호주소지(戶主燒紙)를 연령순으로 올린다. 그리고 제의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이 유사댁에 음식을 먹으며 즐긴다.

가야곡면 육곡리의 산신제는 매년 음력 1월 15일 밤 12시경, 마을의 동남방에 있는 태봉산(胎峯山) 중턱의 바위 위에 제물을 차려놓고 거행한다. 이곳에서도 제주를 유사라 하며, 전에는 부정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선정했으나 지금은 이장이 자동적으로 유사가 되어 제의를 주관하고 있다.

설화 · 민요

이 지방의 전설로는 「관촉사은진미륵전설」이 가장 유명하다. 고려 광종 때 사제촌(沙梯村)에 사는 한 부인이 어느 날 반야산으로 나물을 캐러 가는데 어디서인지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나 그 곳을 찾아가 보니 큰 돌 하나가 어린애를 업고 땅 위에 솟아나고 있었다.

왕이 그 소문을 듣고 혜명대사에게 명하여 석불을 조성하게 하였다. 대석불을 조성한 혜명은 그 석불을 세울 방법을 몰라 고민하던 중, 어느 날 사제촌을 거닐다가 동자가 토불(土佛)을 만들어 세우는 것을 보고 비로소 석불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아 그 거대한 부처를 세웠다 한다.

「상사바위전설」은 양촌면 명원사 부근 두 산의 꼭대기에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바위에 얽힌 전설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 중엽 산중의 오두막집에 숙영이라는 낭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고을 사또의 아들이 혼자 사냥을 나왔다가 말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낭자의 아버지가 사또의 아들을 집으로 업어다 간호를 하였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숙영낭자와 사또의 아들은 서로 사랑을 약속하고 혼인을 언약하였다. 그러나 사또는 아들의 혼인을 승낙하지 않고 다른 규수와 혼인하도록 하였다. 숙영낭자는 매일같이 산의 바위에 올라 총각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혼 길에 오른 총각일행이 나타난 것을 보고 숙영낭자는 반가움과 슬픔이 엉켜 도령을 부르며 바위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도령은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건너 산 바위 밑에 떨어졌다. 그래서 두 바위를 상사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 밖에「치마바위전설」 · 「마당바위전설」 · 「암용추전설」 · 「부인천면전설(夫人川面傳說)」 · 「신털이봉전설」 · 「오뉘힘내기전설」 · 「개태사전설」 · 「장군묘전설」 · 「미내다리전설」 등이 전래되고 있다.

이 고장의 민요로는 어희요 등의 동요가 중심이 된다. 노동요로는 가을에 곡식을 거두기 전에 몰려드는 새를 쫓기 위하여 부르는 「새쫓기노래」가 있다.

“우여우여 김제만경 넓은 들에/농군임네 날을 받어 씨뿌리고/때를 타서 지심 매고/오륙칠월 염천에는/풍년가로 낙을 삼고……우여―우여―/아랫녘 새야 아래로 가자/윗녘 새는 윗녘으로 가고/우리 어머니 아버지/손톱발톱 찟어지게 농사진 것/어떤 새가 다 까먹니/우여― 우여―.”라는 「새쫓기 노래」는 주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농사짓는 괴로움과 힘듦을 강조하고 있다.

연정을 노래하는 것으로는 “녹수청강에 흐르는 물에/배추 씻는 저 처자야/겉대 겉잎을 떠내 가지고/속에 속대를 날다고”라는 「배추 씻는 처자」가 있고, “청천하늘에 잔별도 많고요/요 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나 “우수경칩에 대동강물 풀리고/정든님 말씀에 요 내 가슴 풀린다.”등 아리랑류의 사설이 있다.

제일 많이 불리는 것이 어희요인데, “하나부터 하늘을 가르치고/둘이 또한 들땅을 뜻함이라/셋으로써 씨앗을 심으면은/네번째에 나는 싹 새롭다…… 아홉이라 아물어 합한 뒤에/열이 맺어 열매가 열리나니. ”라는 「농사 셈」은 농사의 근본과 과정에 관련 된 내용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풀이한 숫자어희요이다.

아이들이 서로 놀리면서 부르는 “흉내쟁이 막내쟁이/오줌독에 빠질 자식/대꼭지로 건질 자식/구정물에 행킨 자식/부뚜막에 말린 자식”은 욕설을 재미있게 풀어놓은 것이다.

이 밖에도 「나무노래」 등의 어희요와 「자장가」 · 「파랑새」 등의 동요가 있으며, “똥누다 감투잃고/또랑 건너 뛰어넘다/고두랭 상투마져 잃고/부애김에 술집 가니/술값 내라 이짝저짝/섣달그믐날 흰떡치듯/뺨만 실컷 두들겨 맞고…….”와 같이 재수 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남을 노래하는 우스개 노래도 불린다. 그리고 판소리 「흥부가」 가운데 놀부의 심술부분만을 따서 노래하는 「놀부노래」도 있다.

산업 · 교통

동남단의 산지를 제외하고는 저평한 지역이 많아 대부분 농경지이며, 저수지로는 부적면과 가야곡면에 걸쳐 있는 논산저수지가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총농경지는 205.42㎢, 밭이 54.60㎢, 논이 150.82㎢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보리 · 잎담배 · 잡곡 · 채소 · 인삼 등이다.

최근에는 아마재배로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양계도 전국에서 유명하다. 제조업으로는 직조업 · 정미업 · 양조업 등이 비교적 활기를 띠고 있다.

한편, 시장으로는 정기시장 3개소, 상설시장 5개소가 있으며 이 중 상설시장은 논산시내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거래품은 곡물 · 채소 · 농기구 · 생활필수품 등이다. 1900년대에는 쌀 · 콩 · 참깨 · 홍시로 이름 있던 노성읍내장이 4·9일, 은진읍내장이 2·7일, 논산장이 3·8일에 개설되었다.

특히 강경장은 평양 · 대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장 중의 하나로 유명했으나,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강경상권은 크게 축소되었고, 점차 논산 시내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논산장은 논산 · 공주 · 부여와 전라북도 익산 · 완주 등지의 상인들이 몰리고 있으며, 소시장은 전국 규모로 부상되고 있다.

이 밖에 정기장으로 연무대삼거리 · 연산 · 양촌장이 주로 농산물거래를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노성장 · 상월장 · 도산장 · 야촌장 · 신도안장 등은 자연 소멸되었다.

논산시내 중심부에서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과 대전광역시 유성구로 향하는 1번 국도, 부여군 석성면으로 향하는 4번 국도,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과 공주시 계룡면으로 향하는 23번 국도,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으로 향하는 643번 지방도 등이 교차하고 있다. 시의 동남부를 지나는 호남고속도로지선변의 연무읍에 논산 인터체인지가 개설되어 있다.

이 외에도 연산면 연산리에서 1번 국도와 대전광역시로 향하는 639번 지방도, 연무읍 중심부에서 1번 국도와 부여군 세도면으로 향하는 602번 지방도, 강경읍 중심부에서 23번 국도와 602번 지방도가 각각 교차하고 있어서 교통은 편리하다.

특히, 논산시내에서 유성에 이르는 1번 국도 구간은 4차선 확 · 포장이 완료되어 논산∼대전 간의 교통은 더욱 원활해졌다. 또한 공주∼논산의 23번 국도 구간도 4차선으로 확 · 포장되는 공사도 마무리되었다.

이 외에 부여 · 공주 · 강경 · 대전 · 연무대 등지를 연결하는 외곽도로들이 새로이 개설되어서 시내교통도 원활하다. 2002년 개통한 논산천안고속도로는 논산시와 천안시를 남북으로 연결하며, 호남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지선, 경부고속도로 등과 연결된다. 논산시는 호남지방에서 수도권이나 경부축으로 연결되는 교통선상에 있어서, 전국적인 차원에서도 교통의 요충지이며, 편리한 교통은 지역발전의 중요 요인이 되고 있다.

관광

이 시에는 문화재와 역사유적이 많아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대체로 5개의 관광코스로 구분된다. 첫째는 등화리의 황화산성코스, 둘째는 부적면 충곡리의 충곡서원을 거쳐 연산면 연산리의 가마솥을 지나 천호리의 개태사지석불입상을 본 다음 화악리의 오골계마을로 가는 코스이다.

셋째는 논산읍 관촉리의 관촉사를 거쳐 연무읍 금곡리의 전 견훤 묘로 가는 코스, 넷째는 가야곡면 종연리의 논산저수지를 거쳐 중산리의 쌍계사에 들렀다가 양촌리의 성삼문 묘소로 가는 코스, 다섯째는 채운면 야화리의 미내다리와 원목다리를 보고 강경읍 북옥리의 강경포구 터와 옥녀봉을 거쳐 황산리의 황산나루터로 가는 코스 등이다. 이 밖에 양촌면의 대둔산도립공원으로 가는 코스가 있다.

시내와 강경읍 및 연무읍에는 관광객을 위한 여관 · 식당 및 각종 위락시설들이 있으며, 각 사찰의 입구에는 소규모의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황산나루에 건설된 황산대교로 인해 논산시의 관광지는 부여군의 관광지와 연결됨으로써 더욱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읍 · 면
  1. 강경읍(江景邑)

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7.01㎢, 인구 9,892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남교리이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金浦面) 지역으로 상강(上江) · 환대 · 홍교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시 채운면 성서리(城西里)가 병합되었고 강경포의 이름을 따서 강경면으로 개명되면서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17년에는 지정면이 되었고, 1931년 다시 채운면의 산양리 · 제내리(堤內里) · 채산리가 병합되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은진군청이 폐쇄되고, 논산군청이 논산읍에 들어섬에 따라 강경은 행정기능의 일부를 잃게 되었다.

현재 강경포구는 취락자체가 소멸되어 유적조차 찾기가 힘들고, 황산나루도 황산대교의 건설로 기능을 상실하였다. 직행버스터미날과 강경역을 중심으로 한 간선도로변 및 중앙시장에는 각종 상업 및 서비스 기능체들이 입지해 중심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옥녀봉 밑의 가로변에는 새우젓 등의 염장제품 도 · 소매업소들이 다수 입지하여 전국에서 가장 큰 새우젓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교통은 강경∼부여 간의 지방도, 강경∼논산 간의 국도, 강경∼연무 간의 지방도가 있고, 호남선철도를 통해 논산시내와 대전으로 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황산리에 죽림서원 · 팔괘정 · 임리정, 채운리에 채운산성 등이 있다.

남교리(南校里) · 산양리(山陽里) · 채산리(彩山里) · 동흥리(東興里) · 대흥리(大興里) · 북옥리(北玉里) · 서창리(西倉里) · 염천리(鹽川里) · 중앙리(中央里) · 채운리(彩雲里) · 태평리(太平里) · 홍교리(虹橋里) · 황산리(黃山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연무읍(鍊武邑)

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59.46㎢, 인구 1만 5294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마산리이다. 본래 은진군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서촌(西村) · 무동 · 화석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죽본면(竹本面)의 6개 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고, 1963년에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皇華面) 모두가 편입되고, 일부 관할 지역이 조정되면서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에 행정구역 조정시 운진면 토량리(土良里) 일부가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동북쪽에 만산(馬山) 등 약간의 구릉지가 있고 서쪽은 대체로 비옥한 평야를 이룬다. 남동쪽은 300m 내외의 산지에 저수지와 소류지가 있다. 이들 산지에서는 금강지류인 강경천이 발원하여 평야지역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경지면적은 3,017㏊로 전체면적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경지면적은 3,017㏊로 전체면적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논과 밭의 비율은 대략 7:3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를 비롯하여 채소 · 딸기 · 사과 · 포도 · 복숭아 등이며, 기타 저마 · 완초 · 인삼 등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양돈과 양계는 기업적으로 행해진다. 도축장 · 정미소 · 양조공장 · 식료품공장 · 유제품공장 등의 산업체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육군훈련소와 관련된 각종 서비스업이 발달했으나 시가지의 발달은 미약하다. 호남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있고, 논산시내로 통하는 도로망이 최근 확대 포장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금곡리에 전 견훤 묘 · 금곡서원, 양지리에 매화산성 등이 있다.

마산리(馬山里) · 죽평리(竹坪里) · 금곡리(金谷里) · 동산리(東山里) · 죽본리(竹本里) · 소룡리(巢龍里) · 양지리(陽地里) · 황화정리(皇華亭里) · 안심리(安心里) · 봉리(鳳里) · 신화리(莘花里) · 마전리(麻田里) · 고내리(高內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가야곡면(可也谷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5.31㎢, 인구 4,61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육곡리이다. 본래 은진군 지역으로, 가야실의 이름을 따서 가야곡이라 하여 두월(斗月) · 등리 · 조정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갈마면(葛麻面)의 20개 리, 상두면(上豆面)의 9개 리, 하두면(下豆面) · 송산면(松山面) · 적사곡면 · 모촌면(茅村面),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의 일부가 합해져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38년에는 종연리(鍾淵里) 일부가 은진면에, 1963년에는 구자곡면 야촌 등 3개 리가 이 면에, 1973년에는 석서리가 양촌면에, 1983년에는 중산리 및 양촌리 일부가 각각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남부는 증토산(370m) · 옥녀봉 · 통박산(302m) 등으로 이어지는 산지지형이며, 북부는 구릉성 지대로 되어 있다. 북동부의 탑정저수지는 성평천의 좁은 곡간(谷間)을 막은 것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곡농업 위주의 산업이며, 쌀은 야촌 · 종연 등 동북부 저지대에서 주로 생산된다. 그 밖에 인삼은 목곡 · 강청 등지에서 생산되며, 딸기의 재배도 활발하다. 감은 삼전 · 왕암이 중심이며, 예로부터 왕바위감은 진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업으로는 왕암리에 요구르트공장, 야촌리의 우유공장, 육곡리의 상공장(床工場) · 석회공장 등이 있다.

교통은 중앙부 동서를 지나는 호남고속도로지선의 논산 인터체인지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그 밖에도 동서 방향 1개, 남북 방향 2개의 도로가 교차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육곡리에 행림서원, 중산리에 쌍계사 대웅전 · 부도, 산로리에 효암서원, 양촌리에 성삼문 묘 등이 있다.

육곡리(六谷里) · 강청리(江淸里) · 목곡리(木谷里) · 함적리(咸積里) · 산로리(山老里) · 병암리(屛巖里) · 조정리(釣亭里) · 등리(登里) · 종연리(鍾淵里) · 두월리(斗月里) · 야촌리(野村里) · 왕암리(旺巖里) · 삼전리(蔘田里) · 양촌리(陽村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광석면(光石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98㎢, 인구 4,86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당리이다. 본래 노성군 지역으로, 넓은 돌이 있어 광석(廣石)이라 하다가 조선시대에 광석면이 되어 은동(銀洞) · 입석 · 갈산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득윤면(得尹面)의 8개 리, 장구면(長久面)의 6개 리, 천동면(泉洞面)의 5개 리, 두사면(豆寺面)의 6개 리, 읍내면, 석성군(石城郡) 원북면(院北面), 연산군 부인처면, 은진군 화지산면의 일부지역이 병합되어 지금의 이름으로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남쪽으로는 노성천과 논산천이, 서쪽으로는 석성천이 흐르고 있다. 성동면과 채운면 일대에는 충적범람원이 발달되어 있다. 낮은 구릉지대에는 촌락이 발달되어 있다. 경지율이 높은 데다 경지정리와 농업 기계화가 잘 되어 있는 곳이다.

쌀 생산은 군내 수위권내에 있다. 채소는 무 · 배추재배가 많으며, 육군훈련소에 납품도 하고 대전 등지로 반출되기도 한다. 논의 휴한기를 이용하는 딸기 재배농가가 많으며, 잎담배 생산도 활발하다. 젖소 사육도 군 수위를 차지하며, 한우 · 돼지 · 닭의 사육이 활발하다. 제조업으로는 사료원료공장과 정부미 도정공장이 있다.

논산∼공주 간, 논산∼부여 간의 국도가 통과하고 있고, 산동리에서 노성면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오강리에 노강서원, 갈산리에 곰솔 등이 있다.

신당리(新堂里) · 중리(中里) · 득윤리(得尹里) · 갈산리(葛山里) · 광리(光里) · 이사리(梨寺里) · 산동리(山東里) · 천동리(泉洞里) · 왕전리(旺田里) · 항월리(恒月里) · 사월리(沙月里) · 율리(栗里) · 오강리(五岡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노성면(魯城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5.77㎢, 인구 3,60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노성현의 소재지로 읍내면이라 하여 교촌(校村) · 죽촌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구면(長久面) 12개 리, 화곡면(禾谷面) 18개 리, 하도면(下道面) 4개 리, 두사면의 5개 리가 병합되어 현재의 이름으로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은 노성산(348m)을 중심으로 한 맥상 산지로 상월면과의 경계를 이룬다. 서쪽은 호암산(虎巖山)의 줄기가 이와 만나 ‘인(人)’자 모양의 산지를 이루고, 나머지는 낮은 구릉지대이다. 동쪽의 노성천과 석성천 상류 우교천(牛橋川) · 아치천(牙峙川) 유역에는 넓은 퇴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경지율이 46.2%로 높으며, 토양은 비옥한 편이어서 주곡위주의 농업이 발달되어 있으며, 읍내 · 송당 · 병사리 등지에서 무 · 배추가 생산된다. 그 밖에 땅콩 · 잎담배의 재배도 활발하다.

교통은 논산∼공주 간의 국도가 면 소재지를 지나고 있고, 호암리와 논산시내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노성봉수지, 교촌리에 윤증 가의 유품과 고택 · 노성궐리사 · 노성향교, 효죽리에 봉곡서원, 송당리에 노성산성 등이 있다. 보호수로는 읍내리에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2그루가 있다.

읍내리(邑內里) · 화곡리(禾谷里) · 노치리(蘆峙里) · 구암리(龜巖里) · 호암리(虎巖里) · 가곡리(佳谷里) · 죽림리(竹林里) · 효죽리(孝竹里) · 장구리(長久里) · 병사리(丙舍里) · 송당리(松堂里) · 교촌리(校村里) · 두사리(豆寺里) · 하도리(下道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벌곡면(伐谷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9.71㎢, 인구 2,73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한삼천리이다. 본래 연산 동쪽에 있으므로 동면(東面)이라 했는데, 1895년(고종 32년) 이후 대둔산이 뻗어 큰 줄기를 이루었다 하여 벌실면(伐實面) 또는 벌곡면으로 개명되어 검천 · 주티 · 축동 등 5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잠군(鎭岑郡) 하남면(下南面) 일부가 합해져 다시 벌곡면으로 개명되면서,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97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남부 대둔산에서 월성봉 · 바랑산 · 깃대봉 · 함박봉으로 이어지는 서부 능선과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동부 능선으로 둘러싸인 곳이며, 벌곡천의 좁은 하곡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지지형이다.

임야면적이 83%이며, 주곡농업이기는 하나 토지이용은 영세적이다. 최근 신양을 중심으로 논의 휴한기를 이용하는 딸기 · 마늘 등의 시설원예 재배지가 많이 늘어가고 있다. 과수 중에 감이 전지역에서 생산되어 논산 · 대전 등지로 출하된다. 축산 중 한우사육은 수락 · 양산 · 조령에서, 돼지는 검천 · 만목에서 부업 정도로 이루어지며, 산지지역에서 벌꿀이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북서부에 호남고속도로지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골짜기를 따라 북쪽의 조동에서 남쪽의 도산간의 도로와 도중의 한삼천리에서 연산으로 가는 길이 분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사정리에 고려시대 도요지, 수락리에 달이산성(達伊山城) 등이 있다. 또한 한삼천리는 백제 의자왕 때 나당연합군과의 혈전을 벌인 곳으로 이름이 있다.

한삼천리(汗三川里) · 덕목리(德木里) · 사정리(沙亭里) · 대덕리(大德里) · 검천리(檢川里) · 덕곡리(德谷里) · 수락리(水落里) · 도산리(道山里) · 만목리(晩木里) · 어곡리(於谷里) · 조동리(鳥洞里) · 조령리(鳥嶺里) · 신양리(新陽里) · 양산리(陽山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부적면(夫赤面)

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73㎢, 인구 3,932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마구평리이다. 본래 연산군 지역으로 부인당의 이름을 따서 부인처면이 되어 신전 · 마구평 · 아호 등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적사곡면의 28개 리, 외성면(外城面), 노성군 두사면 · 광석면 · 천동면(泉洞面), 은진군 가야곡면 · 화지산면의 일부가 합해져 부인처면과 적사곡면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고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북쪽은 논산천 · 연산천이 흐르고 있으며, 남쪽은 은진면과의 사이에 성평천이 흐르고 있어, 유역에는 넓은 충적범람원이 발달되어 이 지방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동반부의 고정산(高井山) · 대명산(大明山) 등 산지 외에는 대부분이 구릉지대이다.

주곡농업 위주이며, 신교리 · 탑정리에서는 논의 휴한기를 이용하는 딸기 · 참외의 시설원예가 활발하다. 젖소사육이 활발하며, 한우 · 돼지의 사육도 늘어가고 있다. 반송리에는 벽돌공장이 있다.

교통은 호남선철도가 북부 부황역을 지나고 있으며, 이보다 남쪽에 호남국도가 동서로 통과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신풍리에 계백장군묘 · 마애불, 탑정리에 석탑, 덕평리에 석조여래입상, 충곡리에 충곡서원지 · 성삼문 유허비, 외성리에 성터 등이 있다.

마구평리(馬九坪里) · 탑정리(塔亭里) · 충곡리(忠谷里) · 외성리(外城里) · 왕덕리(旺德里) · 아호리(阿湖里) · 신풍리(新豊里) · 신교리(新橋里) · 부황리(夫皇里) · 부인리(夫人里) · 반송리(盤松里) · 덕평리(德坪里) · 감곡리(甘谷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상월면(上月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77㎢, 인구 3,95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충리이다. 본래 노성군 월오면(月午面) 지역으로 산성 · 원동 · 주막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도면의 19개 리, 하도면의 11개 리, 읍내면, 공주군의 익구곡면(益口谷面) · 진두면(辰頭面) 일부가 병합되고 상도와 월오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에는 계룡산지의 향적산 ·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산봉이 뻗어 있으며, 서쪽은 노성산의 줄기가 이어져 이들 산지 사이를 노성천과 주천(注川)이 침식하여 형성된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동쪽에는 신도안 분지에서 불어 계룡산지를 넘는 푄의 영향이 크다.

주곡농업 위주이며, 한천리 · 숙진리 · 주곡리 · 지경리가 그 중심을 이룬다. 그 밖에 땅콩 · 고구마 · 딸기 · 인삼재배도 늘어가고 있고, 소 · 돼지 · 젖소사육도 증가되고 있다.

교통은 북서부를 통하고 있는 공주∼논산 간의 국도와 공주시 계룡면 화헌리에서 연산 사이의 도로가 주축을 이룬다. 문화유적은 주곡리에 이삼장군 유물과 양화산성, 상도리에 용화사석불, 학당리에 매죽헌사당지 등이 있다.

신충리(新忠里) · 산성리(山城里) · 월오리(月午里) · 지경리(地境里) · 석종리(石宗里) · 상도리(上道里) · 대명리(大明里) · 대우리(大牛里) · 대촌리(大村里) · 학당리(鶴塘里) · 주곡리(酒谷里) · 한천리(寒川里) · 숙진리(淑眞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성동면(城東面)

시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35.58㎢, 인구 4,871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원남리이다. 본래 석성군 원북면 지역으로 하동(下東) · 하서 · 중리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병촌면(甁村面) 6개 리, 삼산면(三山面) 7개 리, 정산면(定山面) 4개 리, 우곤면(牛昆面) 4개 리, 현내면(縣內面) 2개 리, 비당면(碑堂面), 성본면 · 노성군 광석면, 임천군(林川郡) 인세면(仁世面)의 일부지역이 병합되었고, 현재의 이름으로 논산군에 편입되어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32년 논산천 제방수축 당시 채운면 신촌리(新村里)가 병합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서쪽에는 금강본류가 흐르고 있고, 석성천과 논산천이 이와 합류되는 곳에 화정들이라 하는 넓은 충적범람원이 발달되어 있다. 북의 우곤리에서 강경읍 옥녀봉 산록의 광석면 항월리로 이어지는 대제방이 구축되면서 침수의 피해를 면하게 되어 대곡창으로 바뀌었다. 동서 간 구릉산록지대의 인공제방에 연한 삼호리 일대에는 집촌이 발달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생산량이 군내에서 제일 많다. 채소는 논의 휴한기를 이용하는 딸기재배가 활발하며, 그 중심은 월성리와 병촌리이다. 돼지와 한우는 원북리, 젖소는 원남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도로는 개척리에서 광석면을 통해 논산읍으로 가는 노선과 강경∼부여 간의 지방도가 면의 서쪽을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원봉리에 남방식 지석묘가 있다.

원남리(院南里) · 삼호리(三湖里) · 우곤리(牛昆里) · 삼산리(三山里) · 월성리(月城里) · 병촌리(甁村里) · 개척리(蓋尺里) · 원북리(院北里) · 정지리(定止里) · 원봉리(圓峰里) · 화정리(花亭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양촌면(陽村面)

시의 남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77.21㎢, 인구 5,905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인천리이다. 본래 연산군 모촌면 지역으로 방축(防築) · 신평 · 송정 등 2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적사곡면 · 내적면(內赤面), 은진군 가야곡면 · 갈마면의 일부, 전라북도 완주군의 20개 리, 고산군 운북면의 11개 리가 병합되어 양량소(陽良所)와 모촌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고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은 월성산 · 바랑산, 남쪽은 장재봉 · 작봉산을 이어 서는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사이는 인천이 흐르는 분지지형이다.

주곡농업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오산 · 채광 · 반암 · 남산 등지에서는 밭농사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인삼재배는 군내 제2위로 도평 · 임화 등 8개 리가 주산지이다. 논의 휴한기를 이용하는 딸기는 군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다. 마늘도 산직리를 중심으로 많이 생산되어 대전 · 서울 등지로 출하된다. 예로부터 지방특산으로 이름 있는 임화리의 곶감은 양촌면 이외에도 인근 전라북도 지역의 감을 모아서 가공하고 있다. 젖소사육도 점차 확대될 것이 예상된다. 제조업으로는 도평리의 한지 제조를 들 정도이다. 도로는 지방도와 시 · 군도가 면의 소재지에서 만나 교통이 편리하고, 호남고속도로지선이 서북부를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신기리의 고인돌, 모촌리의 모촌산성, 신흥리의 산성과 고분군, 산직리의 농성(農城) 등이 있다.

인천리(仁川里) · 도평리(道坪里) · 임화리(林花里) · 양촌리(陽村里) · 신기리(新基里) · 오산리(梧山里) · 채광리(采光里) · 남산리(南山里) · 반암리(半巖里) · 산직리(山直里) · 모촌리(茅村里) · 신흥리(新興里) · 거사리(居士里) · 반곡리(盤谷里) · 명암리(鳴巖里) · 석서리(石西里) · 중산리(中山里) 등 17개 리가 있다.

  1. 연산면(連山面)

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01㎢, 인구 6,76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청동리이다. 본래 연산군 현내면이라 하여 황령(黃嶺) · 신곡 · 남촌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백석면(白石面)의 33개 리, 식한면(食汗面)의 14개 리, 내적면(內赤面)의 12개 리와 노성군 일부가 병합되어 지금의 이름으로 논산군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에는 양촌면 신양리가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산지지형과 연산천 유역의 평야지역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산지는 중앙의 함지봉을 지나 고양리에서 끊긴 계룡산지, 동쪽의 천호봉 · 깃대봉, 남쪽의 고정산지(高井山地) 등이 있다. 산지 사이의 협곡을 따라 흐르는 연산천은 신양리 · 고정리 · 백석리 · 장전리 등 여러 지류하천이 합해져 유역에 모래곶(砂岬)들을 발달시켰다.

산업은 주로 송산 · 오산 · 장전 등의 범람원지형에서의 주곡농업이 위주이며, 토지생산성도 높다. 특용작물로는 인삼재배를 들 수 있다. 딸기 · 참외 등 채소류의 시설원예도 성한데, 철도역 부근인 관동리 · 청동리 · 한전리 등이 그 중심지이다.

축산으로 한우는 송산리 · 송정리, 젖소는 백석리의 산록면에서, 돼지는 백석리 · 송정리가 중심이고, 닭 사육은 군내에서 제일인데 화악리가 그 중심이다. 특히 이 지방의 오골계는 예로부터 진상품으로 이름이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제조업으로는 양곡도정업이 군내 제일이다.

교통은 호남선철도와 국도가 통하고 있으며, 국도를 간선으로 연산리 · 한전리 · 마구평리에서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져가는 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천호리에 개태사지와 그 안의 석불입상, 표정리에 황산성, 관동리에 연산향교 · 연산아문, 청동리에 선사유적과 성터, 연산리에 송불암 미륵불, 고정리에 김장생묘, 임리에 양성당 · 돈암서원, 표정리에 고분군 등이 있다.

청동리(靑銅里) · 화악리(花岳里) · 천호리(千護里) · 표정리(表井里) · 장전리(長田里) · 사포리(沙浦里) · 백석리(白石里) · 덕암리(德巖里) · 관동리(官洞里) · 고정리(高井里) · 연산리(連山里) · 한전리(閑田里) · 임리(林里) · 어은리(魚隱里) · 송산리(松山里) · 오산리(梧山里) · 신양리(新良里) 등 20개 리가 있다.

  1. 은진면(恩津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2.52㎢, 인구 4,78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연서리이다. 본래 은진현의 소재지였던 곳인데, 한샛의 이름을 따서 대조곡면(大鳥谷面)이라 하여 북문(北門)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성본면(城本面) 8개 리, 송산면 7개 리, 도곡면(道谷面) 4개 리, 화지산면 · 가야면(可也面), 석성군 정지면(定止面) · 삼선면(三仙面),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 피제면(皮堤面) 등의 일부가 병합되어 대조곡면으로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38년 동리 · 해리가 논산읍으로, 논산읍 관촉리, 부적면 성평리, 가야곡면 성덕리 일부 등을 합하였고, 다시 1963년 구자곡면 시묘리(侍墓里)가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대체로 낮은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성평천 · 방축천이 서류하여 만나는데, 그 유역은 비옥한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농업은 쌀농사가 중심이며, 방축천 · 성평천유역이 그 중심을 이룬다. 밭농사는 교촌리 · 와야리 등지에서 행해지며, 성평리 · 성덕리 등지에서 논의 휴한기를 이용, 딸기가 재배디어 대도시로 출하된다. 옛날 성행했던 교촌리의 복숭아 재배는 쇠퇴되어가고 있다.

젖소사육은 방축리가 대표적이며, 돼지사육도 성하다. 제조업으로는 고려연초가공공장이 있으며, 그 밖에 번개탄 공장 · 양조장 등의 소기업체가 있다. 관촉사의 입구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 · 기념품점 등이 주차장에서 절의 입구까지 입지하여 관광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교통은 논산에서 연무대로 통하는 간선국도가 호남고속국도와 연결되고, 이와 나란히 남북으로 통하는 길이 성평천 제방도로와 가야곡면 두월리에서 교차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관촉리에 관촉사와 석조미륵보살입상 · 석등 · 배례석 · 석문, 교촌리에 은진향교, 남산리에 봉화산성 등이 있다.

연서리(蓮西里) · 방축리(防築里) · 토량리(土良里) · 시묘리(侍墓里) · 용산리(龍山里) · 교촌리(校村里) · 와야리(瓦也里) · 남산리(南山里) · 성덕리(城德里) · 성평리(城坪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채운면(彩雲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9.76㎢, 인구 2,68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산리이다. 본래 채운향(彩雲鄕) 지역으로 조선시대 은진군 채운면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곡면의 12개 리, 김포면의 6개 리, 대조곡면 · 삼산면 · 병촌면, 전라북도 여산군 피제면 · 북일면(北一面) 일부가 통합되어 지금의 이름으로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97년에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강경천 · 논산천 · 방축천이 금강 북류와 합류되는 곳이며, 하천의 범람과 황해안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아 범람되어 형성된 충적지형이 대부분이다. 남쪽의 우기리 · 화정리 · 심암리의 구릉지를 제외하고는 집중강우계절에 침수되던 곳이었으나 방축공사가 완료되면서 옥토로 바뀌었다.

경지율이 76.3%로 높은 데다 논이 97.6%이며, 수리안전답화된 곡창지이다. 벼농사가 성하며, 논의 휴한기에는 딸기의 시설재배가 성하다.

교통은 강경선 · 호남선철도의 분기점인 데다 북부강경 · 논산으로 이어지는 호남고속국도의 통과지점이며, 강경∼은진간의 도로가 면의 남단을 지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야화리에 논산 원목다리, 삼거리에 강경 미내다리 등이 있다.

화산리(花山里) · 용화리(龍花里) · 우기리(禹基里) · 심암리(深巖里) · 화정리(花亭里) · 삼거리(三巨里) · 장화리(長花里) · 야화리(野花里) 등 8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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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지지(大東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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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리』지방편(권혁재, 법문사, 1996)
『우리고장 충남』환경과 역사(충청남도 교육위원회, 1986)
『한국지지』지방편Ⅱ(건설부국립지리원,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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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충남편(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76)
『논산군지』(논산군지편찬위원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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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산업지』(대전실업협회, 1921)
「계룡산 신도안의 지리적 현황」(주경식, 『지리학』 29, 대한지리학회 1984)
논산시(www.non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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