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화학이란 처음부터 농업을 배경으로 한 화학적 영역에 속하며, 그 발상은 불분명하나 한편으로는 농경문화의 발상과 일치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내용으로는 선사시대 및 기원전의 농업에서 토양 · 비료 · 기상요인 · 용수 등과 식물의 성장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고, 그에 대한 인위적인 조절로 실제효과가 있음을 인식하였다.
우리 나라의 현대적 농화학의 발단은 서구보다는 반세기 정도 늦었다. 그 동안 변천해 온 경과를 4기로 구분하면, 제1기는 1944년 이전, 제2기는 1945년부터 1967년까지, 제3기는 1968년부터 1979년까지, 제4기는 1980년 이후로 될 수 있다.
제1기는 현대적 농화학의 도입과 기반조성기에 해당된다. 한국의 현대적 농학교육의 시작은 1904년 농상공학교의 설립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1906년에 농림학교로 개편되었고 그 당시의 교과목 중에 토양 및 비료(土壤及肥料)와 농산제조(農産製造)가 개설되었다.
그 뒤 학교 이름과 교과내용의 변경에 따라 토지개량론 · 식물생리화학 · 발효화학 등의 농화학 전문과목이 농화학 전문학과 없이 일반계 · 농학계 학과에서 기초 또는 지원과목으로 강의되었던 시대이었으므로 농화학의 기반조성기가 된다.
제2기는 독립된 농화학과가 당시 농학교육의 최고학부인 전문학교에 속하면서부터이고, 최초는 대구농림전문학교(大邱農林專門學校)와 수원농림전문학교(水原農林專門學校)에 설치되었다. 예를 들면 농화학 전문과목으로 생물화학 · 농약화학 · 비료제조학 · 영양식품화학 · 농산가공학 · 토양학 · 비료학, 기타 연관과목 등으로, 그 윤곽이 농업생산의 기초와 농업생산물의 이용 및 인체영양에 관련된 화학적인 모든 문제를 강의하고 연구하는 전문분야가 되었다.
이러한 교과내용 및 편제는 일본이 유럽의 것을 도입, 발전시킨 것을 한국에 그대로 들여온 것이었으며 학문적 전개방향이나 산업계와의 연결도 비슷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일본에 비하면 빈약한 편이었다.
한편, 이 시대에 고려대학교 · 건국대학교 · 춘천농과대학 · 충남대학교 · 충북대학 · 전북대학교 · 전남대학교 · 초급진주농과대학 · 제주대학 등 전국의 많은 대학에 농화학과가 거의 동일한 교과목으로 교육되었다. 또한 한국농화학회가 1960년에 설립되어 농화학 전문인의 친목과 학술정보의 교환 등의 활약이 연차에 따라 가속되면서 발전하였고, 식품산업 · 농약산업 등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시기에는 양적인 확장과 질적인 충실화가 이루어졌다.
제3기는 농화학기의 분화와 전문영역의 재정비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에는 지금까지 농화학과의 주요한 전문영역으로 포괄되었던 것이 독립된 학과로 분화되었으며, 학회도 이 기간에 7개 정도 파생하여 독립하였으며, 그 모체라 할 수 있는 농화학회는 약간 축소되었다.
제4기는 농화학의 영역면에서의 재정립과 활성면에서의 재활기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생명과학이 첨단분야로서 발전하게 됨에 따라 농화학계도 기존분야는 물론 생명과학분야가 활성을 되찾게 되었다.
농화학의 학술적 전문영역의 규정이 확연한 것은 아니나 1987년 현재의 활동상황을 보면 크게 4개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생산기초분야는 토양학 · 비료학 · 식물영양학 · 농약학 · 생태화학 등이다. 생명과학분야는 생화학 · 생화학공학 · 분자생물학 · 광생물학 등이다. 농산물이용과학분야는 식품재료학 · 식품가공학 · 영양학 등이다. 환경과학분야는 환경화학 · 환경미생물학 · 환경오염론 등이다.
학술로서의 전문분야는 이와 같이 광범위하나 교육면에서는 대학에 따라 교과내용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 농화학이 현대과학의 한 분야로서 발전하려면 기본적 화학문제를 해명하는 한편, 독립적인 전문영역의 확립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