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허대지

  • 예술·체육
  • 유적
  • 삼국
  • 시도자연유산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가 중국을 왕래할 당시 이용했던 나루터. 교통시설.
시도자연유산
  • 명칭 능허대지 (凌虛臺址)
  • 분류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 소재지 인천 연수구 옥련2동 194-54번지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2300080000
  • 위도37.4227083782958
  • 종목 시도기념물(1990년 11월 09일 지정)
  • 지정기관인천광역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소재구 (국립청주박물관,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인천 능허대지 표석 미디어 정보

인천 능허대지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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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가 중국을 왕래할 당시 이용했던 나루터. 교통시설.

내용

1990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백제가 378년(근초고왕 27)부터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던 475년(개로왕 21년)까지 중국을 왕래할 때 출발했던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당시 백제와 중국과의 교통로는 고구려로 인하여 육로가 막혀 있었기 때문에 바닷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때 사신들이 중국 가는 배를 탔던 곳이 바로 능허대 밑의 한나루[大津]였다고 한다. 송도의 청량산 끝자락이 서북쪽으로 뻗어 조그만 봉우리를 형성한 능허대에 이르고 이곳의 구릉 동쪽의 송도역 쪽으로 형성된 포구에 한나루가 있었으며 포구 입구에는 능허대에서 뻗은 ‘소둑’이라 하는 둑이 제방의 역할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사신들이 능허대에서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능허대 밑의 한나루에서 때를 맞추어 배를 탔다고 한다. 현재 능허대 주변은 개발되어 공원으로 단장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옛 모습은 다소 변형되었다.

참고문헌

  • - 『인천시사(仁川市史)』(인천직할시,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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