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동안에 인접한 죽곡리죽곡산 일대에 밀집 분포하고 있다. 죽곡산 정상에는 8부 능선을 따라 동서가 긴 타원형의 형태로 축조된 삼국시대의 죽곡산성이 있다. 이 산성의 동남 사면 일대에 고분이 다수 남아 있다.
이 중 산21-2번지 일대에 대구광역시 공업용정수장이 조성됨에 따라 1993년대구대학교박물관이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업예정지구 내에서 1기의 초대형 봉분을 확인해 이듬해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 조사된 제1호분은 남북으로 주행하는 해발 114m의 낮은 능선상에 축조되어 있다. 봉분은 직경이 남북 길이 39m, 동서 너비 32m이고, 현재 높이 9m이다. 봉토 내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유구가 함께 있었다. 그 중 1기는 평면 부채꼴형태의 적석단 유구이며, 다른 1기는 적석단보다 후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석실 유구이다.
부채꼴형태의 적석단은 동서 길이 24m, 남북 너비 8m, 높이 5m로서 약 40∼45단의 할석을 횡적쌓기로 축조하였다. 북쪽 2면은 수직으로, 남쪽은 호선을 그리며 경사지게 쌓아 올렸다. 본 유구는 고분관련 유적이 아니라 죽곡산성의 외성에 축조된 망루 또는 봉수와 관련된 유구로 판단된다.
이와 같이 적석을 하여 마치 거대한 단을 만들어 놓은 형태는 인접한 달성군 다사면 문산리산성 내에서도 1기가 확인되었다.
적석단 남쪽에 연접해 삼국시대의 고분이 축조되어 있었다. 이 유구는 기존의 적석단 일부를 이용해 후에 축조된 고분으로서 망실된 적석단 석재 일부를 석실의 벽석으로 이용하고 있다.
고분은 적석단 상면을 잡석으로 봉토를 덧씌운 것과는 달리, 적갈색 점토로서 봉토를 밀봉하고 있다. 고분의 내부는 ∥형으로 평면은 동서로 세장한 구조이다. 이들은 주실과 부실의 관계로서 북쪽의 것은 묘실의 상부를 7매의 넓은 판석으로 뚜껑돌을 하였다. 규모는 동서장축 16m, 남북단축 3m, 깊이 1.8m이다.
묘실의 내부는 이미 도굴되어 바닥층에서만 일부 유물이 남아 있었다. 바닥에는 강자갈을 깔았으며, 목재를 결구했던 관정의 출토로 보아 목관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측의 석실은 부실로 판단되며 상층을 목개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는 도굴되지 않았으나 상부의 토압에 의해 대부분의 유물이 완전히 파손되었다. 부실의 동측에는 별도의 부장곽이 마련되었다. 동서장축 17.2m, 남북단축 1.8m, 현깊이 13m이다.
유물은 금동제 이식편·삼루환두대도 병부편·청동합편 등이 출토되어 묘주인공은 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사람으로 판단된다. 부실에 수납된 토기는 호류, 고배류 등이 주류를 이루고, 성산고분군과 달서고분군 두 양식이 모두 존재한다.
편년은 개략적으로 5세기 말엽에서 6세기 초엽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