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백제어 ‘다라’, ‘드르’의 음차(音借)로서 ‘성(城)’을 의미한다.
중국의 군현과 같은 기능을 가진 지방지배조직으로서, 왕족 출신의 자제종족이 중심이 된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양서 梁書≫ 백제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2개의 담로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담로는 지방지배의 거점으로서의 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것을 중심으로 하는 일정한 통치영역을 의미하는 말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송서 宋書≫나 ≪남제서 南齊書≫에 보이는 백제왕이 신하를 왕이나 후(侯)에 봉한 기사와 연관시켜 봉건영지(封建領地)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담로제의 실시시기에 대해서는 백제건국 초부터로 보는 견해와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근초고왕대에 백제가 지배영역을 분정(分定)하고 있으므로, 근초고왕대에 담로제가 처음 실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담로제는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에도 계속 시행되었으나, 백제가 사비천도를 전후하여 지방조직을 5방(方) 1군제(郡制)로 정비하면서 거기에 흡수되어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