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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여자들이 입었던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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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여자들이 입었던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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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는 간이예복 또는 소례복(小禮服)으로 평복 위에 입었으며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 입었다. 조선 초기 명나라에서 전래된 단배자(短背子)가 배자저고리로 변하였다가 다시 숙종 이후 조선 말기의 당의와 같은 제도가 이루어진 것 같다. 단정할 수는 없으나 조선 말기의 당의에 영향을 준 반비(半臂) · 배자 등은 당나라의 유속(遺俗)으로 명나라를 거쳐 전래되었으므로, 이 옷의 명칭에도 ‘당’자를 붙여 당의라 부르게 된 것이라 본다.

당의는 반비 또는 소매가 없는 단배자와 비슷하면서도 좁은 소매가 달려 있다. 길이는 무릎까지인데 옆이 트였고, 두 앞자락이 서로 겹쳐지는 교임(交袵) 형태로 초록색 비단 거죽에 다홍색 안을 받치고, 자주색 겉고름과 안고름을 달았다. 소매 끝에는 창호지 속을 넣은 흰 천의 거들지를 달았고 어깨에서 소매 끝까지, 앞길과 뒷길, 겉고름과 안고름 등에는 화문(花文)과 박쥐 또는 壽(수) · 福(복) 등의 글자를 금직(金織) 또는 금박(金箔)하였는데, 직금과 부금(付金)은 민간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 당의는 조선시대에 있어 예(禮)를 갖추어야 할 때 입는 여자용 예복(禮服)이 되었다. ≪병와집 甁窩集≫에 보이듯이 초록당의(草綠唐衣)를 외명부(外命婦) · 사녀(士女)의 진현시(進見時) 상복(上服)으로 삼게 되었다. 법도가 엄하였던 궁중에서는 평상복이 되어, 계절에 따라 옷감과 색상을 다양하게 선택하여 입었다. ≪사절복색자장요람 四節服色自藏要覽≫에도 동지 전후에는 녹색 직금수복자당의(織金壽福字唐衣), 정월 망일 전후에는 공단당의를 입었다.

삼월 망일에는 녹색 항라당의(亢羅唐衣), 오월단오에는 초록 광사(光紗) 깨끼당의, 오월 십일에는 백광사당의(白光紗唐衣)를 입었다. 유월 순망간(旬望間)에 날이 몹시 더울 때는 저포당의(紵布唐衣), 팔월 십일에는 초록 깨끼당의, 팔월 이후에는 초록 광사당의를 입었다. 구월 초하루부터는 항라당의, 구월 망일에는 공단당의, 시월 초하루에는 겹당의를 입는다고 하였다.

또한, 오월단오 전날 왕비가 흰 당적삼(홑당의)으로 갈아입으면, 단옷날부터 궁중에서는 모두 당적삼으로 갈아입었다. 또 추석 전날 왕비가 다시 당의로 갈아입으면, 추석날부터 궁중에서는 다시 당의로 갈아입었다.

겨울철에는 자색당의(紫色唐衣)를 입기도 하였다. 조선 말엽에 이르러 당의가 왕실 소례복이 되면서부터는 여기에 흉배(胸背)를 달기도 하였다. 왕비는 오조룡원보(五爪龍圓補)를 달고, 다른 이들은 봉황을 수놓은 원형 또는 사각형의 흉배를 달았다.

참고문헌

『사례요람(四禮要覽)』
『사절복색자장편람(四節服色自藏便覽)』
『한국복식사』(석주선, 보진재, 1978)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집필자
유희경(전 이화여자대학교, 복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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