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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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쾌도 / 유숙
대쾌도 / 유숙
회화
작품
조선 말기의 화가 유숙(劉淑)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풍속화.
정의
조선 말기의 화가 유숙(劉淑)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풍속화.
개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그렸고 크기는 세로 105㎝, 가로 54㎝이며,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씨름하는 동자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조감(鳥瞰)에 가까운 시점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화면의 왼쪽 윗부분에 쓰인 화제에 의하여 ‘대쾌도(大快圖)’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유숙의 진작(眞作)인가에 대하여서는 약간의 의문점이 있다.

그림의 제목 옆에 “병오년 가지가지 꽃피는 계절, 격양세인이 태평한 세월에 그렸다(丙午萬花方暢時節 擊壤世人寫於康衢煙月).”라는 관지(款識)가 있다. 그러나 유숙 생존 당시의 병오년은 1846년, 즉 그의 나이 겨우 20세 때에 해당한다. 그리고 관지의 끝에 찍힌 양각방인(陽刻方印)도 해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스스로 ‘격양세인’이라고 칭한 사례가 더 이상 알려져 있지 않다. ‘격양세(擊壤世)’란 태평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과 같이 즐거운 장면을 그린 뒤 그에 어울리는 호를 즉흥적으로 지어 썼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 그림과 유숙과의 연관 문제는 앞으로 좀 더 검토되어야 할 과제이다.

내용

18세기 후반기에 크게 유행한 풍속화들은 대개 소규모의 화첩(畵帖) 형식이 많은데, 이 그림은 높이가 105㎝나 되는 비교적 큰 그림이다. 즉 풍속을 단편적으로 한 장 한 장에 묘사한 화첩의 여러 장을 한꺼번에 보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낮은 언덕들의 연결로 자연히 형성된 무대에 펼쳐진 놀이 장면들이 묘사되었다. 언덕의 경사를 따라 둘러앉은 구경꾼들은 위쪽의 열띤 씨름 경기와 좀 떨어져 도포 자락을 허리에 동여매고 택견 자세를 취한 두 젊은이들에게 적당히 시선을 나누어 보내고 있다. 화면의 제일 아랫부분에는 이런 때를 놓치지 않고 한몫 보려는 술장수가 멍석을 펴고 앉아 술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손님 중의 하나는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있다.

화면의 오른쪽 아래편에 두 사람을 대동하고 등장하는 관리의 붉은색 겉옷[紅直領]은 이 그림의 주된 색조인 부드러운 황색 계통, 시원한 푸른색들과 대조되어 강한 색채감을 낸다. 이 밖에도 붉은 색은 술장수의 찬합, 어린이의 옷, 군인들의 전립(戰笠)에 달린 술, 그리고 구경꾼의 부채 등 군데군데에 사용되었다.

오른쪽 윗부분의 어색한 투시법과 딱딱한 직선으로 된 보루(堡壘)는 자연과 인물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전체 구성에 극히 이질적인 요소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꼭대기에 비스듬히 기댄 채 아래의 광경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재미있는 자태, 벽 뒤에 몸을 반쯤 숨긴 채 얼굴을 놀이판 쪽으로 돌리고 있는 동자의 모습 등은 이 그림의 해학적인 요소이다.

의의와 평가

널리 알려진 김홍도(金弘道)의 「씨름도」에 비하면 씨름꾼이나 구경꾼들의 표정에 절박감이나 박진감이 훨씬 덜하고, 인물 하나하나의 특징도 뚜렷하게 묘사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이 그림은 조선 말기 풍속화가 차차 쇠퇴하여 가는 과정의 단면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한국의 풍속화』(정병모, 한길아트, 2000)
『한국회화』3(최순우 편, 도산문화사, 1980)
『우리나라의 옛 그림』(이동주, 박영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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