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바탕에 채색되었으며, 세로 105㎝, 가로 54㎝ 크기이다. 상단 제목 옆에는 “병오년 사방에 온갖 꽃이 피는 계절, 격양세인이 태평한 세월에 그렸다(丙午萬花方暢時節 擊壤世人寫於康衢煙月).”라는 관지(款識)가 있다. 제작 시기는 병오년, 즉 1846년으로 추정된다. 현재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품인 「대쾌도」는 1931년에 촬영된 유리 원판 사진 자료에 의하면, 작품 상단에 발문이 함께 장황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재는 「대쾌도」와 「대쾌도발문」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 혜산(蕙山) 유숙(劉淑, 1827~1873)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나, 작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크게 한바탕 벌어진 놀이판의 광경을 그린 풍속화이다. 인물들은 화면 중앙에서 벌어지는 놀이판을 중심으로, 타원형 구도로 언덕에 둘러앉거나 서서 구경하고 있다. 씨름과 택견으로 추정되는 놀이가 한참 진행되는 중이다. 위쪽에는 댕기 머리의 두 젊은이가 허리를 서로 맞잡고 힘을 쓰는 모양으로 씨름을 하는 듯하다. 그 아래쪽에는 도포 자락을 허리에 동여맨 두 젊은이가 약간 떨어져 마주하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손의 사용을 제한하여 버선발로 경기하는 모습이 택견 동작이라고 한다. 화면의 제일 아랫부분에는 이런 때를 놓치지 않고 한몫 보려는 술장수가 멍석을 펴고 앉아 술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손님 중의 하나는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있다. 다양한 인물 군상이 그려졌는데, 여인의 모습이 없는 점이 특이하다.
「대쾌도발문」의 일부 내용을 보면, 놀이판이 벌어지는 장소는 광희문(光熙門) 바깥 남쪽 언덕으로, 당시에는 속칭 수구문으로 불린 곳이다. 또한 나라에서 속화를 잘 그리는 화사 유림(劉淋)을 불러 그날 하루의 놀이판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 유림(劉淋)이 지금까지 작가로 알려져 온 유숙인지 아니면 다른 작가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거의 유사한 구도와 도상으로 그려진 「대쾌도」가 있다. 역시 종이에 채색되었으며, 세로 215.7㎝, 가로 60.4㎝ 크기이다. 화면 상단 화제에 '혜원(蕙園)'이 적혀 있어 신윤복의 전칭작으로 알려져 있다. 유숙의 「대쾌도」를 참조하였지만, 화면 상단의 남자아이 대신 가마 행렬과 담뱃대를 입에 문 여인, 그녀를 둘러싼 갓 쓴 인물 등을 그려 변화를 주기도 했다.
화첩(畫帖) 형식의 18세기 풍속화와는 다른 19세기 풍속화의 제작 양상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대쾌도발문」을 통해 화면 속 놀이 문화와 작자 문제 등에 대해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