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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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서울신문사에서 『매일신보』를 인수하여 창간한 일간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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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5년에, 서울신문사에서 『매일신보』를 인수하여 창간한 일간 신문.
편찬/발간 경위

1945년 11월 22일 조선총독부 국문판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每日新報≫의 사옥과 시설을 인수하여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꾸고 지령(紙齡)을 계승하여 발행하였다.

1998년 11월 11일 제호를 ‘대한매일’로 변경하고 지령 제18,503호부터 발간하였다. 이 지령은 ≪대한매일신보 大韓每日新報≫를 모체로 그 뒤의 ≪매일신보 每日申報≫와 ≪매일신보 每日新報≫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후 2004년 1월부로 ‘대한매일’이 다시 ‘서울신문’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용

초대 사장은 오세창(吳世昌), 주필은 이관구(李寬求), 편집국장은 홍기문(洪起文)이 담당하였다. 일제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는 광복 직후 좌경적인 사원자치위원회에 의하여 운영되었다.

1945년 10월 2일 미군정청이 인수하여 오세창 등 우익진영을 간부로 하여 재편성하였다. 그러나 사원자치위원회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되었으며, 11월 10일 미군정청은 재산조사를 이유로 정간시켰다.

그 뒤 미군정청의 종용에 의한 주주대표와 사원자치위원회의 타협하에 새로운 간부진을 구성하고, 1945년 11월 22일 석간부터 속간호를 발행하였다. 1949년 8월 15일부터 조석간 4면제를 단행하였으나 6·25전쟁으로 휴간, 1951년 4월부터는 서울에서 진중신문(陣中新聞)을 발행하였으며, 6월에는 파괴된 사옥을 보수, 재건하고 활자도 보완하였다.

진중신문은 타블로이드판 2면에 지나지 않았으나, 정부의 환도에 앞서 서울에서 발행된 유일한 신문으로서, 당시 서울시민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1955년 1월부터 3월 31일까지 조석간 각 2면제를 단행하였으며 1956년 10월 18일부터는 한글판 ≪서울신문≫을 발행하였다. 그러나 이 신문은 국한문판 기사를 표기만 한글로 옮겨놓은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1년 뒤 휴간되고 말았다.

1958년 10월 1일부터 종전의 조석간 6면제를 최초로 조석간 8면제로 바꾸었다. 1959년 3월 23일에는 종전의 ≪매일신보≫로부터 계승되어오던 지령을 ≪서울신문≫ 창간 이후의 지령으로 바꾸었다(창간호 제13738호를 제1호로 함). 1960년 4·19혁명의 와중에 화재를 당하여 사옥과 시설이 손상되었으며 많은 희귀한 자료들이 손실되었다.

같은 해 6월 27일 오종식(吳宗植)이 제9대 사장에 취임하여 재건에 힘썼으나 극심한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여 이듬해 5월 9일부터 약 6개월간 휴간하였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시설을 재정비하여 같은 해 12월 22일 주(週) 36면의 석간 단간제로 속간하였다.

1980년 12월 2일부터 종전의 석간에서 조간으로 바꾸었으며 1981년 1월 4일부터 1일 8면제에서 12면제를 실시하였다. 이 신문은 사시를 “나라의 이익을 앞세운다. 정치를 바른길로 이끌어준다. 경제를 뻗게 하는 길잡이가 된다. 사회를 밝게 하는 횃불이 된다.

문화를 꽃피우는 샘터가 된다.” 등의 5개항으로 정하고 있다. 198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진식자기 등을 이용하여 신문제작을 전산처리하는 방식인 CTS(Cold Type System)를 도입하여 1985년 1월부터 전면 시행하였다.

또한, 1985년 4월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전사옥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시설과 기재를 확충하였다. 1996년 10월에는 제호의 서체를 변경하고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하였으며, 1998년 현재 주 144면을 발행하고 있다.

이 신문은 자매지로 종합잡지 ≪신천지 新天地≫, 주간잡지 ≪선데이서울≫, 어린이주간지 ≪소년서울≫, 한국 최초의 시사주간지 ≪서울평론≫, ≪주간스포츠≫, 텔레비전주간잡지인 ≪TV가이드≫, 계간 종합예술평론지 ≪예술과 비평≫, 스포츠전문 일간지 ≪스포츠서울≫ 등을 발간하였다.

1998년 당시 ≪스포츠서울≫과 ≪퀸≫(1990년 7월 창간), ≪뉴스피플≫(1992년 ≪피플≫창간, 그 해 11월 현재의 제호로 변경)·≪TV가이드≫ 등의 잡지를 자매지로 두었다.

이 밖에 농어촌청소년대상·향토문화상·교정대상(矯正大賞)·서울문화예술평론상 등의 시상과 서울현대조각공모전·도예공모전·신춘문예·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 초청공연 등의 문화예술행사, 전국여자실업농구연맹전·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전국실업도로사이클선수권대회·패왕전바둑대회·전국대학바둑패왕전 등의 체육·레저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 주관하였다.

참고문헌

『’98한국신문방송연감』(한국언론연구원, 1998)
『서울신문40년사』(서울신문사, 1985)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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