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이탈리아 북부의 솔페리노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제네바로 돌아온 뒤낭은 솔페리노 전쟁의 비참상과 그의 체험을 『솔페리노의 회상』으로 엮어 1862년 11월 출판했다.
이 책 속에서 뒤낭은 상병자를 간호하기 위한 헌신적이고 자격 있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구호단체를 평시에 각국 내에 설치할 것과, 군대의 부상자를 돌보는 군의료 요원들과 군목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국제 조약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뒤낭의 제안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전신인 ‘국제부상자구호위원회’(일명 ‘5인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이 위원회의 초청으로 16개국 대표가 모인 회의가 1863년 10월 제네바에서 개최되어, 10개 조문의 적십자규약을 채택했고, 이에 따라 국제적십자운동이 정식으로 탄생되었다.
우리나라 적십자운동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찍이, 개화 선각자들에 의하여 적십자의 본원지인 유럽과 북미로부터 적십자 정신이 우리나라의 조정과 민간에 전하여지기 시작하여 『독립신문』의 사설에까지 여러 차례 반영되었다.
20세기 초 고종의 훈령으로 주 프랑스공사가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적십자 회의에 처음 참석하였다. 그리고 1903년 1월 8일 대한제국 정부가, 1864년 유럽 12개국 대표에 의해 서명 조인된 최초의 적십자조약인 「육지전투에 있어서 군대 부상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제네바협약」 가입과, 같은 해 2월 7일 「1899년의 헤이그협약」의 서명으로 적십자를 이해하게 된 뒤, 1905년 10월 27일 고종황제 칙령 제47호「대한적십자사 규칙」을 반포함으로써 국가 수준의 기틀을 갖게 되었다.
한일합병 1년 전인 1909년 7월 23일 일본의 침략으로 대한적십자사는 칙령 제67호에 의해 폐지되고,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그 명맥은 1919년 4월 중국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1919년 7월 13일 ‘대한적십자회’가 임정내무부령 제62호에 의해 설립인가로 부활되어, 1919년 11월 15일 대한적십자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하여 부활된 대한적십자회는 항일 무력투쟁을 인도적 측면에서 지원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고 외지의 동포환자를 도와주었다.
1945년 8·15광복 후 적십자사 재건운동은 1947년 3월 15일 조선적십자사로 일단 결실을 보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따라 1949년 4월 30일 공포 시행된 법률 제25호「대한적십자사 조직법」에 의해 같은 해 10월 27일 대한적십자사가 재조직되었다.
초대 총재에 양주삼이 취임하였다. 그러나 곧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여 대한적십자사는 임시수도 부산에서 전시구호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1년 7월 7일 서울 적십자병원에 임시 구호병원을 설치하였고, 1952년 2월 6일 휴전회담에서 양측 적십자 단체로 구성된 합동기구가 포로수용소를 방문, 포로송환에 협조하는데 합의하였다.
1953년 8월 3일∼9월 7일 포로송환에서 대한적십자회가 공동 UN적십자단 일원으로 복무하였다. 1955년 5월 26일 대한적십자사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국제 승인을 받은 뒤, 같은 해 9월 28일 국제적십자사 연맹에 가입하여 74번째 정식회원국이 되었다.
이때 『적십자소식』(당시 제호는 『적십자월보』)을 창간하였다. 1956년 5월 「적십자의 노래」를 제정하였으며, 1957년 11월 18일 6·25전쟁 당시 납북인사 생존자 337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
1958년 2월 15일 국립혈액원을 인수하여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을 개원하였고, 1959년 9월 삼남지방에 불어닥친 태풍 ‘사라’호의 피해 이재민을 구호하였다. 1964년 5월 26일 청소년적십자는 ‘스승의 날’을 제정하고 우선 JRC(Junior Red Cross) 조직학교에서 기념행사를 하였다.
1965년 12월 1일 우리나라 최초로 헌혈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66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회가 제네바 제협약 가입 비준을 동의함에 따라 1966년 8월 16일 한국은 제네바 제협약에 111번째 가입국이 되었다.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는 ‘남북이산가족찾기 회담’을 북한적십자사에 제의하였다. 그리하여 1972년 8월 29∼9월 2일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을 8월 30일 평양에서, 제2차 본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한 이후 7차례의 본회담을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열었다.
아울러 1973년 7월 11∼13일 제1차 실무회의(1973.11.28) 이후 제25차(1977.12.9)까지 실무회의를 진행하였다. 한편 1973년에 JRC를 RCY(Red Cross Youth)로 명칭을 바꾸었다.
1975년 5월 13일∼12월 20일 베트남 난민 1,562명을 집단수용 구호하였고, 1975년 5월 19∼31일 아시아 · 태평양 지역 청소년적십자 지도자회의를 개최하였다.
1981년 7월 1일 전국 혈액사업을 정부로부터 위탁받고, 전국에 14개 적십자 혈액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4년 5월 1∼9일 제6차 아시아 · 태평양지역 적십자혈액사업 회의를 개최하였고, 9월 24일∼10월 4일 북한적십자회가 제공한 수재물자를 인수하였다.
1985년 5월 27∼30일 12년 만에 재개된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5.28.∼29.)을 서울에서 개최하였고, 8월 26∼29일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한 뒤, 9월 20∼23일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 교환 방문하였으며, 12월 2∼5일 제10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한편 1987년 12월 4일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전면 개정되었다(법률 제3988호). 1989년 9월 25일∼10월 3일 소련 사할린 거주 동포 40명의 첫번째 단체 모국 방문을 성사시켰다.
1991년 7월 1일 적십자 129응급환자 정보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전국 11개소). 1991년 12월 13일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1991.12.10.∼13.)에서 ‘남북이산가족 문제 해결 대책을 강구한다.’는데 합의(합의서 제18조), 1992년 9월 17일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1991.9.15.∼19.)에서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부속합의서에 서명하여 발효하게 되었다.
1992년 9월 29일 사할린에 거주하는 고령 동포 77명을 영주 귀국시켜, 강원도 춘천의 ‘사랑의 집’에 입주시켰다. 1993년 2월 8일 부산적십자 난민보호소가 18년 만에 인도적 임무를 마감(1975년부터 2,944명 수용구호)하고, 6월 10일 원폭 복지사업소의 개소식을 가졌다.
한편 1993년 12월 16일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개정되었다. 1995년 5월 10∼15일 ‘아 · 태지역 적십자봉사원 대회’를 개최하여, 29개 회원국 적십자사와 2개 국제기구에서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선언문」을 채택하였다. 그리하여 아 · 태지역 적십자간의 협력 체계 구축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 연인원 3,000여 명의 직원과 봉사원을 파견하여 인명구조 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1월 23일 북한수재민을 돕기 위한 구호물자 담요 5,000매를 연맹을 통해 북한적십자회에 전달하였다(12월 11일 담요 3,000매 추가지원).
한편 1996년 10월 14∼19일 국제적십자가 활동하고 있는 각종 재해현장에 파견할 요원을 양성하기 위한 정예 국제구호요원 교육을 경기도 성남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최초로 실시하였다. 또 10월 14일 경상남도 합천에 원폭 피해자를 위한 종합복지관을 개관하였다.
1997년 4월 18일 대북 구호 식량 및 물품 제공에 따른 절차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 대표 접촉을 제의하였고, 5월 26일 중국 북경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에서 「남북적십자 사이의 구호 물자 전달 절차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 7월까지 옥수수 기준 5만t의 식량을 한적 직원이 북한에서 직접 전달키로 합의하였다.
조직은「대한적십자사 조직법」에 의하여 대통령을 명예 총재로, 국무총리를 명예 부총재로 추대하며 의결기관으로 전국 대의원총회 중앙위원회, 운영위원회가 있으며 전국 대의원 총회는 대통령이 위촉하는 8인, 국회에서 위촉하는 12인, 특별시장 · 광역시장 · 도지사가 위촉하는 각 2인, 적십자사 지사에서 선출하는 각 6인으로 구성하고, 중앙위원회는 총재를 포함한 28인으로 구성하며 운영위원회는 총재를 포함한 7인으로 구성하고, 총재는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하여 대통령의 인준을 받아 취임하고 기타 임원은 부총재 2인, 재정감독 1인, 법률고문 1인을 둔다.
대한적십자사는 특별시, 광역시 및 각 도에 지사를 두고 있는 외에 적십자 사업기관으로 병원, 혈액원, 회관, 봉사관 등이 전국 각지에 있다.
대한적십자사의 사무는 사무총장의 책임하에 기획관리실, 총무부, 사회봉사부, 청소년부, 의료사업부, 국제부, 이산가족사업부, 홍보실, 감사실, 혈액사업 본부에서 집행하며 서울특별시, 부산 · 대구 · 인천광역시 및 각도의 13개 지사와 혈액원 16개 소, 병원 7개 소, 기타 교육원, 혈액제제 연구소 등의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자원봉사조직으로는 청년 · 부녀 · 장년 · 노년층으로 구성된 일반 지역 · 직장 봉사회와 각 사업부서별 특정 전문 분야의 지식 · 기술 · 기능을 보유한 전문 봉사회, 초 · 중 · 고 · 대학의 청소년 적십자(RCY), 그리고 각종 사업 후원조직 등이 있다.
2014년 5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교육원, 혈액수혈연구원, 사업추진국(재난구호팀), 병원보건안전국(보건안전교육팀)이 원주 혁신도시(강원도 원주시 혁신로 50)로 이전하였다.
2019년 ‘혈액관리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에 의해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회장으로 그 직함이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명예총재가 명예회장으로, 총재와 부총재가 회장과 부회장으로 각각 변경되었다.
주요 사업으로는 ① 구호 사업, ② 사회봉사 사업, ③ 청소년 사업, ④ 안전 사업, ⑤ 병원 사업, ⑥ 의료정보 사업, ⑦ 지역보건 사업, ⑧ 혈액 사업, ⑨ 국제 사업, ⑩ 국내외 이산가족찾기 사업, ⑪ 남북적십자 회담, ⑫ 원폭복지 사업, ⑬ 인도법 보급 사업 등을 행하고 있다. 2000년 3월 현재 적십자 회원 수는 약 607만 5,000명이고, 적십자 후원회원은 4만 200명이다. 본부는 강원도 원주시 혁신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