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에 발족한 조선체조연맹과 같은 시기에 결성된 체조경기연맹이 1948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통합,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앞선 1908년 9월 우리나라 최초의 체조단체라고 볼 수 있는 무도기계체육부(武徒器械體育部)가 이희두(李熙斗)와 윤치오(尹致旿)에 의하여 무관학교 안에 창설되었으며, 1909년 10월 24일에는 조원희(趙瑗熙)·이기동(李基東)·김성집(金聲集) 등 한성(漢城)의 체조교사들이 보성중학교에서 모여 체조연구회를 조직하여 체조의 기술과 이론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역할을 한 바 있다.
또한 1927년부터는 조선기독교청년회 체육부가 철봉경기대회를 여는 등 우리나라 체조경기를 이끌어왔다. 1945년 9월 1일 대한체조협회를 창립하여, 1945년 11월 26일 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다.
체조연맹과 기계체조연맹을 통합하여 대한체조협회라는 이름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48년 체조협회로 통합된 뒤의 국제활동은 1959년 10월 16일 국제체조연맹(FIG)에 가입하였으며, 1965년. 10월 아시아체조연맹에 가맹하였다.
그리고 1960년부터 올림픽대회에 참가하였다. 1968년 6월 김경수(金璟洙)·박길준(朴吉俊)·장수안(張壽顔)이 최초로 국제심판자격을 얻었다.
1992년 5월 아시아 스포츠아크로바틱에 가맹하였고, 1994년 10월 국제트램폴린연맹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1995년 3월 30일 사단법인체로 전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0년대에는 체조인구의 저변확대와 기반구축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970년대에는 제7회테헤란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이영택(李泳澤)선수가 평형봉 1위, 김국환(金國煥)선수가 링 1위, 김희철(金輝喆)선수가 안마 3위 등 획득하여 중흥기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에는 국제대회에 상위 입상하는 등 발전기에 돌입하였다. 1985년 협회발족 이후 처음으로 국제대회(아시아청소년체조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3개(평행봉·이단평행봉·평균대), 은메달 4개, 동메달 6개를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고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여홍철(呂洪哲)이 도마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협회의 설립목적은 체조 운동을 범국민 운동화하여 국민체위 및 체력 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기품의 진작, 아마추어 체조경기 단체를 지도 양성하여 국위선양을 도모함으로써 민족문화 및 체조 발전에 기여함이다.
그리고 주요 기능은 ①국민보건체조의 재정 및 보급, ②체조에 관한 정부자문 및 관계기관에 대한 건의, ③국내외 각종 체조대회 개최 및 참가, ④각종 체조대회 행사의 관리 지도, ⑤가맹단체와 지부의 관리 감독, ⑥ 체조선수의 양성 및 건강관리 등이다.
조직은 기구로서 이사회·대의원총회·사무국이 있고, 회장 1명, 부회장 4명, 전무이사 1명, 이사 22명, 감사 2명 모두 30명의 선임임원과 16명의 대의원 및 위촉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하연맹체로는 한국중고연맹이 있다. 협회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륜동의 올림픽회관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