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중앙관청으로서의 도화원이 있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서경(西京 : 지금의 평양)에는 지방관청의 하나로 설치되었던 기록이 보인다.
서경의 중요성에 비추어 중앙의 관제를 그대로 따랐을 것으로 미루어보면 중앙에도 도화원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고려시대 후기의 개인 문집에 보이는 화국(畫局)도 도화원의 별칭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있어서의 도화원은 건국 초기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음이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된다.
1400년(정종 2)에 용관(冗官)의 도태(淘汰)문제와 관련하여서 상림원(上林院)·상서원(尙書院)과 함께 도화원의 이름도 열거되어 있는 것을 보면 도화원이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여왔음을 알 수 있다.
건국 당초에 조선왕조의 관제가 대체로 고려의 전통을 계승한 점으로 보아 고려 말의 도화원제도도 그대로 조선에 이행되었다고 본다.
그리하여 도화원은 조선 초기부터 존재하여왔고 1464년(세조 10)까지는 고려 때의 명칭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도화원의 명칭은 1474년(성종 5)『경국대전』이 개찬(改撰), 반포되기까지의 어느 해에 도화서(圖畫署)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