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0월 11일 김승학(金承學)을 발행인으로 서울 태평로 1가 38에서 창간되었다. 처음에는 주간으로 발행되었으나 뒤에 일간으로 변경되었으며, 제호도 한글로 바꾸었다.
이 신문은 창간사에서 ‘국민여론의 환기정도(喚起正導), 민족문화의 채굴선양(採掘宣揚), 국민원기의 고무진기(鼓舞振起), 노농대가(勞農大家)의 이익옹호, 두국도배(蠹國徒輩)의 배격소청(排擊掃淸)’을 사시(社是)로 내세우면서 신탁통치의 반대, 독립대한의 순국열사와 건국지사의 행적을 기획하여 그 표본으로 삼고자 노력하는 등 우익 정론지로서 활약하였다.
1947년 7월 15일에는 좌익 테러단의 습격으로 문선시설을 파괴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1949년 1월 8일까지 발행된 기록은 있으나 그 뒤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