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어독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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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개념
독일어와 독일어로 쓰인 문학작품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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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독일어와 독일어로 쓰인 문학작품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내용

독일어로는 게르마니스틱(Germanistik)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1946년 8월 국립 서울대학교가 창립되면서 문리과대학에 독어독문학과가 설치됨으로써 그 기반이 마련되었다. 초대 주임교수로는 동경제국대학 출신의 김삼규(金三奎)가 취임하였다.

일제시대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는 독어독문학과가 없었으나, 일제는 주로 독일에서 학문·과학·기술 등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당시 서울대학교 도서관에는 독일관계 서적들이 많이 있었다.

학생들이 독문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예과를 수료하고 진학하거나, 신제중학교를 졸업하고 입시를 거쳐 진학하였다. 당시 교수진 중에는 어학을 전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문학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독일 고전문학 중심으로 강의가 이루어졌다.

1949년에 취임한 일본 법정대학 출신의 김진섭(金晉燮)은 오스트리아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슈니츨러의 특강은 유명하였다.

언론계로 전출한 김삼규의 후임으로 일본 법정대학 출신의 이회영(李檜永)이 취임했는데, 그의 <파우스트> 강의는 정평이 있었다. 소장파 전임강사로는 일본 상지대학 출신의 한남구(韓南龜)가 있었는데, 그가 편집하고 주(註)를 달아 출판한 ≪헤세전집≫은 초창기의 독문학 교재로서 주목을 끌었다.

그 밖에 시간강사로는 황주봉(黃朱鳳)·황수봉(黃壽鳳) 형제가 탁월한 어학 소질을 발휘하였다. 특히 형인 황주봉의 <헤르만과 도로테아> 원서강독은 많은 인기를 모았으며, 일본 와세다대학 출신의 문창수(文昌洙)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강의하였다.

혼란기에도 1948년에는 서울대학교 독문학과의 총학생수가 17명이 되어 전 학년이 정비되었고, 1948년에 첫 졸업생으로 곽복록(郭福祿)이, 1949년에는 이영배(李永培)가 배출되었다.

독어독문학이 학문으로 정립되어 연구가 본 궤도에 오르고 있을 무렵, 6·25전쟁의 돌발로 학문 연구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다.

학생들과 교수들은 제각각 흩어져 버려서, 부산구덕산(九德山) 기슭에 임시 교사를 세우고 개강하였을 때, 과에 모인 학생수는 3, 4명에 불과했다. 강의는 이회영이 거의 전담하였으며, 당시 숙명여자대학 조교수로 있던 김정진(金晸鎭)이 출강하여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Deutsche Liebe>을 강독하였다.

이런 동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1951년에 강두식(姜斗植), 1952년에 지명렬(池明烈), 그리고 1953년에는 정찬조(鄭澯朝)가 단신 졸업하였다.

휴전협정이 성립되자 1953년 9월 15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이 서울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 동안 거의 공백상태에 가까웠던 독어독문학과도 원상 복구를 서두르며 재출발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독한사전≫ 편찬사업이 시작되어 수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되었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세계문학전집 출판 붐이 일어나 독일문학 걸작들의 번역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헤르만 헤세·토마스 만·한스 카로사·프란츠 카프가 등의 작품들이 번역되었다. 또한 한 작가의 전집 및 선집도 출간되었는데, 괴테·니체·슈바이처·헤세·카프카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한편 1950년대 후반부터 많은 독어독문학 교수들이 각종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서독을 비롯하여 오스트리아·스위스·미국 등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들은 구미각국의 대학에서 연구하고 귀국하여 우리 나라 독어독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독일 및 오스트리아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한국인은 곽복록, 두번째는 한봉흠(韓鳳欽), 세번째는 오한진(吳漢鎭)이며, 그 후 이유영·김철자·이덕호·허창운·이인웅·정규화 등으로 이어진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여러 대학에 관현학과가 신설되었으니, 1954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에 그리고 1959년에는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각각 설치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서독의 장학기관인 독일학술교류처(DAAD=Deutscher Akademischer Austauschdienst)에서는 독일인 교수 요원을 한국에 파견하여 실용 독일어와 독어독문학을 직접 강의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이 분야 발전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또한 1971년에는 서울 남산 기슭에 독일문화원(Goethe Institut)이 세워져 독일인 강사의 독어회화 수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독일문화원의 사업은 아주 다채로워서 학술강연·연극공연·영화상영·음악회·미술전시회 등을 개최하는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더구나 부설 도서관에는 각 분야에 걸친 수많은 독일 문헌이 소장되어 있어서, 독어독문학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분야에서 독일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서독 정부는 독어독문학 및 독일지역학 관계 서적을 서울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에 기증하여 독일 관계의 학문 발전에 기여했으며, 베를린자유대학·본대학·보쿰대학 등에 한국어과를 설치하여 한국과 독일 양국의 문화교류를 더욱 증진시키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각 대학에 독어독문학과가 점차 신설되어 1960년대에 서강대·고려대·이화여자대학교에 새로이 독어독문학과가 설치되었다.

이 때부터 각 대학의 학생들 사이에도 교류가 이루어져서 매년 친선체육대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한독학생회라는 독어회화 동아리가 생기고 프라이에 뷔네(Freie Buhne)라는 연극단체도 생겨났다.

그리고 독어독문학과가 있는 각 대학에서는 독문학의 장르 중 비중이 큰 희곡의 유명 작품을 원어나 우리말 번역으로 공연하는 전통이 세워져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에는 연세대학교·부산대학교·숙명여자대학교·단국대학교 등에도 독어독문학과가 설치되었다. 그와 동시에 독일로 유학 갔던 신진 학자들이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각 대학의 전임교수로 취임했으며, 그들은 작품 번역이 아닌 문예학 이론을 겸비해서 작품해설을 하면서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1980년도에는 정부의 제2외국어 장려정책으로 인해 독어독문학은 더욱 눈부시게 도약하게 되었다. 우선 강원대학교·건국대학교·경북대학교·동국대학교·덕성여자대학교·동아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성신여자대학교·인하대학교·전남대학교·중앙대학교·충북대학교·한양대학교·홍익대학교 등 수많은 국공립 및 사립대학에 독어독문학과, 독일어과 또는 독일학과가 신설되었다.

이후에는 졸업정원제라는 입시제도로 인해 입학 정원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만 해도 독일어과 학생수가 1천 명을 훨씬 넘고 있었다.

그 결과 현재 전국의 60여 개 대학에 약 70개 학과가 개설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독어독문학을 담당하는 전임교수 및 강사의 수도 급증하였다.

또한 24권으로 된 ≪브록하우스 Brockhaus≫ 백과사전을 비롯하여 ≪봐리히 Wahrig≫와 ≪두덴 Duden≫ 큰사전, ≪킨들러 Kindler≫ 문학사전, ≪현대독문학사전 KLG≫ 등의 사전류가 도입되어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동아 독한사전≫·≪독한사전≫(허형근 편) 등이 출간되고, 한국독어독문학회 편 ≪한독사전≫이 간행되기도 했다. 특히 ≪한독사전≫은 한국 및 독일 정부의 후원으로 독어독문학 교수들이 대거 동원되어 다년간 집필한 것으로 일본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후속작업으로 한국독어독문학회에서는 역시 한국과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주로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41명의 소장학자들이 집필한 ≪독한사전≫을 1995년에 발행하였다.

우수한 인적 자원이 풍부한 독문학계에서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번역해 내고, 신문·잡지 등에도 독문학에 관계된 글을 끊임없이 발표하며, 라디오 및 텔레비젼 방송에서도 독일어 강좌와 독문학에 관한 교양프로를 진행하고, 전문 학술논문과 저서들을 간행해 내었다.

1990년도에 접어들면서 독어독문학은 다시 침체되기 시작한다. 목포대학교를 제외하고는 학과를 신설하는 대학이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계열별 입시제도와 최근에는 학부제의 도입으로 인하여 독어독문학과의 강의시간과 학생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폐과 위기에 놓인 경우도 속출하고 있으며, 새로운 전임교수를 채용하는 대학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되고, 시간강사 자리조차 얻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반면에 1980년대에 유학을 떠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고 있는데, 이 최고급 인력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심각한 실업상태가 초래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독어독문학의 학문적 발전과 열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우수한 소장파 학자들의 활동은 현재 대학에서라기보다는 주로 학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1959년 5월에 발족된 한국독문학회가 이름을 바꾼 한국독어독문학회는 700명 이상의 정회원을 두고 학술연구발표회·독일 교수와의 설악심포지움·문화행사 블릭 움 블릭·학회지 발간 등을 통해 다양하고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 나라 독어독문학 연구의 핵심 모체 구실을 하고 있는 이 학회의 학회지 ≪독일문학≫은 2000년 초에 제73집이 발간되었으며, 여기에는 이 분야의 수준 높은 논문들이 게재되고 있다. 1970년대에 발족한 한국독어교사협회(KDV)도 ≪리테라 Litera≫지를 발간하며 활동하고 있다.

독문학도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연구활동도 계속되어 전문화·세분화되고 있으며, 어느 한 작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술단체도 발족되었다.

1982년에는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지는 괴테의 사망 150주기를 계기로 한국괴테협회가 창립되었는데, 후에 한국괴테학회로 개칭하고 현재 학회지 ≪괴테연구≫를 12집까지 발간하였다.

1983년에는 실존주의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카프카의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카프카학회가 발족되었으며, 학회지 ≪카프카연구≫를 발행하고 있다.

그 이후로 계속하여 1987년 한국뷔히너학회가 창립되어 ≪뷔히너와 현대문학≫을, 1989년에 창립된 한국브레히트학회는 ≪브레히트와 현대연극≫을, 1992년에 창립된 한국헤세학회는 ≪헤세연구≫를 발간하며 각 분야의 역량 있는 논문들을 싣고 있다.

이 밖에도 독일어교육 연구에 중점을 둔 학회로서 1983년 창립된 한국독어독문학교육학회가 ≪독어교육≫을, 1995년에 창립된 한국독일어교육학회가 ≪외국어로서의 독일어≫를, 그리고 독어독문학 전반적 연구를 추구하며 1993년에 창립된 독일어문학회는 ≪독일어문학≫을, 1993년 창립된 독일언어문학연구회는 ≪독일언어문학≫을 발행하고 있다.

그리고 1992년에 김병옥(金秉玉) 교수가 사재를 들여 발족시킨 재단법인 한독문학번역연구소는 학술지 ≪번역연구≫를 발간함과 동시에, ‘한독문학번역상’을 마련하여 매년 가장 훌륭한 독한 또는 한독 번역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함으로써 수많은 신진 학자들의 학술 및 번역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독어독문학 도입 초창기에는 독어학 분야 전공자가 없어서 개론 수준의 강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독어학을 전공한 소장학자군이 등장하면서부터는 폭넓고도 세분화된 독어학 연구와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는 학술발표와 전문서적 출판 등 그 활동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독문학 분야도 과거에는 독일어로 된 소설·시·희곡·수필 등의 강독이 위주였지만, 오늘날에는 독평론·문예학·시대별 문예사조·작가론·작품론·장르론·비교문학 등 다채롭게 연구와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과 독일문학을 비교하거나 한국어와 독일어를 비교하는 등 양국간의 어문학을 비교 연구하는 연구 업적도 많이 나오고 있다.

독어독문학 관련 연구논문·저서·번역서 등 제반 업적에 관해서는 경북대학교 이충섭 교수가 정리한 ≪한국독어독문학 연구문헌서지≫(탑출판사)·≪한국의 독어독문학 관계 번역문헌정보≫(한국문화사), 그리고 현재 작업 중인 인터넷(www.german.pe.kr)에서 상세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독어독문학계25년사」(지명렬, 『이회영교수회갑기념논문집』,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2)
「한국독일어교육의 비평사적고찰」 Ⅰ∼Ⅵ(김정진, 『독일문학』 11, 1971 ; 『성곡논총』 3, 1972 ; 『서울사대논총』 21·22, 1980·1981)
「Die Lage der Germanistik in Korea und ihre Probleme」(박환덕, 『독일문학』 24, 1980)
Germanistik in Korea(임한순, Jahrbuch fur Internationale Germanistik 2/18,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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