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계통의 동경유학생들이 표면상 고학생 및 노동자들의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조직한 고학생들의 친목 단체이다.
1917년 1월 23일홍승로(洪承魯)의 발기로 조직된 동경노동동지회(東京勞動同志會)가 유야무야해지자 이기동(李起東)·한윤동(韓潤東)·홍승로·유진걸(柳辰杰)·김낙준(金洛俊)·김약수(金若水)·박열(朴烈)·정태성(鄭泰成)·송봉우(宋奉瑀)·박일병(朴一秉) 등이 이를 확대, 개편하여 1920년 1월 25일 고학생들의 조직체로 발전시켰다.
설립 당시의 회원은 300여 명이었으며, 주요 간부들은 재일유학생 가운데 좌익운동의 주동자급들이었다. 이들은 회의 조직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별개의 사상운동체를 가지고 있었다. 1921년 11월 21일 이 회의 동지 20여 명이 재일한인의 사회주의운동 단체의 효시인 흑도회(黑濤會)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박열을 중심으로 무정부주의를 고집하는 일파와 김약수를 중심으로 반정부주의적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일파가 대립해 곧 해산되었다.
그 뒤 박열 일파는 흑우회(黑友會)를 조직하여 잡지 『현사회(現社會)』를 발간했으며, 김약수 일파는 북성회(北星會)를 조직했다가 다시 일월회(一月會)라 개칭해 기관지 『척후대(斥候隊)』와 『전진(前進)』을 발행하여 사회주의 사상 전파에 주력하였다.
회는 표면상으로는 고학생들의 친목 및 노동자들의 계몽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회를 움직이는 주동 인물들은 사회주의 사상의 고취와 전파에 주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를 위해 1922년 1월서울에 들어와 그 해 2월『조선일보』에 「전국노동자제군에 격함」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김약수 등 12명이 연서한 선언문의 요지는, 일본의 주요 사상 단체 및 노동 단체와 제휴하여 노동대학의 설립, 잡지 『동우(同友)』의 발행 등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할 것이며, 이제부터는 고학생 및 노동자의 구제기관으로부터 계급투쟁의 직접적 행동기관임을 선언한다는 것이었다.
선언은 한국현대사상 국내에서 공개문서로써 계급투쟁을 선언한 것으로서는 최초의 것이며, 국내의 젊은 지식인과 학생층에 심대한 사상적 충격을 주었다. 회의 선언은 1922년 3월 국내의 유일한 상설적 사회주의운동 단체인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의 결성에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