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침례회의 전신(前身)이다. 1889년(고종 26) 말에 우리 나라에 온 캐나다 선교사 펜윅(Fenwick,M.C.)이 1894년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서 조직한 한국순회선교회(The Corea Itinerant Mission)와, 미국 보스턴 클라렌든 스트리트 침례교회(Clarendon Street Baptist Church)가 1895년 조직한 엘라 싱 기념선교회(The Ella Thing Memorial Mission)가 펜윅의 주도하에 병합되어 31개 교회의 토착적 교단조직이 형성되었다.
처음 조직된 것은 1906년 충청남도 강경에서 대회가 소집되어 대한기독교회(大韓基督敎會)라는 명칭을 만들면서부터이다.
이 명칭은 일제강점기에 몇 차례 변경되었는데, 1921년에는 조선총독부가 ‘대한’이라는 용어의 삭제를 강요하여 동아기독교회로 바뀌었다.
1933년에는 일제의 탄압에 따른 변절과 세속적 사조가 침투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양무리’라는 뜻의 ‘대(隊)’를 취하여 동아기독대(東亞基督隊)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대’라는 용어가 군사조직의 뜻이 강하다고 하여 조선총독부가 명칭 변경을 강요하여 1940년에는 다시 동아기독교로 바뀌었다. 이 명칭은 1944년 총독부에 의해 교단이 강제 해체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동아기독교의 교단조직과 체제는 권위적 교권체제로, 교단의 모든 교인은 감목(監牧)의 지배 아래 있었다. 교단의 제반 임원과 직분은 모두 감목이 임명하고 파송하였으므로, 개교회의 자치권은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교단은 총부(總府:총회), 구역(區域:지방회) 및 당회(堂會:개교회)로 조직되었고, 임원은 감목·목사·감로(監老:장로)로 되어 있었다.
당원(堂員:평신도)은 통장(統長:百夫長에 해당)·총장(總長:五十夫長) 및 반장(班長:十夫長)의 직종이 있었고, 임원이나 당원 이외의 직종으로는 전도직(傳道職)이 교사(敎師)·총찰(總察)·전도·예비 전도의 네 직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중 교사는 목사 후보자로서 오늘날의 전도사와 같은 직분이었다.
동아기독교의 신앙적 특색은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의 신앙 및 전도방식을 표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으로, 특히 사도 바울의 신앙을 구현하기에 힘썼다.
또한, 신자의 중생체험(重生體驗)을 강조하고 침례를 성서적인 주요 의식으로 실시하는 등, 대체로 침례교의 복음전도적 신앙을 강하게 반영하였다.
동아기독교는 1906년에 교단조직의 정립과 함께 46개 조로 된 교규(敎規)를 작성하여 체제를 정비하였는데, 정기적인 집회로는 일 년마다 열리는 총회인 대화회(大和會), 교단의 임원이 모이는 임원회, 개교회와 구역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당회(堂會)가 구성되어 있었다.
동아기독교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해외의 선교사업이다. 1890년에 한국의 장로교와 감리교가 한반도의 선교 지역을 분할하자, 동아기독교는 다른 교단의 손이 미치지 않은 지역의 선교에 착안하였다.
그리하여 만주·간도·시베리아·몽고 지역의 선교에 주력하였다. 따라서 초창기 전도 지역인 원산과 충청남도·경상북도 일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교 역점을 해외사업에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외 선교과정에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1918년에는 시베리아 선교에 나선 4명의 선교사가 블라디보스토크 항해 도중에 난파되어 사망하였고, 1921년에는 만주의 개척 선교에 투신하다가 일제에 의해 살해된 선교사들도 있었다.
동아기독교는 성경 번역사업에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는데, 1917년에는 독자적으로 신약전서를 번역·출판하였으며, 1938년에는 원산번역판(元山翻譯版)의 제3판을 간행하였다.
또, 찬송가 편찬사업에서도 1899년 14장으로 된 ≪복음찬미≫를 독자적으로 출판하였으며, 1938년에는 274장으로 된 6판을 출판하였다.
이와 같이 해외 선교사업과 성서 보급을 통해 개척 전도사업에 전력을 기울인 결과, 1940년에 이르러서는 국내 약 100여 개의 교회, 만주·간도 지역에 100여 개의 교회, 그리고 시베리아에 47개의 교회, 몽고지역에 수 개의 개척 전도소를 개설하는 등의 교세 확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발발과 더불어 일제는 신사참배 및 황궁요배를 강요하면서 기독교 탄압을 강화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이러한 종교 탄압에 완강히 저항하던 동아기독교의 교단 지도자 32명을 붙잡았고, 1944년에는 교단이 해체되고 교회 재산은 국방헌금으로 국가에 헌납, 귀속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