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 ()

동해시 전경
동해시 전경
인문지리
지명
영동지방 중남부에 위치한 강원특별자치도의 시.
정의
영동지방 중남부에 위치한 강원특별자치도의 시.
개관

동쪽은 20.7㎞의 해안에 연접하고, 서쪽은 정선군 임계면, 남쪽은 삼척시 교동, 도원동, 미로면, 하장면, 북쪽은 강릉시 옥계면과 접한다. 동경 129°09'∼128°57', 북위 37°25'∼37°36'에 위치한다. 면적은 180.20㎢이고 인구는 9만 3895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0개 동이 있다. 시청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천곡동에 있다.

자연환경

시의 서쪽 경계에는 태백산맥의 분수령인 청옥산(靑玉山, 1,404m) · 두타산(頭陀山, 1,353m) · 상월산(上月山, 970m) 등이 솟아 있어 높고 험하다. 여기에서 동해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지만, 해안지역에는 너비 약 2㎞의 해안저지에 50m 내외의 구릉성 저지대가 남북으로 배열되어 농경지와 시가지로 이용되고 있다.

동해시 일대는 다양한 지층이 나타나고 있어서 고생대의 조선누층군의 중부와 평안누층군의 대부분, 이들에 관입한 편마상화강암과 신생대의 우백질화강암을 주로하고, 이들을 부정합으로 덮고 있는 신생대 4기의 홍적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조선누계군에 포함되는 풍촌석회암이 묵호항에서 북평까지 분포하며, 백색내지 회백색의 석회암으로 이 암층에 천곡동굴이 발달되어 있으며. 묵호항을 기점으로 남북으로는 평안누계층이 4㎞에 걸쳐 나타난다.

태백산맥의 동쪽이 급경사인 관계로 강 유역이 짧아 범람은 없으나, 강물의 유속이 빨라 갈수기에는 용수부족 현상이 간혹 있으며, 긴 해안선의 발달로 추암해금강 등 빼어난 해안절경이 있다. 또한 동해시는 면적의 대부분의 산지로 형성되어 계곡형 관광지인 무릉계곡과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암의 매장량이 풍부하다.

하천은 북부의 마상천(馬上川)과 남부의 전천(箭川)이 짧은 급류를 이루며 동류하여 동해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나, 유수량이 많지 않아 용수로 이용하기에는 불충분하다. 형제봉(兄弟峰, 483m) 동쪽에서 발원한 마상천은 만우동을 지나 괴란동에 이르러 작은 하천들을 합류해 동류하면서 심곡동 · 망상동을 거쳐 동해로 흘러든다. 이는 망상동 일대에 규모는 작으나 기름진 충적지를 형성, 벼농사에 필요한 농업용수의 공급원이 되고 있다.

백복령(白茯嶺)에서 발원한 전천은 남동쪽으로 흘러 이도동에 이르고 서쪽에서 흘러오는 삼화천(三和川)을 합류해 동류하면서 북평동과 송정동을 지나 동해로 흘러든다. 이는 하류지역에 넓은 충적지를 형성, 벼농사의 중심을 이루고 이 지역에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그러나 수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해안은 암석해안으로 해식애를 이루고 어달동과 묵호진동에는 해안단구 지형이 발달해 있다. 최근 천곡동은 시가지 안에서 석회동굴인 천곡동굴(泉谷洞窟)이 발견 · 개발되어 훌륭한 답사 ·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해안선은 전반적으로 단조로우나, 묵호 부근의 만입부는 천연의 양항을 이룬다. 전천과 마상천 하구 주변에는 비교적 넓은 사빈(沙濱)이 형성되어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연안에는 대륙붕이 형성되지 않아 수심이 깊다.

동해시는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해발 1,000m를 서쪽으로는 상회하는 태백산맥의 준령을 병풍삼아 동해쪽에는 큐루시오난류의 영향을 받는 연안해류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연평균 기온은 12.5℃내외, 1월 평균기온 0℃, 8월 평균기온 24.1℃로 최저기온월과 최고기온월의 온도차이가 35.1℃내외로 나타내고 있어서 동위도상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겨울은 3∼4℃ 높아 온난한 겨울이 되고, 여름은 2∼3℃로 낮은 시원한 여름의 기후적 특성을 보이고, 청명한 날씨 100일, 흐린날 91일, 비오는날 106일, 눈 또는 기타 42일의 천기일수를 보여, 기후적으로 천연 쾌적한 자연환경을 거느린 동해시는 노인이나 환자들을 위한 휴양 도시로서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강수량은 연평균 1,175.4㎜로 우리나라 평균값 정도에 해당되고, 최다우월은 10월로 615.5㎜, 최소우월은 12월로 0㎜이지만, 12월을 제외하고는 100㎜이상으로 비교적 월별강우분포가 고른 편이며,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강수량의 극대값이 9 · 10월 2회 나타나듯이 동해시도 10월에 최대값이 나타나 장마기의 강수량보다 태풍, 열대성 저기압 등에 의한 강수량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름철이라 할 수 있는 6 · 7 · 8월의 강수량이 596.7㎜로 연강수량의 28%에 해당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의 여름철 3개월 동안의 집중도 (약50%)에 비하면 조금 낮은 편이여서 연중 비교적 고르게 비가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해시는 월별 평균 풍속은 1.4m/sec로 약한 편이나, 월별로 12 · 1 · 2 · 3 · 4월은 1.6m/sec로 강한 편으로 특히, 봄철인 4월에 강한 돌풍이 있기도 한다. 또한 산악지대 고산지의 기후적 영향을 받아 갑작스럽게 일교차가 크거나, 기상변화로 인한 집중호우, 폭설 등이 내려 재해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역사

동해지역의 선사문화의 기원은 수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로 올라간다. 1992년도에 처음 발견된 구호동 유적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 · 찍개 · 찌르개 · 사냥돌 등의 뗀석기가 출토된 바 있다. 그리고 1995년도에는 발한동에서 구석기유적이 발굴되어 홍적세 후기의 간빙기 때의 문화층과 찍개 · 주먹대패 · 찌르개 등 뗀석기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의 연대는 90,000∼120,000 B.P.로 중기구석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1999년도에는 구호동 유적과 인접한 구미동 구릉지에서 중기구석기부터 후기구석기에 이르기까지 관련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찍개 · 긁개 · 밀개 · 찌르개 · 새기개 · 홈날 등 각종 뗀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석기 집중면이 발견되어 석기제작 행위가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하천유역의 모래언덕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현재까지 마상천유역의 망상동 지역에 2개 소, 전천유역의 송정동 지역에 1개 소로 모두 3개 소에 달한다. 이들 유적은 현재까지 정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정확한 범위 및 현상 등에 대하여는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지석묘와 유물산포지가 있다. 지석묘는 송정동 · 부곡동 · 이로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인들이 남긴 무덤이다. 유물산포지는 시의 북부에 있는 마상천과 남부의 전천유역의 주변 구릉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한시대에는 실직국(悉直國)이었다가 102년(파사왕 23)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그 뒤 468년(장수왕 56)에 일시 고구려에 점령되기도 했으나 505년(지증왕 6)에 이사부(異斯夫)가 수복,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했으며 757년(경덕왕 16)삼척군으로 개칭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은 고구려의 남하정책과 신라의 북진정책이 충돌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부곡동 승지골에 세워져 있는 선돌은 이 지역을 두고 싸웠던 고구려와 신라의 정계비적(定界碑的)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 삼척군은 죽령(竹嶺) · 만경(滿卿) · 우계(羽溪) · 해리(海利)의 4개 현을 영현(領縣)으로 두었다. 현재 부곡동 남쪽의 옛 북평읍지역은 삼척군의 직할지였고, 그 북쪽의 옛 묵호읍 지역은 명주군 옥계면과 함께 우계현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척군은 995년(성종 14)척주(陟州)로 승격되었다가 1018년(현종 9) 5도양계제가 실시되자 동계(東界) 소속의 삼척현으로 강등되고 우계현도 명주목(溟州牧)으로 넘겨주었다. 지금의 동해시가 명주와 삼척 양쪽의 관할을 받은 것은 이때부터였다. 명주목은 원래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으로서 신라에 편입된 뒤 757년부터 명주라고 불리다가 936년(태조 19) 동원경(東原京)으로 승격되었다.

또, 983년(성종 2)에는 하서부(河西府)로, 986년에는 명주도독부로, 992년에는 명주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로써 명주목은 연곡(連谷) · 우계의 2개 현을 속현으로 두게 되었다. 명주목은 그 뒤 1260년(원종 1)에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가 되었다가 1308년(충렬왕 34)에는 강릉부(江陵府)로, 1389년(공양왕 1)에 대도호부가 되어 조선으로 이어졌다.

태조의 5대조 목조(穆祖)의 외향(外鄕)이었던 삼척은 1393년(태조 2) 부로 승격되었다가 1413년(태종 13)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한편, 강릉대도호부는 1457년(세조 3) 진이 설치되면서 삼척 · 양양의 2개 도호부와 4군 · 2현을 총괄하게 되었다. 이때 옥계면과 옛 묵호읍인 망상현(望祥縣)이 설치되었다.

삼화동의 무릉계곡에는 102년에 쌓아서, 1414년에 삼척부사 김맹손(金孟孫)이 개축했다는 두타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삼척을 점령하자 많은 사람들이 피란했던 곳으로, 이 고장 사람들의 한이 서려 있다.

당시 이 고장 청년들은 의병을 조직하는 한편, 산성 밑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군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왜군이 산성 공격을 단념하고 철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때 왜군이 물가에서 빨래하던 한 노파가 무심히 하는 말을 듣고 돌아와 산성을 공격, 무수한 사람들이 살상당했던 것이다.

1631년(인조 9) 삼척도호부는 관할구역을 매곡(邁谷) · 노곡(蘆谷) · 덕번(德番) · 북평(北坪) · 박곡(璞谷) · 미로(眉老) · 소달(疏達) · 장생(長生) 등으로 나누었는데, 옛 북평읍 지역에 해당되는 곳은 북평 · 박곡의 2개였다.

그 뒤 북평리는 1738년(영조 14) 북상(北上) · 북하(北下)의 2개 면으로 나뉘었고, 1801년(순조 1) 다시 도상면(道上面) · 도하면(道下面)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박곡리는 1662년(현종 3) 견박면(見朴面)으로 개칭되었다. 1738년에는 일시 견상면(見上面) · 견하면(見下面)으로 분리되었다가 통합되어 견박곡면(見朴谷面)으로 불렸다.

한편, 강릉대도호부내의 망상현은 1648년(인조 26) 망상리로 개칭되었다가 1705년(숙종 31) 다시 망상면으로 고쳐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1759년 당시 삼척도호부 관내의 도상 · 도하 · 견박곡의 3개 면과 강릉대도호부 관내의 망상면, 즉 현 동해시의 총 가구수는 1,181호, 인구는 3,530명이었다.

1895년 전국이 23개부로 개편될 때 삼척도호부는 강릉부 관할 삼척군으로 편제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지방관제가 개편되자 강원도 관할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척군 관내에 있던 도상 · 도하 · 견박곡의 3개 면이 통합되어 북삼면(北三面)으로 불리다가 1945년 북평읍으로 승격하였다. 한편, 강릉대도호부는 1895년강릉부로 개편되었다가 이듬해 강릉군으로 바뀌었다. 그 산하에 있던 망상면은 1942년 묵호읍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동해 · 삼척 · 임원 등지에 상륙하여 무차별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때 일대의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 소실되어 잿더미가 되고 적의 수중으로 떨어졌다가 이듬해 3월에 수복되었다. 1955년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강릉군은 명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76년 명주군 묵호읍에 남부 · 중부 · 동부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0년 4월 1일 삼척군 북평읍 일원과 명주군 묵호읍 일원이 통합, 동해시가 되었다. 1990년 부곡동 일부가 발한동으로 편입되었고, 1993년 단봉동 · 대구동 일부가 구미동으로, 어달동 일부가 묵호진동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에는 여운동 일부가 동회동으로, 대구동 · 구미동 · 추암동 일부가 구호동으로 편입되는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다. 1998년 11월 18일 과소동(過小洞) 통폐합에 따라 15개 동을 10개 동으로 구역 조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동해시는 환동해권 중심도시로 동해항 항만시설 확충 등을 통해 항만산업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유물 · 유적

2015년 현재 동해시의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 2건과 명승 1건, 국가 무형문화재 1건이 있으며, 강원도 지정문화재인 유형문화재 6건, 기념물 3건, 문화재자료 4건 등 모두 19건이며, 비자정 문화재는 선사유적을 비롯한 관방유적, 유교문화 유적, 불교문화유적 등이 다수 있다.

구석기 유적으로는 구호동유적, 구미동유적, 발한동 유적이 있다. 동해시 전천(箭川) 하류 남쪽의 구릉지대인 구호동 산 50번지 일원에 위치한 구호동유적은 1992년도 북평공단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발굴되었다. 발굴유물로는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사냥돌 등 37점의 뗀석기가 발견되었다. 이는 영동남부지역의 구석기문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구미동 유적은 해안에 연한 구호동 구석기유적지와 북쪽으로 접한 구릉지대에 위치하며, 1998년도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유적지 전역이 동해시하수종말처리장 사업지역으로 계획됨에 따라 1999년도에 1 · 2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중기구석기부터 후기구석기에 해당되는 각종 뗀석기와 문화층 및 고토양층이 확인되었다. 발한동 유적은 1994년도 묵호역에서 사문재를 연결하는 4차선 해안도로건설과 택지조성개발로 인해 지형이 교란 · 훼손되면서 구릉의 깎인면에서 뗀석기와 문화층이 확인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1995년도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대형석기에 속하는 찍개, 주먹대패, 찌르개 등과 긁개, 밀개, 뚜르개 등의 소형석기를 합쳐 약 230점의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석기집중 출토면에서 모루돌과 망치돌이 확인되어 석기제작행위와 음식물가공 등의 생활 활동이 함께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층은 마지막 빙하기에서부터 간빙기까지 형성된 것으로 밝혀져, 이 유적은 중기구석기시대 전기에서 후기구석기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동회동과 송정동 구릉일대에서 뗀석기가 출토된 바 있고 그리고 동해고속도로 동해휴게소 인근 망상동 기곡마을에서 찍개, 긁개, 격지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망상동 유적, 망상동노봉유적, 송정동 유적 등이 있다. 망상동 유적은 시의 북부에 소재한 마상천 하류 북쪽의 망상초등학교의 남쪽과 남동쪽 일대의 사구에 위치하며, 1995년도 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망상동 노봉유적은 앞의 망상동 신석기 유적에서 남쪽으로 근접한, 마상천 하구 남쪽의 노봉마을 뒤편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1995년도 지표조사를 통해 결합식어구 및 그물추, 토기편 등이 채집되었다. 송정동 유적은 1996년도 동해항만확장공사지역내 철기시대 집자리유적 발굴조사과정에서 신석기시대의 융기문토기편 1점과 빗살무늬토기편 5점이 출토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부곡동 지석묘, 송정동 지석묘, 이로동 지석묘, 초구동 유적, 괴란동 유적, 천곡동 유적, 쇄운동 유적, 단봉동 유적, 추암동 유적 등이 있다.

부곡동 지석묘는 묵호역에서 동해고속도로 진입로를 따라 서남방향으로 1㎞거리에 있는 속칭 ‘도둑고개’ 서쪽 구릉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1973년에 조사 · 보고되었다. 1976년 도로확장공사로 인해 부근의 로타리화단으로 옮겨졌다가 근래에 시청의회건물 앞 잔디밭에 이전되었다. 이 지석묘는 덮개돌은 부정형(不整形)으로 동 · 서 176㎝, 남 · 북 75㎝, 두께 42㎝이고, 지표에서 덮개돌까지 50㎝ 정도 노출되어 있었다. 덮개돌 밑의 매장주체부인 하부구조는 석관형(石棺形)으로 서벽과 북벽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규모는 길이 140㎝, 폭 40㎝, 높이 50㎝이고, 주위에는 적석이 없다. 출토유물로는 반월형석도 1점이 있다.

또한 남호초등학교로 들어가는 갈림길 도로변에 지석묘 1기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앞의 지석묘에서 동쪽으로 30㎝가량 떨어져 있었다. 1972년 석검 1점과 석촉 2점이 출토되었다. 덮개돌은 장축 187㎝, 단축 68㎝, 두께 48㎝이며, 판석으로 이루어진 장방형 석관은 길이 141㎝, 폭 65㎝, 높이 43㎝이다. 이미 파괴되어 없어졌다.

송정동 지석묘는 1967년 도로공사와 1972년도 송정파출소 건립 당시 인부들에 의해 발견되어 당시 일괄 유물이 수습된 지석묘이다. 1996년도 항만확장공사지역내에 포함되어 발굴조사를 통해 유구의 전모가 드러났다. 유구는 현지표 15㎝ 밑에서 부정형의 덮개돌이 노출되었는데, 덮개돌은 화강암재 판석이었고, 3조각난 상태로 확인되었다. 덮개돌은 장축 196㎝, 단축 166㎝, 두께 15㎝이다. 덮개돌 아래의 하부구조는 석관형으로 판석 1매를 각 장벽에 뉘어 세운 형태이다. 양단벽의 구조는 북동쪽 단벽이 교란되지 않은 상태로, 막음돌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남서쪽 단벽은 이미 교란된 상태였다. 바닥은 자갈돌을 깔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지석묘는 양쪽 장벽이 지상으로 약 30㎝ 정도 드러나게 축조된 반지하식 무덤이다. 장벽의 판석 길이는 우측이 140㎝, 좌측이 160㎝이며, 깊이는 60㎝이다. 내부의 길이는 145㎝, 폭 40㎝, 시상의 두께는 9㎝ 정도이다. 출토유물로는 마제석검 1점, 석촉 6점이 있다.

이로동 지석묘는 삼화파출소에서 서쪽으로 약 0.5㎞가량 떨어진 전천가의 42번 국도변의 구릉 위에 위치하고 있다. 지석묘의 남쪽과 접하여 돌무더기가 있는데, 장축 780㎝, 단축 590㎝, 높이 170㎝의 부정형이다. 이 돌무더기 북쪽으로 덮개돌이 놓여 있는데, 둘로 갈라져 있다. 덮개돌은 장축 245㎝, 단축 156㎝, 두께 25㎝인 장방형 판석이다. 하부구조는 석곽형으로서, 각 벽면은 냇돌로 축조되어 있으며 바닥에는 잔 자갈을 깔았다. 동쪽벽이 없어져 내부가 들여다 보인다. 길이 135㎝, 너비 90㎝, 높이 34㎝이다.

초구동 유적은 마상천 유역에 있는 초구동 댓말마을의 남쪽 구릉지 일대에 위치하며, 1995년도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다량의 민무늬토기편과 석기편, 갈판편 등이 채집되었다.

괴란동 유적은 마상천 상류의 괴란동 사이말마을의 북편 구릉지에 해당되며, 1995년도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구릉의 능선 하단부에 있는 민묘주변에서 민무늬토기편들이 채집되었다.

천곡동 유적은 동해선비치호텔 뒷편 구릉지 일대에 위치한다. 이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석제 방추차 1점과 민무늬토기편 4점이 채집되었다.

쇄운동 유적은 용산서원 뒤편의 나즈막한 구릉지에 해당된다. 이 곳에서는 민무늬토기편, 냇돌, 돌도끼, 숫돌 등이 조사되엇다.

단봉동 유적은 38번 국도 진입로 북편에 위치한 주유소 길 건너편 구릉지에 위치한다. 서쪽 철도변으로 내려가는 깎인면에서 냇돌과 민무늬토기편들이 확인되었다.

구미동 유적은 전천유역의 남편 구릉지에 속한다. 지표상에서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편과 석기편들이 채집되었다.

추암동 유적은 전천유역의 남쪽 구릉지 남쪽경사면에 위치한다. 1992년도 북평공단 조성사업으로 인해 고분군 발굴조사과정에서 유물들이 채집되거나 석기산포지가 확인되어 조사되었다. 이곳에서는 민무늬토기편 및 돌화살촉, 갈판, 돌그물추, 돌자귀, 돌끌, 청동기 집자리유구, 돌도끼, 검파두식, 석촉 등을 비롯한 많은 유물들을 출토되었다.

철기시대 유적으로는 망상동 유적과 송정동 유적이 대표적이다. 망상동 유적은 마상천 하류 북쪽에 위치한 망상동 망상초등학교와 남쪽의 마을 주변일대에 해당된다. 초등학교와 민가주변의 경작지일대에는 민무늬토기편과 회청색 경질타날문토기편들이 다량 산재해 있다.

송정동 유적은 시의 최대 하천인 전천의 북쪽에 위치한 송정마을 일대에 해당된다. 이곳에서는 민무늬토기편과 회청색 경질타날문토기편들이 다수 산재해 있다. 1996년 발굴시에는 집자리 4기, 은제이식 · 곡옥 및 구슬장신구류 · 각종 철제품 · 각종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또 1999년도에는 마을 동편일대에서 35기의 집자리가 밀집상태로 분포하고 있슴이 확인되었고, 이형토기를 비롯한 각종 토기류 · 철제품 등도 출토되었다.

산성으로는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심곡동의 고현산성(高峴山城, 일명 長安城 또는 安士城)과 두타산성이 있다. 대진동에는 동해 어달산 봉수대(강원도 기념물, 1971년 지정)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삼화동에 감추사(甘湫寺)와 삼화사(三和寺), 그리고 삼화사삼층석탑과 철불이 있으며, 지가동에 지향사(池香寺) · 보본사(報本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쇄운동의 용산서원(龍山書院)과 발한동의 문간사(文簡祠), 천곡동의 문경사(文敬祠) · 도동사(道東祠) 등의 사당이 있다. 특히, 용산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용산서원 학규현판(강원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이 유명하다. 문간사는 조선개국공신이자 영의정을 지낸 한상경(韓尙敬)의 업적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1824년(순조 24)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정자로는 북평동의 동해 해암정(강원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송정동의 애연정(僾然亭) · 영호정(暎湖亭), 쇄운동의 영모정(永慕亭), 삼화동의 금란정(金蘭亭), 구미동의 호해정(湖海亭) · 옥석정(玉石亭) · 만경대(萬景臺) 등이 있다.

만경대는 북평동 전천 하류에 위치한 정자로 척주팔경(陟州八景)의 하나이다. 정자 앞으로 내가 흐르고, 북평의 들과 넓은 동해가 한눈에 보인다. 1613년(광해군 5)에 김훈(金勳)이 세웠으며, 1660년에 허목(許穆)이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감탄해 정자 이름을 만경이라 지었다 한다.

고가옥으로는 이도동의 동해 심의관 고택(강원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과 동해 김진사 고택(강원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등이 남아 있다. 망상동에 있었던 약천영당(藥泉影堂)은 1689년(숙종 15) 남구만(南九萬)이 세운 것으로, 그곳에서 1년 동안 지방민들을 가르치면서 「동창이 밝았느냐」라는 시조를 지었다고 한다. 이 서당은 200여 년간 존속해 오다가 1927년 명진소년회사건(明進少年會事件)으로 폐쇄되었다.

1590년(선조 23) 정두형(鄭斗亨)에게 내려진 영자(纓子), 1535년(중종 30) 최응수(崔應壽)에게 내려진 자연(紫硯), 1838년(헌종 4) 김종호(金宗虎)에게 내려진 일산(日傘) 등이 보존되어 있다. 명승으로는 두타산과 무릉계곡(武陵溪谷) 등이 있다. 천곡동에는 6 · 25 때 희생된 군경 280명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현충탑이 있다.

교육 · 문화

동해시는 과거 삼척군과 명주군의 일부였던 관계로, 조선 초기의 교육은 강릉향교와 삼척향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뒤 동해지역에도 1995년 부곡동에 동해향교가 설립되어 천곡동의 한천서원과 용산서원 · 경행서원(景行書院) · 송라서당(松蘿書堂) 등의 교육기관과 더불어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쇄운동의 용산서원은 1703년에 이세필(李世弼)이 최세필(崔世弼)의 강도소(講道所)에 들러 학규 21조를 손수 지어 지방유생들로 하여금 매일 글을 읽게 하고 유학을 장려한 것을 계기로, 2년 뒤인 1705년(숙종 31) 용산 밑에 세워졌다.

그 뒤 이세필의 진상(眞像)을 모시고 흥학비(興學碑)를 세우는 등 여러 번의 확충을 통해 유수한 지방교육기관으로 발전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에 의해 폐지되었다. 이후 1956년 지방 유림들에 의해 중흥되었으며, 1966년부터는 이이(李珥) · 송시열(宋時烈) · 이세필 등 삼현(三賢)을 배향함으로써 현재까지 유풍진작의 전통을 이어주고 있다.

경행서원은 1631년(인조 9) 원래 삼척읍 교리에 건립되었다가 1828년(순조 28)에 지금의 송정동으로 이전하였다. 김효원(金孝元)과 허목(許穆)을 배향하고 교육에 힘썼으나, 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지되었다.

송정동의 송라서당은 1738년(영조 14) 홍중석(洪重錫)이 창건하고 김광옥(金光玉) 등이 향촌자제를 교육하다가 1868년에 폐지되었다. 그 뒤 1878년에 김학묵(金學默) 등이 중흥계(中興稧)를 조직하여 강당을 수리하고 많은 청년들을 교육하다가 1909년에 다시 폐지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김택영(金澤榮) · 박문익(朴文益) · 김우영(金宇榮) 등이 천곡동에 보명학교(普明學校)를 설립했으며, 1909년에는 송정동에 명동학교(明東學校)를 설립해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1918년에 이 두 학교가 병합하여 송정공립보통학교가 되었고, 1938년에는 북평공립심상소학교로 개명했다가 1945년에 북평초등학교로 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4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6개교가 있다. 대학은 한중대학교(동해대학교 후신)가 있었으나 2018년 2월 폐교하였다.

문화예술단체로는 1982년 발족한 동해문화원을 비롯한 동해예총 동해지부, 동해윈드오케스트라, 아트챔버오케스트라, 이스트유스오케스트라, 어린이합창단, 리코더앙상블, 동해사진협회 등이 있다. 공공도서관은 동해도서관과 동해시립북삼도서관과 동해시립발한도서관이 있고, 기타 문화공간으로는 동해시여성회관, 일반공연장, 영화관, 복지회관, 청소년회관이 있다. 체육시설은 실내체육관, 종합경기장 등이 있으며, 청소년 수련시설로는 수련관과 야영장이 있다. 문화 축제로는 매년 10월 개최되는 동해무릉제를 비롯해서 해맞이 행사, 정월대보름맞이행사, 망상해변축제, 유천문화축제, 동해일출 및 누드촬영회 등이 있다.

민속

이 고장에서는 원님답교놀이와 봉황횃불놀이가 행해졌다. 원님답교놀이는 북평지역의 3개 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행해진 놀이이다. 먼저 그 마을에서 재정능력이 있고 덕망과 학식이 높은 자를 마을 사람들이 가상 원님으로 선출한다. 보름날 원님은 많은 음식을 장만하여 원님 당선을 축하하러 온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하면 원님집 마당에서 한바탕 풍악을 울리며 지신밟기를 한다.

이어 원님을 가마에 태우고 원님행차를 하는데, 주로 부유한 집을 돌면서 지신도 밟아주고 억울한 사람의 원성을 듣는 등 재판놀이를 하다가 해질 무렵 북평다리로 행차한다. 북평다리에서 3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다리를 밟으며 소원을 빈다. 이는 지방양반의 사회진출 소망을 재연한 놀이라 하겠다.

봉황횃불놀이는 망상지역에서 정월대보름에 행해진 놀이이다. 젊은 청장년 30여 명이 두 편으로 갈라져 횃불싸움을 하는데, 각각 30㎝ 길이의 나무 위에 솔가지를 올려놓고 먼저 불을 붙여서 먼저 불을 끄는 편이 이기게 된다. 이긴 편은 그해 풍년이 든다 하여 열심히 놀이에 참여하였다. 이 밖에도 음력 7월 중순께 심곡동에서는 질먹기놀이, 괴란동에서는 골안성황당농악과 때에 따라 쌍륙(雙六)가지 · 목침빼앗기 등 갖가지 놀이가 행해진다.

동신제와 묵호진 풍어제를 들 수 있다. 동신제는 각 마을마다 정월보름에 마을의 입구 또는 제단이나 사당에서 지낸다. 제주는 3일 전부터 제단 등을 청결히 하고 일주일 전부터 목욕재계하며, 육류를 삼가고 부정한 것을 금한다. 보름날 자정이 되면 제물을 차려놓고 동신제문을 읽으면서 제를 지낸다. 끝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은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연중무병과 평온무사 및 농사풍년을 기원한다.

묵호동은 주민의 질병을 막고 부락의 무사태평을 빌기 위해 12월 30일에 풍어제를 지낸다. 언젠가 많은 어부들이 죽고 흉어가 계속되자 위령제와 함께 풍어제를 올렸는데, 그 뒤로는 날씨도 좋아지고 고기도 많이 잡혀 3년에 한 번씩 마을의 큰 행사로 행하게 되었다. 제관은 한 달 전부터 용모를 단정히 하고 흉사를 삼가며 제일에는 무당을 불러 밤새워 굿을 한다. 이 때 온 마을 사람들은 축제분위기에 들떠 하루를 즐긴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역사적 인물, 자연물, 효자 · 열녀에 관한 설화와 지명유래담이 풍부하게 전한다. 그 중 의승 혜연(慧衍)이 서당에서 공부하던 때, 요괴를 퇴치하고 풍수지리를 깨닫게 된 설화는 북삼동에 전해 온다.

혜연이 며칠을 계속 서당에 늦게 오자 훈장이 이를 이상히 여겨 연유를 물었다. 아침에 서당으로 오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송림에서 나와 입 속에 물고 있던 구슬을 혜연의 입에다 물리고 다시 자기 입에 넣고 하는 바람에 늦게 되었다고 하자 훈장이 방도를 일러 주었다. 다음날 훈장의 말대로 그 여인의 혀를 사정없이 깨물었더니 여인은 요괴로 변해 죽었다. 그 뒤 혜연은 풍수지리에 밝아져 나라에 충성을 다한 의승이 되었다 한다.

그리고 묵호항의 가까운 곳에 위치한 까막바위에는 왜구를 물리친 어진 호장에 관한 설화가 얽혀 있다. 어느 해 왜구가 쳐들어와 마을을 약탈하고 주민을 학살한 뒤 항거하는 호장을 묶어 배에 싣고 떠났다. 분노한 호장이 “내 비록 육신은 죽어도 너희들이 다시는 이곳에 침범하지 못하게 하리라.”고 왜구들을 꾸짖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파도가 들이닥쳤다. 그 바람에 배가 뒤집혀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죽고 말았다.

이 때 문어 한 마리가 나타나 남은 한 척의 배를 내리쳐 산산조각을 내니 남은 왜구가 모두 죽고 한 떼의 까마귀가 왜구의 시체를 뜯어먹었다. 그 뒤 이 마을에는 왜구의 침입이 끊어졌으며, 까막바위 밑에 있는 두 개의 큰 굴 속에 문어가 된 호장의 혼이 살고 있다고 전한다.

이 고장에는 특히 손가락을 잘라 남편이나 부모를 봉양한 효자 · 열녀의 설화가 많이 전한다. 그 가운데 홍씨는 다섯 손가락을 모두 잘라 남편을 섬긴 열녀이다. 남편이 병으로 눕자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니 차도가 있는지라 하나씩 하나씩 다섯 개를 모두 잘랐는데 결국 낫지 않고 죽고 말았다.

홍씨는 남편과 같이 죽으려 했으나 어린 자식들 때문에 죽지 못하고 절기마다 죽은 남편의 새옷을 지어 묘소 옆에서 태우면서 남편 옆으로 갈 날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자녀들을 모두 성혼시킨 10년 뒤에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이 홍씨를 기리기 위한 비각이 지금도 북평동에 남아 있다.

이 밖에도 서역에서 동해로 건너온 「삼불전설(三佛傳說)」, 물에 빠진 시어머니를 구하려다 같이 죽어 바위가 된 「고부석전설(姑婦石傳說)」, 임진왜란 때 화살이 가득 흘러내렸다는 전천에 관한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노동요가 중심이 된다. 특히, 오랜 어촌이었던 까닭에 어업노동요가 주류를 이룬다. “(앞소리) 이번 가래는 용왕님 가래로다/ (뒷소리) 에라소∼가래소∼/ 이번가래는 서낭님 가래로다/ 에라소∼가래소∼/ 이번가래는 선주님 가래다/ 에라소∼가래소.”는 그물당기며 부르는 노래로 「가랫소리」라 한다.

그물을 당기며 사설과 여음을 선후창으로 나누어 부르면서 박자를 맞추는 이 노래는 가락이 단순하다. 사설은 위와 같이 용왕님이나 풍어를 약속해 주는 성황당 서낭님에게 먼저 공을 돌리기도 하고 고기가 많이 잡혀 만선이 되는 기쁨을 담기도 한다. 이 밖에도 「노젓는 소리」 · 「낚시줄당기는 소리」 등이 있다.

농업노동요는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것이 불린다. “심어보세 심어보세/ 오종종 줄모를 심어보세/ 오종종 줄모를 심어다가…….”와 같이 모를 빨리 심어보자고 권유하는 사설의 「모내기노래」가 많이 불린다.

「논매기노래」는 「모내기노래」의 사설을 그대로 부르기도 하고, “지어가네 지어가네/점승창이 지어가네/이질매고 저질매고/어서빨리 어서빨리 지음을 매세.”라고 하는 「오돌독이」를 부르기도 한다. 또, 머슴들이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는 ‘상사디어’계의 노래도 전해진다.

여성노동요로는 「나물캐는노래」 · 「베틀노래」 등이 있고 “테가치고 지은발(밭)에/ 불같이 뜨거운날에/ 한골매고 두골매고/ 임의골도 다시매자/ 오덕데기 충량워라/ 달도밝고 맹랑하다……앉은애기 밥을주오/ 언진애기 젖을주오/ 드룩차고 질찬발을/ 어느낭군이 갈아줄꼬.”라는 「밭매기노래」도 불린다.

이 밖에 “오월이라 단오날에/ 뻐꾹새야 울지마라/ 나물먹고 물마시고/ 곱게곱게 단장하고/ 내가뛰면 니가밀고/ 니가뛰면 내가밀고/ 얼씨구 좋고좋다/ 단오날이 오늘이요.”라 하여 단오날에 부르는 「단오」가 있다. 또, 「정선아라리」가 전파되어 많이 불린다.

산업 · 교통

육지와 해상교통이 편리해 상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농업은 전천과 마상천 유역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다. 총 경지면적 14.55㎢ 가운데 논 4.59㎢, 밭 9.78㎢로 밭이 많다. 도로 확장, 산업단지 조성, 항만 확충, 택지개발 등으로 농경지 · 농가가구 및 인구 등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주요 농작물은 쌀 · 보리 외에 서류 · 옥수수 · 콩 등이다. 근교농업적인 성격이 강해 배추 · 무 · 마늘 · 파 등의 생산이 증가 추세이며, 과일로는 복숭아 · 사과 · 포도 · 감 등이 생산된다. 가축사육은 한우 · 사슴 · 산양과 양봉이 증가 추세이고, 양돈 · 양계는 감소되고 있다.

임야면적은 134.80㎢이다. 주요 임산물은 호두 · 밤 · 대추 · 도토리 · 느타리버섯 · 목이버섯 · 약초 · 산수유, 산나물 등이다.

수산업은 항구를 끼고 있어 일찍부터 발달했다. 묵호항은 일찍부터 이곳의 어업 중심지로 발달했으며, 울릉도를 왕복하는 여객시설이 있다. 밖에 천곡 · 어달 · 대진리의 소규모 항구 3곳이 있다. 주요 어획물은 오징어 · 노가리 · 꽁치 · 미역 등이다.

동해시 남부 일대에 양질의 석회석이 무진장 매장되어 있어 국내 최대 규모의 시멘트 공장이 들어섰다. 동해항(북평항)에는 시멘트 전용 부두시설이 갖추어져서 컨베이어벨트시스템에 의한 시멘트의 직접 선적이 가능하다. 그 밖의 제조업으로 금속기계 · 화학 · 비금속광물 · 식료품 · 제재 · 종이 · 인쇄 · 전기 · 전자 · 토목 · 건축자재 등의 업체가 가동중이다. 동해항에는 금강산 항로 개설시 사용되었던 여객시설도 갖추고 있다.

이 시는 삼척과 더불어 북평산업기지(北坪産業基地)의 중심지로서 기반시설을 갖추었다. 국가공단에는 조립금속 · 기계장비 · 화학석유 · 1차금속과 기타 제조업이, 지방공단에는 석유화학 · 1차조립금속 · 기계장비 · 음식료와 기타 제조업이 입지해 있다. 식수는 달방동에 달방 댐을 막아 공급하고 있으나 풍부하지는 못한 편이다.

상업활동은 예로부터 이루어져 1770년대, 1830년대에 북평장이 3 · 8일에 개설되었다. 1912년에는 묵호장이 5 · 10일에 개설되었다가 1923년에 폐쇄되었고, 1926년 다시 부활되어 4 · 9일에 개설되었다. 1938년 다시 폐쇄되었다가 1963년에 비로소 상설되었다. 1976년에는 북평 · 묵호장이 모두 상설되었고, 1994년 동해시 상설로 되었다.

북평장날에는 인근의 근덕 · 도계 · 미로 · 묵호 · 임계 등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수산물 · 농산물 · 청과물 · 축산물 · 의류 · 일용잡화 등이 주로 거래되어 이 지역 상업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묵호항과 동해항은 영동 해안지방의 관문으로서 1941년 8월 11일에 묵호항이, 1979년 2월 28일에 동해항이 각각 개항하였다. 주요 수출품은 무연탄 · 시멘트 · 수산물 · 광산물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유류, 목재, 곡물, 기계류 등이다.

교통은 태백권의 시멘트 · 석탄 등 자원을 수송하기 위한 영동선 철도가 전철화되어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통과한다. 영동선의 이도동에서 삼척선이 분기해 삼척과 이어지고, 시멘트를 수송하기 위한 송정∼삼화 사이의 철도도 영동선에서 분기한다. 시내에는 동해 · 묵호 · 망상역이 있다.

영동동해고속국도의 확장개통으로 강릉과 묵호를 연결하는 2차선 동해고속국도는 지방도로 전환되었다. 동해고속국도는 현재 양양과 동해간 4차선으로 확장개통되었으며, 강릉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와 연결되어 있어 여객은 물론 물류 유통에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특히, 묵호∼포항간의 7번국도가 4차선 확장사업이 진행되면서 동해 · 포항 · 울산 · 부산을 연결하는 남북교통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정선과 연결되는 42번 국도도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으며, 묵호항의 향로동에서 울릉도까지 연안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관광

시의 서쪽에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무릉계곡을 비롯해 두타산 · 청옥산 등이 있고, 동쪽 해안에는 망상해수욕장 · 어달해수욕장 · 해금강해수욕장 등이 있어 관광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삼화동에 있는 무릉계곡은 한국 자연100선 중 하나로, 역사가 오래 된 삼화사 · 금란정(金蘭亭) 등이 있고, 천하장관인 용추폭포와 기암괴석들이 많아 소금강으로 불린다.

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천곡동굴은 총길이 1,400m의 석회암 수평동굴이다. 동굴 내부에는 국내에서 가장 긴 천정 용식구가 있고, 종유석 · 석순 · 석주 · 석회화단구 등과 희귀석들이 한데 어울려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 할뿐더러,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동쪽 해안에는 얕은 수심과 깨끗한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망상해수욕장과 암석해안으로 경치가 좋은 어달해수욕장, 그리고 유명한 촛대바위를 비롯한 많은 기암괴석들이 수중에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는 추암해수욕장 등이 있다.

이들 해수욕장 중 어달해수욕장과 추암해수욕장은 바다낚시가 가능하여 여름의 피서지일 뿐 아니라 사계절 관광지로 이용될 수 있다. 특히, 추암해수욕장은 숙박시설 · 교통로 등 기본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면 전국적인 관광지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릉계곡은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사철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고려 충렬왕 때의 이승휴(李承休), 혹은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金孝元)이 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나 뚜렷한 근거는 없다.

계곡은 맑은 물과 태암(胎巖) · 미륵암 · 반학대(半鶴臺) · 능암(能巖) · 쌍현암(雙峴巖) 등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무릉반석(武陵盤石) · 학소대(鶴巢臺) 등의 관광명소가 산재해 있다.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용추폭포와 쌍폭포가 있고, 근처 두타산의 두타산성이나 청옥산으로 등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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