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연합선교회가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여성교육을 통하여 여성의 의식과 지위를 향상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일명 원산여학교(元山女學校)라고도 하였으며, 수업연한은 4년이었다.
국권상실 뒤 기독교계 학교의 고등보통학교 승격문제로 논란을 벌이다가 1925년 누씨여자고등보통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3·1운동에 이어 광주학생운동 때에는 원산 청년학관(靑年學館) 학생 160여명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격문 수천 장을 뿌려, 누씨여학교의 학생 60여명이 붙잡히기도 하였다.
일제 말기의 격화된 황국신민화정책의 강요로 총독부에 의하여 강제로 공립화되었으며, 당시 교직원들은 총사직하였다. 1931년 5월 현재 5학급에 재학생 251명이었으며, 광복 이후 국토분단과 함께 이북에서의 선교활동이 불가능하여짐에 따라 폐교되었다.
누씨여학교는 40여 년 동안 함경도지방의 여성교육을 통하여, 여성의 의식향상과 함께 교육구국을 위한 민족교육기관으로서의 구실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