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선천(先天), 호는 주촌(舟村). 충정공(忠靖公) 마천목(馬天牧)의 후손이다.
1564년(명종 19) 무과에 합격하여 선공감주부(繕工監主簿)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 건조에 참여하여 이순신(李舜臣)을 도왔다.
1597년 이순신이 투옥되자 관직을 사퇴하였다가,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統制使)가 되어 전라도 회령포(會寧浦)에 이르렀을 때 네 아들과 향선(鄕船) 10여 척을 거느리고 이순신을 배후에서 도왔다.
그 해 9월 명량해전(鳴梁海戰) 때에는 왜선에 포위되어 위급하게 된 이순신을 보자, “사나이로 태어나서 이때가 죽을 때이다.”라고 마성룡(馬成龍) · 마위룡(馬爲龍) · 마이룡(馬而龍) · 마화룡(馬化龍) 등 네 아들과 함께 왜적선에 돌진하였으나, 적의 총환에 맞아 전사하였다. 뒤에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전라남도 장흥 충현사(忠顯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