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2책. 석인본. 1958년 후손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두에 김노동(金魯東)·권순명(權純命)의 서문과 권말에 후손 동렬(東烈)의 발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29수, 권2에 소(疏) 3편, 서(書) 33편, 권3에 잡저 9편, 서(序) 1편, 발 1편, 축문 1편, 제문 3편, 묘갈명 1편, 권4∼6은 부록으로 교서(敎書)·헌패(憲牌)·연보·묘지명·묘갈명·묘갈추기(墓碣追記)·사문서독(師門書牘)·제현창화(諸賢唱和)·만사(輓詞)·제문·상량문·봉안문·청액소(請額疏)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소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의 어려운 국가 운명에 처해 전략가이자 충신으로서의 면모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청대가회란중도진용현원간소(請大駕回鑾中道陳用賢遠姦疏)」는 현신(賢臣)을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해 나라를 중흥시킬 방책을 강구하도록 진언한 것이다. 「진토적획책소(陳討賊畫策疏)」는 국가의 요새지와 전략지를 모두 열거해 왜적을 이길 수 있는 방책을 자세히 진언하였다.
잡저 가운데 「원이기(原理氣)」·「태허설(太虛說)」·「심득(心得)」 등의 논설은 이이(李珥)·성혼(成渾)의 입장과 궤(軌)를 같이하는 내용들이다.
「총통화전도설(銃筒火箭圖說)」은 총통·화포(火砲)·화전(火箭)·화차 등의 도면을 그리고 설명문을 첨가해 기계제작의 원리를 설명한 중요 자료이다. 그는 실제로 화차(火車)를 제조, 임진왜란 때 대첩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이 글은 당시 일반 성리학자들이 경학(經學)이나 이학(理學)에 치우친 데 비해, 저자는 병학(兵學) 및 기계분야 등 실질적인 분야에 탁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