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인 매듭과 장식적인 매듭으로 크게 구분한다. 실용적인 매듭은 끈목의 한 끝을 매어 매듭을 지을 때나 끈목과 끈목의 끝을 서로 맞이을 때 사용된다.
또 끈목의 끝을 다른 물체에 잡아매거나 그 물체를 늘어뜨릴 때, 끈목의 길이를 단축시키기 위하여 그 중간을 맬 때 등 생활 속에 필요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매듭의 기원은 인류문화의 초기단계에까지 소급될 수 있다.
원시인들은 사냥 · 낚시 · 운반의 수단으로 나무껍질이나 짐승의 가죽을 가늘게 찢어 튼튼하게 여러 겹으로 꼬아서 사용하였다. 생활의 발전과 더불어 문자와 숫자를 대신하기도 하고, 건축 · 농경 · 선박용 등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매듭의 구성으로 문양(紋樣)을 이루는 장식적인 매듭은 의생활과 실내장식 등에 활용되었으며, 동양매듭과 서양매듭으로 구분된다. 우리 나라 매듭은 입체조직으로서 명주실을 소재로 하여 색감이나 조형미에서 특이한 예술성을 나타낸다.
서양 매듭은 평면조직으로서 주로 면사(綿絲)를 소재로 하여 투박하면서도 무게 있고 점잖은 조형미를 나타낸다. 조선시대의 ≪대전회통≫ 공전(工典)에는 매듭장[每緝匠]이 본조(本曹)에 2명, 상의원(尙衣院)에 4명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전상궁(大殿尙宮)들도 틈틈이 매듭일을 하였다고 한다.
민가에서의 수요도 적지 않아서 50여년 전에는 서울의 시구문안 일대가 실 · 끈 · 매듭의 본고장이었다. 그곳에서 만든 노리개 · 주머니끈 · 허리띠 등을 횃대에 걸어 길에 들고 다니며 팔기도 했다. 동상전(東床廛 : 지금의 종로 종각 뒤)이나 시구문 · 애오개 등 물건을 진열하여놓고 파는 오방(五房)이라고 하는 곳에서도 매매하였다.
33종에 이르는 다양한 매듭들은 한결같이 한 올의 끈목을 곱접어 중심을 잡고 두 가닥의 끈을 질서 있게 엮는다. 죌 때는 끝이 예리하지 않은 송곳을 사용하여 전후좌우로 균형을 고루 유지하면서 순서에 따라 작업을 하게 된다.
완성된 매듭은 앞면과 뒷면이 같고 왼편과 오른편이 대칭을 이루며 수직으로 연속된다. 그리고 아무리 복잡한 매듭이라도 중심에서 시작되어서 그 매듭의 중심 밑에서 끝나 끈목의 결을 바로 세우며 올을 따라 조금씩 점차적으로 죄는데, 고의 크기는 끈목의 굵기에 합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매듭작품에서는 끈의 색감과 굵기의 선택을 먼저 해야 한다. 매듭 유물은 국악기 · 인로왕번 · 연(輦) · 여(轝) · 기(旗) · 방장(房帳) · 영정(影幀) · 체경(體鏡) · 상여(喪輿) 등을 장식하는 대형의 유소(流蘇)와 복식에 사용된 소형의 노리개 · 허리띠 · 주머니끈 등이 있다.
창덕궁 유물보존실과 각 대학 박물관 또는 개인소장으로 보존되어 있다. 매듭은 다양한 결구(結構)에서 표현되는 독자적인 조형감각과 미묘한 색채호상(色彩好尙)의 조화에서 얻어지는 특성으로 생활미화 전반에 폭넓게 이용되었으나 개화기 이후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기능보유자들도 대(代)가 끊어질 위기에 처하였으나, 1968년 12월 매듭장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하고, 최은순(崔銀順)과 김희진(金喜鎭)을 기능보유자로 지정하여 그 맥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