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서옥도 ()

매화서옥도 / 조희룡
매화서옥도 / 조희룡
회화
작품
조선 말기의 화가 조희룡(趙熙龍)이 그린 산수화.
정의
조선 말기의 화가 조희룡(趙熙龍)이 그린 산수화.
개설

족자 형식이고 종이 바탕에 주1로 그렸다. 크기는 세로 106.1㎝, 가로 45.6㎝이며,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면에 ‘조희룡인(趙熙龍印)’이라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과 ‘우봉(又峰)’이라 새긴 주문방인(朱文方印)이 각각 1과(顆)씩 날인되어 있다.

내용

조희룡은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와 다량의 「매화도(梅花圖)」를 남기는 등 매화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에게 있어서 매화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던 듯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을 보면, 자신이 매화를 좋아하여 매화 병풍을 그려 침소 주위에 두르고 거처의 편액을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 써서 걸었다고 한다. 또 『해외난묵(海外蘭墨)』을 보면, 귀양 기간에도 날마다 매화 두어 장을 그리며 울적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이 작품은 조희룡의 ‘매화벽(梅花癖)’을 반영하듯 온통 매화로 둘러싸인 서옥에 앉아 있는 선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두운 밤 백매(白梅) 가지 위에 매화 꽃송이가 눈발에 날리듯 난만하게 피어 있다. 그리고 자그마한 초옥엔 한 선비가 앉아 병에 꽂힌 일지매(一枝梅)를 응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매화서옥도’의 주제는 중국 송(宋)나라 사람으로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매화와 학을 키웠던 임포(林逋)의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화면의 우측 중간에는 다음과 같은 주2이 있다.

“좀 먹은 속에서 묵은 그림을 얻었다. 바로 스무 해 전에 그린 「매화서옥도」였다. 그저 장난스러운 손놀림이나, 제법 기이함이 있고 연기에 그을려 거의 백년은 된 것 같으니 매화 그림이 이런데 하물며 사람이랴! 펴보고 나니 죽었던 친구를 다시 보는 느낌을 받는 것 같구나! 단노(窠中得一故紙 乃廿載前 所作梅花書屋圖也 蓋遊戱之筆 而頗有奇氣 爲烟煤所昏 殆若百年物 畵梅如此 況人乎 披拂之餘 不覺三生石上之感 丹老)”라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서예적인 필치로 산과 나무와 매화를 나부끼는 듯하게 자유롭게 그려서 사물의 형태에 연연해하지 않은 제작태도가 느껴진다. 이 작품은 조희룡이 지향한 삶을 보여 주는 동시에 능숙한 필치로 주3를 초월한 심의(心意)의 표현이 활달하게 구사되어 있다. 조희룡의 원숙한 화풍을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참고문헌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
『해외화묵(海外畵墨)』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
『동양의 명화』한국 2(삼성출판사, 1985)
『근역서화징』(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동양고전학회 역, 『국역 근역서화징』상·하, 시공사, 1998)
「조희룡의 화론과 작품」(이수미, 『미술사학연구』199·200, 1993)
『조선시대 매화도 연구』(이선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주석
주1

동양화에서, 먹색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채색을 보조적으로 써서 그린 그림. 우리말샘

주2

제사(題辭)와 발문(跋文)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어떤 사물의 모양을 본떠서 글로 쓰거나 베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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