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당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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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임세장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0년에 간행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구복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모성당일고 미디어 정보

모성당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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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임세장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0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50년(영조 26) 임세장의 증손 임필대(任必大)가 편집·간행하였다.

서지적 사항

3권 1책. 목판본. 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내용

권상에 시 18수, 소(疏) 3편, 서(序) 1편, 기(記) 1편, 명(銘) 2편, 송(頌) 1편, 상량문 1편, 권중에 제문 13편, 잡저에 설(說) 1편과 전(傳) 1편, 사적 1편, 권하에 부록으로 행장 1편, 행적초기(行蹟草記)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차운시(次韻詩)가 많고, 명승과 고적에 대해 감정과 경치를 조화시켜 읊은 것도 있다. 소 가운데 「청빙계서원삼선생제향소(請氷溪書院三先生祭享疏)」는 임진왜란 때 공이 많았던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과 학계에 공로가 현저한 장현광(張顯光)을 빙계서원에 제향할 것을 청한 것이다.

「군무소(軍務所)」는 지방 제도의 허점을 강경하게 지적한 상소문이다. 열 읍의 좌수(座首)들이 군무에는 전혀 경험이 없고, 오직 문묵(文墨)과 조두(俎豆)에만 일삼아온 사대부들을 군정에까지 참관시킴으로 해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말하고, 좌수 역시 군무에 관여하느라고 지방의 정사에는 자연히 소홀해져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그 대책으로 주(州)와 현읍(縣邑)에 강무당(講武堂)을 설치해 천총(千摠)에서 초관(哨官)에 이르기까지 총융(摠戎)의 직을 맡게 하고, 좌수는 본분인 민정에 총력을 기울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견감진제소(蠲減賑濟疏)」는 당시 영남지방의 흉년상을 논하고 농민들에게 면세해주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도내 백성을 위한 대작(代作) 형식의 소이다.

서와 기에는 「이혜상하동수계서(泥兮上下洞修契書)」와 「원중소대기(圓中小臺記)」가 있다. 명·송에는 「명륜당명(明倫堂銘)」·「지남거명(指南車銘)」·「득성녀사씨송(得聖女姒氏頌)」 등이 있다. 잡저에는 「충효당설(忠孝堂說)」·「어마자이시영전(御馬者李時英傳)」·「우열녀사적(禹烈女事蹟)」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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