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옛 지명.
명칭 유래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격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천안군에 병합되어 목천면이 되었다.
자연환경
이러한 지형적 특색으로 백제시대는 북방의 군사요지로서 중요시하여 흑성(黑城) · 작성(鵲城) · 세성(細城) 등의 산성을 쌓았다. 고려의 태조왕건(王建)은 이곳이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이므로 목천쪽으로 남하하는 것이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곳을 중시, 목주로 승격시키기까지 하였다.
역사적으로 목천현의 성씨(姓氏)에는 우(牛) · 마(馬) · 상(象) · 돈(豚) · 장(場) · 심(沈) · 신(申) · 왕(王)과 같이 짐승의 이름이 많은데, 이것은 왕건이 나라를 세운 뒤 목주 사람이 여러 번 배반한 것을 미워하여 고을 사람들에게 짐승의 이름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뒤 ‘우(牛)’는 ‘우(于)’로, ‘상(象)’은 ‘상(尙)’으로, ‘돈(豚)’은 ‘돈(頓)’으로, ‘장(場)’은 ‘장(張)’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시대는 연춘역(延春驛)이 있었고, 이곳에서 천안 · 직산 · 죽산 · 진천 · 청주 · 전의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현황
1982년 일본의 근대사 왜곡이라는 교과서 문제가 발생하자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역사서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성금이 모금되고 이곳에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건립이 실현되었다. 이로써 이 지역은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에 관한 자료를 수집 · 전시의 장소뿐만 아니라, 목천기미독립만세운동기념비(木川己未獨立萬歲運動紀念碑),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생가지(李東寧先生家址) 등이 있어 우리 근대사의 치열한 항일운동 현장으로서 후대에 투철한 민족정신과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 『신증동귝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대동지지(大東地志)』
- 『충청남도지(忠淸南道誌)』(충청남도지 편찬위원회, 2006)
-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www.independenc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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