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천 ()

목천현지
목천현지
인문지리
지명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옛 지명.
이칭
이칭
목지국, 대목악군, 목주군
정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옛 지명.
명칭 유래

본래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대록군(大麓郡)으로 고쳤다. 940년(태조 23) 목주군(木州郡)으로 고쳐 청주에 속하였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 목천으로 고쳐 현감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격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천안군에 병합되어 목천면이 되었다.

자연환경

이 곳의 지형은 북쪽과 서쪽을 차령산맥이 막고 있으며, 동쪽으로 보련산(寶連山)의 줄기가 감싸고 있고, 성거산(聖居山)에서 발원한 병천(並川)이 남류하면서 산간분지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색으로 백제시대는 북방의 군사요지로서 중요시하여 흑성(黑城)·작성(鵲城)·세성(細城) 등의 산성을 쌓았다. 고려의 태조왕건(王建)은 이곳이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이므로 목천쪽으로 남하하는 것이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곳을 중시, 목주로 승격시키기까지 하였다.

역사적으로 목천현의 성씨(姓氏)에는 우(牛)·마(馬)·상(象)·돈(豚)·장(場)·심(沈)·신(申)·왕(王)과 같이 짐승의 이름이 많은데, 이것은 왕건이 나라를 세운 뒤 목주 사람이 여러 번 배반한 것을 미워하여 고을 사람들에게 짐승의 이름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뒤 ‘우(牛)’는 ‘우(于)’로, ‘상(象)’은 ‘상(尙)’으로, ‘돈(豚)’은 ‘돈(頓)’으로, ‘장(場)’은 ‘장(張)’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시대는 연춘역(延春驛)이 있었고, 이곳에서 천안·직산·죽산·진천·청주·전의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현황

이 지역은 1919년 3·1 독립선언에 따라 1919년 3월 14일 목천공립보통학교 전교생 169명은 비폭력과 평화적 원칙하에 총궐기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교문을 뛰쳐나가 목천 읍내 일대를 누비며 강렬한 항일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한 곳으로, 이날의 거사는 순식간에 전국 각지로 파급 확산되어 4월 1일은 호서지방 최대의 항일투쟁 의거인 아우내 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학생의거는 바로 천안지방에서 최초로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으로서 주동학생 4명이 체포·구금된 중대한 사건이었다.

1982년 일본의 근대사 왜곡이라는 교과서 문제가 발생하자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역사서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성금이 모금되고 이곳에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건립이 실현되었다. 이로써 이 지역은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에 관한 자료를 수집·전시의 장소뿐만 아니라, 목천기미독립만세운동기념비(木川己未獨立萬歲運動紀念碑), 독립운동가 이동녕선생생가지(李東寧先生家址) 등이 있어 우리 근대사의 치열한 항일운동 현장으로서 후대에 투철한 민족정신과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귝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대동지지(大東地志)』
『충청남도지(忠淸南道誌)』(충청남도지 편찬위원회, 2006)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www.independenc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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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박관섭·김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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