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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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과 10월 묘에서 조상에게 행하는 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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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3월과 10월 묘에서 조상에게 행하는 제례.
내용

예서(禮書)에는 묘제라고 하나 일상생활에서는 시사(時祀)·시향제(時享祭)라고도 한다. 주자의 『가례(家禮)』에 의하면, 4대 조상까지는 3월 상순에 날짜를 택하여 묘제를 지내고, 그 윗대의 조상은 10월 1일에 올리도록 되어 있다.

한편,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하면, 이 묘제는 오래된 것이 아니라 주희가 한번 묘제를 지냈을 때 그것이 예가 아니라는 비판이 오고갔음에도 불구하고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정초·한식·단오·추석에 묘제를 지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네 번의 묘제를 폐지하고 주희가 시작한 3월의 묘제 한 번으로 대신하고 나머지는 시제(時祭)로 바꿀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의 이유로 “옛날에 제사라고 하면 시제를 가리켰다. 따라서 제사 가운데서 시제가 막중하였으나, 지금 사람들은 그 중한 것을 모를 뿐만 아니라 전혀 행하지도 않고 있다.

또, 3명절날에 지내는 묘제도 지내지 않는다면 더욱 미안하니, 이것 또한 가히 알만하다 하겠다. 요즈음 세상에서 묘제만 지내고 시제는 지내지 않는 것은 모름지기 제사를 묘로 옮긴 것이니, 사당에서도 지내고, 묘에서도 한번 지내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여, 우리 나라의 옛 관습보다는 『가례』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이(李珥)는 우리 나라의 묘제에 대하여 “묘제는 사계절에 행하는 것으로서, 이에 버금갈만한 것이 사당에서는 행해지고 있지 않아 미안하기 그지없다.

한식과 추석을 맞았을 때는 음식을 잘 차리고 고축도 하고, 『가례』에 있는대로 토지신에게도 제사를 드리도록 하고, 정초와 단오에는 제물도 간략하게 차려 단지 단헌(單獻)에 고축도 올리지 말고, 토지신에게도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아마도 이렇게 하면 옛 법도 참작하고 지금에도 통할 수 있는 것으로서, 마땅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곧 한식과 추석에는 『가례』의 절차대로 묘제를 지내고, 정초와 단오에는 『가례』의 참례와 천신례의 절차대로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이이는 우리 나라에서 행하여졌던 묘제의 시기는 그대로 살리되, 형식만큼은 주자의 『가례』를 따르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이는 이재보다 더 우리의 관습을 중요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로 보아 이이의 생존시까지는 재래의 관습에 의한 묘제와 『가례』의 묘제가 제대로 융화나 절충을 하지 못한 채 시행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정은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도 잘 알아볼 수 있다.

즉, “단오와 추석은 일반의 명절로서 참례·묘제·시제가 함께 행해지고 있는데, 만약 무슨 일이 있거나 묘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그 중 하나를 없애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는 제자의 질문에 대한 송시열(宋時烈)의 답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 어느 것도 없앨 수 없다. 한날에 중첩되어 어느 것을 없애거나, 모두 중히 여겨 함께 지낼 수 없다면 사당이나 묘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 대신 지내도록 한다. 만약에 대신할 사람이 없으면 주희의 제석(除夕) 전 3, 4일에 행할 수 있다는 설명처럼, 어느 것은 먼저 지내고 어느 것은 나중에 지내도 된다. 또, 『가례』에 의하여 단지 3월에 한번 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머지 3명절날은 모두 없애도 된다.

사계절마다 지내는 시사나 명절날 지내는 소사(小祀)도 없애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예의에 합당한 것으로서, 시속을 따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도 『가례』의 묘제는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이재의 생존시까지도 마찬가지였으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주자의 『가례』에 강한 비중을 둔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가례』에 나타나 있는 묘제의 절차는 성묘·제의·토신제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하루 전날 재계(齋戒)하고 해뜰 때에 성묘한다. 성묘하는 절차는 묘에 가서 재배한 다음 묘 주변을 세 번 돌면서 주위를 살핀다. 이때 벌초하여 묘 옆에 묻고, 그곳에서 나중에 토지신제를 지낸다.

다음에 지내는 묘제의 제의는 각 묘 앞에 제찬을 진설하고 참신(參神)·강신(降神)·초헌(初獻)·고축(告祝)·아헌(亞獻)·종헌(終獻)·진숙수(進熟水:차 대신에 냉수를 올리는 것)·사신(辭神)·철상(撤床)의 순서대로 진행된다.

그리고 묘 옆에서 지내는 토지신제는 강신·참신·초헌·고축·아헌·종헌·사신·철상의 순서로 행한다. 이러한 묘제를 관행에서는 대부분 시사 혹은 묘사(墓祀)라고 하여 10월에 택일해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도 5대 이상의 조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경상북도 성주군의 경우 사묘사(私墓祀)라고 하여 4대 조상 이내의 시사를 지내고 있다.

사묘사는 상대(上代)의 묘사부터 차례로 지낸 다음 지내는데, 먼저 죽은 아들이나 아이들의 묘사까지도 지내준다. 반면, 3월에 지내는 예로서는 강원도 강릉시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이때는 5대 이상의 방계조상에 한하고 있다.

직계조상의 묘사는 음력 9, 10월에 지낸다. 제의는 보통 삼헌을 하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단헌도 하고 있으며, 『가례』의 성묘는 없이 산신제가 간략하게 행하여지고 있다.

이러한 여러 점으로 미루어보아, 『가례』의 3월 묘제는 사라진 채 5대조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10월의 묘제가 관행의 시사로 불려 행하여지고 있으나, 절차상으로는 통일된 제의를 보이지 않은 채 행해지고 있다고 하겠다.

아마도 3월의 묘제는 관행의 차례로 흡수된 것이 아닌가 보인다. 예서에서 규정한 3월의 묘제는 시기가 가지는 의의가 있다. 3월은 겨울이 지나고 봄에 잔디가 나올 때 조상의 묘소를 손질하는 성묘풍속에 따라 묘제를 지내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관행의 10월 묘제는 추수가 끝나고 10월 상달에 예로부터 전해오던 추수감사의 성격을 띤 제축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가례(家禮)』
『가례의절(家禮儀節)』
『상례비요(喪禮備要)』
『사례편람(四禮便覽)』
『한국전통사회의 관혼상제』(장철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제례」(장철수, 『한국민속대관』 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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