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군 ()

대동여지도 중 전라북도 무주, 진안 부분
대동여지도 중 전라북도 무주, 진안 부분
인문지리
지명
전북특별자치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 및 경상남도 거창군, 서쪽은 진안군, 남쪽은 장수군, 북쪽은 충청남도 금산군 및 충청북도 영동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31′∼127°54′, 북위 35°47′∼36°03′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631.85㎢이고, 인구는 2만 5220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5개 면, 150개 행정리(48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다.

자연환경

군 전체가 소백산맥에 속하는 내륙 고원지대로 진안고원의 북동부에 해당한다. 대부분 지역이 해발 400∼500m 이상의 내륙 산간지방이다. 진안군과 장수군보다 금강의 하류에 위치하지만 군내에서 금강이 심하게 감입곡류하여 대체로 골짜기가 좁고 깊으며, 지형이 험준하다. 따라서 산간분지인 안성과 무풍을 제외하고는 평야가 매우 좁다.

기반암은 화강암질 편마암이 넓게 분포하고 중생대 백악기의 적색 퇴적암류가 적상산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안성면의 장기리와 설천면의 심곡리에는 화강암질 편마암이 심층풍화되어 고원상의 분지로 발달했는데 장기리는 해발 400∼550m, 심곡리는 800∼1,000m의 높이에 위치한다. 안성분지에 비해서는 좁지만 무풍분지가 다소 넓게 형성되어 있다.

군내에는 덕유산(德裕山, 1,614m) · 적상산(赤裳山, 1,038m) · 민주지산(珉周之山, 1,242m) · 대덕산(大德山, 1,290m) · 거칠봉(居七峰, 1,178m) · 흥덕산(興德山, 1,274m) · 두문산(斗文山, 1,051m) · 망봉(望峰, 1,047m) · 순룡산(舜龍山, 1,492m) 등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소백산맥의 주능선을 따라 대체로 군의 동부에 솟아 있다. 덕유산과 적상산 등의 정상부에는 고위 평탄면이 남아 있어 비교적 평평하고 완만한 봉우리[平頂峰]를 이룬다.

이 밖에 강선대(降仙臺, 420m)가 있고 적상산의 평정봉에는 댐을 쌓아 발전하는 산정호수가 있다. 군의 중앙에 솟아 있는 적상산을 기준으로 서부에는 이보다 낮은 마향산(馬香山, 730m) · 지장산(智藏山, 723m) · 봉화산(奉化山, 885m) · 매방제산(梅芳齊山, 776m) 등이 솟아 있다.

장수군에서 발원한 금강은 진안군을 거쳐 군의 북서부 부남면으로 흘러 설천면의 구천동에서 발원한 남대천과 무주읍에서 합류한 뒤 충청남도 금산군으로 흐른다. 안성면의 덕유산 서쪽 기슭에서 발원한 구량천(九良川)은 진안군에서 금강에 합류한다.

연평균 기온 11℃ 내외, 1월 평균기온 -6℃, 8월 평균기온 24℃이며, 연 강수량은 1,300㎜ 내외로 남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한다. 고원상 지형으로 눈이 많고, 여름철은 서늘하여 고랭지농업이 발달했다.

역사

선사시대의 유물 · 유적으로 적상면 사천리에 지석묘가 있다. 삼한시대에 주계(朱溪)는 마한에 속했고, 무풍(茂豊)은 변진의 감문국(甘文國)에 속하였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백제의 근초고왕이 마한을 평정하면서 주계를 정복하고 적천현(赤川縣)이라 칭했으며, 조분왕은 감문국을 토벌하고 무풍을 무산현(茂山縣)으로 개칭하였다.

660년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기 전까지 무산과 주계는 백제와 신라 사이의 국경을 접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매우 중요시되었으나, 신라의 영토가 된 뒤 한촌(寒村)으로 전락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주계를 단천현(丹川縣)으로 개칭해 전주 진례현(進禮縣)의 속현으로 삼았고, 무산현을 무풍현으로 개칭해 상주 개령군(開寧郡)에 속하게 하였다.

태조가 고려를 건국한 뒤 940년(태조 23) 주 · 군 · 현을 정비하면서 단천을 주계로 개칭했고, 995년(성종 14) 전국을 10도제로 개혁할 때 주계와 무풍을 강남도 남원부 진례현의 속현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5도제가 실시되면서 주계와 무풍을 전라도에 예속시켰다.

1176년(명종 6)에는 무풍감무가 주계를 겸무했으며, 1391년(공양왕 3) 주계가 무풍을 병합하였다. 고려 말 도통사 최영(崔瑩)은 적상산의 험한 지세를 이용해 산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뜻밖의 난리에 대비하도록 요청하기도 하였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덕유산 신령에게 나라의 창건을 고하고 호위를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제자동(帝子洞)에 머물렀으며, 또한 동비현(銅碑峴)에 동비를 묻었다고 한다. 1398년에는 무주향교가 창건되었다. 1414년(태종 14) 전국을 8도제로 개혁하면서 주계와 무풍 두 현을 통합해 무주현으로 개칭했는데, 오늘날의 무주라는 명칭도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무주현의 호수는 172호, 인구는 715명이었다. 1614년(광해군 6) 적상산성(赤裳山城)에 사고(史庫)를 설치했고, 1633년(인조 11) 묘향산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해서 1674년(현종 15) 도호부로 승격했으며, 금산의 속현이었던 안성(安城)과 횡천(橫川)을 편입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 때 지방관제가 정비되면서 부에서 군으로 되어 남원부에 속했다가 이듬해 전라도를 남 · 북으로 나누면서 전라북도 전주부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의 무주군은 1914년에 정해진 것으로 금산군의 부남면을 편입해 6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무주 장날인 4월 1일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근대의 인물로는 을사조약 후 이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함평 · 남평 · 보성 · 장흥 등지에서 활약한 강무경(姜武景)을 비롯해 김동학(金東鶴) · 이장춘(李長春) · 이종복(李鍾卜) · 이종성(李鍾誠) 등 많은 의병장이 있다.

또한 3·1운동 때 만세운동의 선봉이었던 전일봉(全日奉) · 한태선(韓泰善) · 서판달(徐判達) 등과 일제의 야만적인 행동에 의거, 의병을 모아 덕유산에서 활약한 신명선(申明善)이 있다. 이 때 왜병과 싸우다 전사한 100여 명의 의병의 넋을 기린 칠연의총(七淵義塚)이 현재 남아 있다.

1950년 북한군이 남침해 왔을 때 이 지방은 산간지대였기 때문에 그리 많은 피해는 입지 않았다. 그러나 9·28수복 후에 패주한 북한군이 덕유산 일대에 숨어서 인근 주민들을 약탈함에 따라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 때 이 지방에서는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의용전투대를 조직, 공비 소탕에 앞장섰다.

1975년 2월 20일 부남면에 가정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9년 5월 1일에는 무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97년 무주에서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기도 하였다.

유물 · 유적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적상면 사천리에 지석묘가 있다.

산성으로는 적상면 북창리에 적상산성(사적, 1965년 지정)이 있다. 이 군은 원래 백제의 단천현과 신라의 무산현이 있었던 곳으로 양국의 각축지였으며, 특히 적상산성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 산성은 조선 세종대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이 끝난 1614년(광해군 6) 이곳에 실록전(實錄殿)을 세웠고 1633년(인조 11) 묘향산에 안치된 실록을 적상산사고로 옮겨 보관하였다. 1641년에는 선원각(璿源閣) · 대별관(大別館) · 군기고 등을 세우고 같은 해 선원록을 안치하였다. 괴목리에 적상산성호국사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가 있다.

성지로는 신라 건국 후 석성을 쌓아서 무산현이라 했다는 무풍고성지(茂豊古城址)가 있고, 삼국시대의 성지인 주계고성지(朱溪古城址), 임진왜란 때 출전한 아들의 무운을 빌기 위해 이 마을의 늙은 어머니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다 쌓았다고 하는 노고성지(老姑城址)가 있다. 봉수대지로는 향로산(香爐山) 봉수대지와 무풍 봉화암 봉수대지가 있다.

또한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인 설천면 소천리에 나제통문이 있고, 이 곳에서 동쪽으로 약 100m 되는 지점에 삼국시대 무명전사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남고분(伊南古墳)이 있다.

불교 문화재로는 설천면 삼공리에 백련사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9년 지정) · 백련사 계단(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9년 지정) · 백련사 정관당 부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적상면 괴목리에 안국사 영산회괘불탱(보물, 1997년 지정) · 안국사 극락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안성면 죽천리에 원통사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83년 지정)가 있다. 그 밖에 안성 석탑, 북고사 석탑 등이 있다. 그리고 설천면 삼공리에 매월당부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가 있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적상산성 내에 있는 안국사를 비롯해 설천면 소천리에 관음사, 무주읍 읍내리에 향산사(香山寺), 설천면 삼공리에 인월암(印月庵) · 백련사 등이 있다. 사지로는 적상면 괴목리에 호국사지, 안성면 덕산리에 백운암지(白雲庵址)가 있다.

유교 문화재로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되어 1834년(순조 34) 현 무주읍 읍내리에 중건된 무주향교와 무주향교 대성전(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보존되어 있다. 서원으로는 1813년(순조 13)에 창건되어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뒤에 중건된 도산서원(道山書院)이 안성면 사전리에 있고, 무풍면 현내리에 백산서원(栢山書院), 지성리에 분양서원(汾陽書院), 안성면 죽천리에 죽계서원(竹溪書院) 등이 있다.

사우로는 설천면 삼공리에 가일사(加一祠), 두길리에 유천사(裕川祠), 안성면 진도리에 도남사(道南祠), 무풍면에 서씨세사(徐氏世祠) · 세덕사(世德祠) 등이 있다.

안성면 장기리에는 초려정(草廬亭) 등이 보존되어 있고, 금평리에는 규약을 만들어서 동리사람들을 교육시켰던 두람재(斗藍齋)가, 설천면 두길리에는 서벽정(棲碧亭)이 남아 있다. 또한 무주읍 당산리에 무주한풍루(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가 있다.

안성면 장기리에 연안이씨이유길가전고문서(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무주읍 오산리에 무주 오산리 구상화강편마암(천연기념물, 1974년 지정), 설천면에 무주 일원의 반딧불과 그 먹이 서식지(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삼공리에 무주 삼공리 반송(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안성면 공정리에 한말 의병들의 무덤인 칠연의총, 설천면에 구천동 격전지, 적상면에 방이리 격전지가 있다. 무풍면 현내리에는 문효공과 정경부인 영정(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7년 지정)이 있다. 이 밖에 설천면 삼공리에 옛 화전민의 주거지이던 말집이 남아 있어 무주군청에서 그 원형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설천면 삼공리에 구천동 주목군총(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1년 지정), 적상면 사산리에 마산동굴(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9년 지정)이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무주향교 · 도산서원 · 백산서원 · 죽계서원이 있다.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무주향교는 1398년에 창건된 최초의 교육기관이었으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도산서원은 1813년에 설립되어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인 김여석(金礪石) · 박희권(朴希權)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백산서원은 1821년(순조 21)에 설립되었으며,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위패를 모셨다. 특히, 문효공과 정경부인 성산이씨(星山李氏)의 영정은 왕궁에도 없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재로 일본의 덴리 대학[天理大學]에 부본이 소장되어 있다.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죽계서원은 1713년(숙종 39)에 설립되어 많은 유생들을 교육시켜 왔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9년 무주향교에 사립 명륜학교(明倫學校)가 설립되었고, 1910년에는 이순식(李舜植) 외 두 사람이 안성사립학교(安城私立學校: 뒤에 신안성초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46년에 설립된 무주중학교는 1951년 무주종합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1987년 무주고등학교로 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0개교, 중학교 6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무주문화원이 있어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있으며, 이 지역 향토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정월 중에 행하는 연날리기 · 쥐불놀이 · 윷놀이 · 제기차기 · 공치기 · 돈치기 · 자치기 · 널뛰기 · 다리밟기 · 달맞이 · 강강술래 · 닭개비놀이 · 지신밟기 · 풍물놀이 등이 있다. 또, 봄철에 행하는 풀놀이 · 화전놀이 · 천렵, 단옷날의 그네뛰기, 7·8월의 호미씻이 · 씨름놀이, 추석날의 달맞이, 9월의 단풍놀이 등이 전승된다.

이 고장의 동제로는 당산제 · 산신제 · 천룡제 · 조탑제(造塔祭) · 짐대제(솟대) · 장승제 · 도깨비제 · 풍암제(風巖祭) · 수신제(水神祭) · 기우제 · 가뭄메기제[際旱祭] 등이 다양하게 행해진다. 안성면에서는 29개 마을이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그 대상인 누석단(累石壇) · 산신당 · 당산 · 입석 · 당산수 등은 부분적으로 없어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보전되어오는 것이 많다. 공동제전의 예로는 동제 · 풍암제 · 장승제 · 수신제 · 기우제 등이 있다.

첫째, 동제는 마을의 수호신을 받드는 것으로 당산신이 주가 된다. 당산신은 마을의 특성에 따라 산신 · 수신(水神) · 서낭신 · 수신(樹神) · 암석신 · 짐대신 · 장승신 · 도깨비신 등 다양하다. 대상 신에 따라 제단도 당산 · 산신당 · 하천 · 우물 · 성황당 · 당산나무 · 당산석 · 누석단 · 입석 · 암석 · 솟대 · 장승 · 도깨비당 등으로 구성된다.

마을에 따라서는 이 중 한두 가지의 제단에만 제사를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에는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하여 앞뒤에 누석단 · 당산석(입석) · 솟대 · 장승 등이 있고, 좀 떨어진 뒤편에 당산(당집, 당산나무) · 산신당 · 성황당 등이 갖추어져 있어 마을 앞에서 뒤까지, 또는 뒤에서 앞까지 계속 축제를 행한다.

① 도깨비집의 축제: 무주읍 대차리 서면마을에서는 마을 뒷산에 도깨비집 · 산신단 · 당산수가 있어서 도깨비집에서부터 차례로 제사를 지낸다. 마을 밖에 화산(火山)이 있다고 믿었으므로 마을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그 산에 화재막이의 소금을 묻는 행사를 한다.

② 누석단의 축제: 설천면 대평마을 · 월곡마을 · 대불리, 안성면 통안마을 등은 마을 앞에 누석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을 동제의 중심대상으로 삼은 듯하다. 누석단은 큰 돌멩이를 첩첩이 쌓아올리고 그 위에 두 자 정도의 빗돌과 같은 자연석을 신줏돌로 세운다. 원형의 둘레는 열 아름, 높이는 사람의 보통키 절반 정도의 것이 많다.

③ 고석할미축제: 적상면 서창마을에는 뒷산에 산신당, 중앙에 당산수가 있고 마을 앞에 ‘고석할미’라는 입석이 있어서 이에 대한 제축이 행해진다. 이는 마을의 수호신을 암석으로 하는 당산석 신앙의 일종으로 보인다.

④ 짐대에 대한 축제: 무주읍 산의마을에서는 마을 앞 구로와 신작로의 입구에 두 개의 짐대를 세우고 이를 축제대상의 주축으로 한다. 짐대는 길이가 긴 나무 위에 새 모양을 만들어 올려놓은 것이다. 이것은 옛날 마한인들에 의해 천신이 머물러 있다고 여겨졌던 신줏대인 솟대, 또는 정월보름에 각 가정에 세우는 낟가릿대와 같은 것이다.

이는 한 마을의 재앙을 막고 농축의 풍성을 보호하고자 신상(神像)을 받드는 전통적인 민간신앙의 일종이다. 이 축제는 미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 의해 중간에 폐지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집에 원인 모를 불이 나고 재앙이 계속 닥쳐 근래에 다시 짐대를 세우고 동민의 재앙과 화재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동제를 행하고 있다.

동제의 의식은 정월 초사흘에 축제를 시작해 보름날 전후에 제사를 행하되 마을내 생산, 사망, 기타 부정이 있으면 다음 2월에 행한다. 축제에는 부정을 탄 사람 외에 온 마을 사람이 참여한다. 제주로는 그 해에 재운(災運)이 없고 생기 · 복덕이 맞는 정결한 남녀로 택정한다. 제주로 선발된 사람은 잡인의 출입을 금하는 금줄을 걸고 남녀관계를 금하며 목욕재계를 한다. 제물의 구입 및 제수 장만에도 부정한 사람은 참여하지 않는다.

진설과 제식은 유교적인 것과 무속적인 축원이 혼용된다. 이 때 마을사람의 양재초복(禳災招福: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부름)을 기원하는 축문과 소지(燒紙)를 올린다. 제축의례에 풍물을 울리기도 하고 줄다리기를 한 뒤 그 줄을 당산수 · 당산석 · 짐대 등에 감아두기도 한다. 동제비용은 마을재산 또는 걸립으로 충당한다.

둘째 풍암제로, 안성면 덕곡마을은 마을 뒤 덕유산 황골에 있는 풍암을 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하고 정월 보름날 자정에 산신제와 같은 제축을 한다. 이 때 마을사람의 재앙을 막고 풍년이 들게 하며 가축을 보호해 달라는 축문과 소지를 올린다. 제비 마련이나 축제의식은 일반 동제에 준한다. 이 풍암에는 아들 낳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사적으로 축원을 드리기도 한다.

셋째 장승제로, 무주읍 향산마을에서는 북고사로 가는 길 도중에 있는 천하대장군 · 지하여장군을 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하고 여기에 동제를 지낸다. 제사를 맡는 화주(華主)가 선정되면 제수를 준비, 정월 보름날 밤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산제의 예에 준하여 제를 올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장승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마귀 · 질병 · 재앙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할 것으로 믿는다.

넷째 수신제로, 이 지방의 용소 · 호수 · 저수지 등에는 수신(또는 용왕신)이 있어 인간의 생명을 보호한다고 믿어 마을의 보호신으로 받들고 마을에서 공동제로 축제를 올린다. 이 때 개인의 축원제도 한다. 용왕제의 경우는 무축적인 성격과 의식이 많다.

다섯째 기우제로, 가뭄이 심하면 높은 산마루 또는 냇가에서 몇 개 마을이 집단으로 제물을 갖추어놓고 제를 올리는데, 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으면서 제축을 한다. 이 때 많은 짚과 섶을 모아 불을 놓고 풍물을 울리면서 기우한다. 무주읍과 안국사 부근 마을은 정상 산마루에서 안국사의 괘불탱화(掛佛幀畫)를 제단에 내걸고 주제자의 헌작과 독축, 승려들의 송경을 곁들여서 수일간 계속 축제를 하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조탑 둘레에서 밤이 새도록 떠들어대는 것과 부녀자들이 개울물을 키로 퍼서 까부는 날궂이하는 것도 있다. 안성면 진도리 도치마을의 동제에서는 자손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로하는 고혼제가 있다. 이는 무주군이라는 지명을 연상하게 한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의 설화로는 인물 · 암행어사 · 자연물에 관한 설화 등이 다양하게 전한다. 구천동에는 어사 박문수에 관한 설화가 전한다. 초라한 차림을 한 박 어사는 깊은 밤중에 구천동에 이르러 불이 켜져 있는 외딴집에 찾아들었다. 마침 그 집 안에서는 주인인 듯한 한 노인이 젊은 사람을 향해 칼을 들이대며 찌르려 하고 있었다. 주인을 불러낸 박 어사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친절하게 손을 맞이한 주인은, 자신은 구재서라는 훈장인데 천석두라는 마을 부자의 흉계로 다음 날 오후에 부인과 며느리를 천석두 부자에게 빼앗기게 되어,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네 식구가 함께 죽으려 하는 것이라고 사정을 말하였다. 박 어사는 구재서를 안심시킨 뒤 그 길로 밤새 무주현을 향해 가서 황 · 청 · 흑 · 백의 네 가지 옷으로 차려입힌 광대 넷을 데리고 다음 날 오후 구천동으로 되돌아왔다.

구재서의 집에 사모관대를 쓴 천석두가 나타나자 갑자기 누런 털이 달린 도끼를 치켜들고 귀신을 그린 깃발을 든 괴물이 들이닥쳐 초례상을 치며 흉측한 저승사자 넷을 불러냈다. 이어 저승사자에게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천석두를 잡아가라고 하니 결박을 지어 바람처럼 사라졌다. 박 어사는 천석두를 귀양 보내고 구재서에게 아들과 며느리를 돌려 보냈다. 그 뒤부터 이 마을은 구씨와 천씨가 살았다고 하여 구천동이라 부른다.

안성면 명천마을 장군바위에는 「아기장수설화」가 얽혀 있다. 옛날, 총명하고 힘이 센 소년이 홀어머니와 둘이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소년이 장차 큰 장수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역적이 될까 염려한 조정에서 이 소년을 찾으려 하자 소년은 좁쌀 한 말과 수수 한 말을 구해 달라 하여 어머니에게 백 일 동안은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리지 말라 하고 마을에서 떨어진 바위 밑으로 가서 무예를 닦았다.

조정에서 내려온 군졸들은 어머니를 묶어놓고 살점을 도려내가며 아들이 있는 곳을 대라고 윽박질렀다. 군졸들이 끝내 입을 열지 않는 어머니를 죽여 버리기로 하자, 어머니는 약속 날짜를 하루 남겨놓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밤에 몰래 바위 밑 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좁쌀 한 말과 수수 한 말이 수만의 군사로 둔갑하려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소년은 잡히는 신세가 된 것이 분하고 원통하여 잡혀가면서 머리로 바위를 들이받았는데, 지금도 그 자국이 장수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대소마을의 「화산바위전설」은 마을에 화재를 일으키는 바위 앞에 나무를 심어 재난을 막은 이야기이다. 이유 없이 마을에 불이 자주 났는데 한 길손이 가다가 “나무를 심어 화산바위를 가려야만 된다.”고 하였다. 이에 바위 앞에 나무를 심고 마을의 방향을 바꾸어 집을 지은 뒤로는 오늘날까지 무사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정희량의 난을 막은 상궁 누이의 지혜, 늘그막에 치성으로 아들을 얻은 미륵바위, 오랫동안 칠연폭포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된 선비, 추운 겨울에 두릅을 구해 어머니의 병을 낫도록 한 효자,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아내가 물에 빠져 죽은 「각씨소설화」등이 전해진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로는 노동요와 함께 비기능요인 타령류가 풍부하게 전한다. 농업노동요로는 「모내기노래」가 우세하며, “한강에다 모를 부어/모쪄내기 극난하네/석산에다 상추부어/상추솎기 난감하네.”와 같이 「모찌는노래」의 사설도 많이 불린다. 모찌기 작업이 힘들다고 노래하는 이 소리의 가창방식은 한 사람이 다 부르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두 패로 나누어 교환창으로 부르기도 한다.

「모내기노래」는 선후창으로 부르기도 하고 교환창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논에다 모를심어 장잎훨훨 영화로세/어린동생 곱게 길러 갓을씌워 영화로세.”라 하여 벼 자라는 것과 동생 크는 것을 소망으로 하는 소박한 바람을 노래하기도 하고, “여게꽂고 저게꽂고/주인네마누라 거게다꽂네/꽂기는 꽂건마는/산이라 될똥말똥”과 같이 진한 해학을 담은 사설을 노래하는 등 다양한 사설로 부른다.

「논매는노래」는 “(앞)산지조종은 곤륜산이요/(뒤)에헤루 방아호//(앞)수지조종은 황해수라……/(앞)기생조종은 성춘향이…….”라 하여 ‘방아호’를 뒷소리로 하는 「방아소리」를 사용하며 여러 종류의 으뜸을 앞소리로 엮어나간다. 「밭매기노래」는 “이내밭을 얼른매고/님의밭골 맞이가세…….”처럼 작업을 빠르게 하자는 단순한 사설로 부르거나 “오늘같이 더운날에/한골매고 두골매고/삼세골은 거듭매도/다른점심 다나오는데/이내점심 안나오네…….”라며 시집살이 고난을 엮는 「시집살이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여성노동요로는 「베틀가」 · 「물레노래」 등 길쌈노래가 중심을 이루나, “잠아 잠아 오지마라 이삼삼아 옷해입고….”와 같이 삼 삼을 때 부르던 길쌈노래가 「잠노래」라 하여 작업현장과 유리되어 불리고 있다.

그리고 고사리를 캐어 나물을 무치다가 먼저 먹은 것을 시누이가 일러 시집에서 쫓겨나게 된 며느리를 노래한 「고사리노래」와 남편에 대한 연정을 주제로 한 「시집살이노래」가 여러 노동현장에서 유흥으로 불린다.

이 밖에 산에 나무하러 가서 “에헤∼/사람이 생길 때는/별로 구별이 없었건마는/요놈의 신세는/무삼놈의 신세인고……아이고 대고/무주구천동이로세/에∼헤”라고 혼자 구성지게 신세타령을 하는 「나무꾼노래」가 있다.

의식요로는 장례의식요인 「상여노래」가 다른 지방보다 조금 빠르면서 단순한 가락으로 불리며, 환갑을 맞는 사람이 손님에게 음식을 권하면서 “천하보배는 내아들이요/백년효부는 내며느리요/천지일월은 내손자요/금어화초는 내딸이요.……”라 부르는 「환갑노래」가 있다.

비기능요로는 「노랫가락」 · 「새타령」 · 「도라지타령」「영감타령」 등이 많이 불리며, 「한글풀이」와 함께 “자시생전 무르행 사시유유 비창하는 하늘천(天)……아내박대 못하나니 대동통편 법중율(律)/춘향이입 내입 한테대니 범중여(呂)자 이아니냐.”라는 「천자풀이」도 잘 보존되어 불린다.

이 밖에 어희요(語戱謠)인 「벙거지타령」, 인체의 각 부분을 다 팔아도 빚을 못 갚는다는 「징검타령」이 “다 갚았습니다.”로 종결되는 사설로 불리며, 「이거리 저거리」와 같은 다리 빼기 노래 등의 동요가 불린다.

산업 · 교통

이 군은 산지가 많고 경지가 매우 좁아 밭농사 중심의 농업이 활발하다. 총경지면적은 5,439㏊로 8.6%의 매우 낮은 경지율을 보이며 논이 1,598㏊, 밭이 3,841㏊로 밭의 비율이 높다. 그 중 분지지형을 이루는 안성면은 군내에서 경지면적이 가장 넓으며 비교적 논이 넓게 발달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온이 낮고 경지가 척박해 농작물의 생육에 불리할 뿐 아니라, 가구당 경지규모가 작고 교통이 불편해 오랫동안 자급적이고 영세한 농업을 이루어왔다. 다만, 최근에는 농업구조 개편을 통해 소득 증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 감자 · 옥수수 · 메밀 등으로 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랭한 고원기후를 이용해 무 · 배추 등의 고랭지채소가 많이 재배된다. 그밖에 고추 · 마늘 · 잎담배 · 인삼 재배도 활발하며, 근래에는 사과 · 포도를 중심으로 한 과수 재배가 증가하고 있다. 인삼은 주요 산지인 진안군 및 충청남도 금산군에 인접한 무주읍과 부남면의 재배면적이 넓다. 부남면과 적상면에서는 양잠도 행해지고 있다.

산지가 많아 밤 · 호두 · 잣 · 버섯 · 약초 · 산나물 등 임산물도 많이 생산된다. 무풍면을 주요 산지로 하는 호두는 전북 지역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자연산 송이버섯도 많이 채취된다.

목초가 많은 산지에서는 축산업이 행해지며, 한우를 비롯해 젖소 · 돼지 · 흑염소 등이 사육된다. 흑염소는 한약재로 수요가 많아 농가 소득원으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광공업의 발달은 미미한 편으로 무풍면에서 규석이, 적상면에서 석회석이 약간 채굴되고 있을 뿐이다. 1993년에 안성면에 안성농공단지가 조성되어 가동중인 14개 업체 등 총 16개 업체에 108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지만, 모두 영세한 소기업들이다. 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이용한 가공업으로 무주읍에 버섯가공공장과 생사제조공장이 있다.

군내에는 무주장 · 안성장 · 무풍장 · 설천장 등 4개 정기시장이 열리고 있으며 설천면에는 1개의 상가가 있다. 무주장은 1·6일에 읍내리에서, 안성장은 5·10일에 장기리에서, 무풍장은 3·8일에 현내리에서, 설천장은 2·7에 각각 개시된다. 농산물과 생활필수품의 거래가 주종을 이루며, 인삼 · 버섯 · 산채류 등의 출하도 많다.

장시의 규모가 대체로 작고 거래 품목도 단순한 편이지만, 무주장과 설천장은 여름철의 구천동 계곡과 겨울철에 스키를 즐기러 덕유산국립공원에 모여드는 관광객들로 상당한 호황을 보인다. 관광업의 호황으로 인근지방에서 숙박 · 음식업이 상당히 발달했다.

소백산맥에 위치한 산간지대로 교통이 매우 불편했지만 덕유산국립공원 개발로 경부고속도로 영동진입로가 개설되고, 교통로 정비가 본격화되면서 매우 편리해졌다. 특히, 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를 계기로 전주∼무주간의 도로가 확장 · 포장되었고, 전주∼설천간의 고속화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현재 무주읍을 중심으로 진안∼전주, 장수∼남원, 금산∼대전, 금산∼옥천, 영동∼보은, 경상남도 거창 · 함양과 성주 · 김천 등지로 연결되는 국도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1992년 중심 관광지구인 설천면의 구천동과 무주리조트를 연결하는 도로와 소백산맥의 신풍령(905m)을 넘어 거창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개설되었고, 1997년에는 안성을 거쳐 전주로 연결되는 고속화도로가 개설되었다.

또한 경부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에 연결되는 대전∼진주간의 고속도로인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완공으로 무주진입로가 개설됨으로써 내륙교통이 크게 편리해졌다. 다만, 겨울철에 눈이 많아 차량 통행을 원활하게하기 위한 대책이 요구된다.

전북도 북동쪽 끝 산간지방에 위치하여 인접한 충청도 · 경상도와 오히려 교통이 편리하다. 따라서 생활권이 무주 중심의 지역은 대전권, 무풍 중심의 지역은 경상북도 김천, 안성 중심의 지역은 전주의 생활권으로 각각 나누어져 있다. 무주읍에는 국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이용되었던 나루터 소이진이 있다.

관광

예로부터 심산유곡을 이루어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고장으로 유명하며 덕유산국립공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관광명소이다. 그 중에서도 무주구천동은 덕유산에서부터 설천면 삼공리까지 약 25㎞에 달하는 깊은 계곡과 굽이쳐 흐르는 남대천의 심산유곡의 물, 그리고 곳곳의 경승지를 일컫는 말이다.

덕유산은 북쪽으로 무주구천동, 서쪽으로는 칠연계곡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지리산자락에 이어져 산줄기를 따라 곳곳에 백련암 · 원통사 · 영각사 등의 명소가 많다. 구천동계곡은 풍화작용에 약한 화강암층으로 되어 있어 물이 급경사를 이루면서 꼬불꼬불 흐르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두고 안심대 · 구월담 · 인월담 · 청금대 · 구천폭포 · 원화폭포와 같은 경승지와 기이한 바위, 마산동굴 등을 형성, 구천동 33경의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한다.

이들 경승지들을 옆으로 하고 백련암에 이르러 덕유산 정상에 등정하는 코스는 일품이다. 그 밖에 강선대 · 사선암 · 수성대 · 안렴대 · 용추폭포 등의 경승지도 있다. 칠연계곡에는 11경의 절경이 있으며, 특히 칠연폭포는 금강산 정상 부근의 팔담(八潭)에 비할 만한 절묘한 경치로 꼽힌다. 가을단풍으로 유명한 적상산은 안국사(安國寺)와 5경의 절경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조선조의 5대 사고(史庫) 중 하나로 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이다.

나제통문은 경상도 쪽과 전라도 쪽의 교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암벽을 굴착하여 만든 작은 터널인데, 깊은 계곡과 어우러진 경치가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적상산양수수력발전소가 건설됨으로써 안국사 부근에 발전을 위한 인공호수가 조성되어 자연과 인공의 미가 조화를 이룬다. 삼공리에는 각종 숙박시설과 1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영장, 청소년 심신수련장인 자연학습원 등이 잘 정비되어 있다.

덕유산 북쪽자락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슬로프와 리프트 시설, 콘도를 비롯한 각종 숙박시설을 갖춘 지구가 집중 개발되어 겨울 스키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더구나 ’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를 개최하면서 국제경기 규격에 맞는 활강시설과 숙박시설을 완비, 겨울철 국내 스키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리조트로 변모하고 있다.

또한 주요 국책사업의 하나인 태권도공원이 2013년 무주에 완공되어 무주의 관광산업은 가일층 활성화되었다.

읍 · 면
  1. 무주읍(茂朱邑)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79.41㎢, 인구 9,57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무주현 지역으로 1414년(태종 14년)에 무풍현과 주계현이 통합되어 형성되었다. 무주 부내가 되므로 부내면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면과 북면 · 신풍면의 일부와 금산군 부동면의 내도리가 합쳐 무주면이 되었다가 1979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읍의 대부분이 소백산맥에 속하는 산지로서 북동쪽은 충청북도 영동군, 북서쪽은 충청남도 금산군과 도계를 이루어 3도가 접경하고 있다. 남대천이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읍내리 · 대차리 · 앞섬 등지에 200∼250m 정도의 평지를 발달시키고 있다. 지질은 주로 화강편마암이고 남부쪽으로는 퇴적암층이 분포하며 토양은 대부분 적색토이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 · 보리 외에 버섯 · 약초 · 인삼 등이 많이 재배된다. 도로는 영동∼대전과 무주∼전주를 연결하는 도로를 필두로 금산 · 장계 · 남원 · 김천 · 거창으로 연결되며, 대전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무주향교 · 강선대 · 북고사 · 향산사, 당산리에 한풍루, 내도리에 노고성 등이 있다. 읍내(邑內) · 당산(堂山) · 오산(吾山) · 장백(長白) · 내도(內島) · 대차(大車) · 용포(龍浦) · 가옥(佳玉) 등 8개 리가 있다.

  1. 무풍면(茂豊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91.19㎢, 인구 2,36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현내리이다. 본래 무풍현 지역으로 1391년(공양왕 3) 주계현(지금의 무주읍)과 합쳐 무주군이 되고 조선 초에 풍동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풍남면의 증산 · 석항 · 사동 등 10개 리와 횡천면의 일부를 병합해 무풍현의 이름을 따서 무풍면이 되었다.

면의 중심인 현내리에 화강암이 풍화 · 침식되어 고도 400∼500m의 분지가 발달해 있다. 주변은 고도 700∼1,000m의 산지가 대부분으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기근과 병란의 염려가 없는 전국 10승지 중 하나로 꼽힌 지역이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 · 보리 외에 고랭지채소와 담배 · 인삼 등이 재배된다.

현내리에서 무주 · 김천 · 거창 방면으로 가는 도로가 분기한다. 지리적으로 경상도에 접해 있어 언어 · 풍습 등이 영남권에 가깝다. 문화유적은 현내리에 육영재 · 백산서원, 철목리에 충효각 등이 있다. 현내(縣內) · 금평(金坪) · 지성(池城) · 철목(哲木) · 증산(曾山) · 은산(銀山) · 덕지(德池) · 삼거(三巨) 등 8개 리가 있다.

  1. 부남면(富南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9.96㎢, 인구 1,51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소리이다. 본래 금산군 지역으로 옛 부리현의 남쪽이 되므로 부남면이라 하여 상대곡(上大谷) · 식암(息巖) · 교동(校洞)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리현에 속해 있던 부동면 · 부북면 · 부서면 · 부리면이 금산군에 속하게 되었고 부동면의 일부인 내도리는 무주면으로, 가당리 · 굴암리 · 대유리 · 대소리 · 고창리 · 장안리를 관할하던 부남면은 무주군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의 대부분이 편마암으로 된 산지이며 동부에 조항산, 서부에 지장산 등이 있다. 남북으로 흐르는 안창천과 중앙의 금강상류 주변에 평지가 좁게 발달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금산군에 근접하여 인삼재배가 활발하다.

교통은 전주 · 진안 · 안천 · 무주간을 연결하는 도로가 통과하며, 금산으로 통하는 도로도 발달해 충청남도의 금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장안리에 송계원 효자각이 있다. 대소(大所) · 대류(大柳) · 고창(高昌) · 장안(長安) · 굴암(屈巖) · 사당(祠堂) 등 6개 리가 있다.

  1. 설천면(雪川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58.21㎢, 인구 4,4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소천리이다. 본래 무주군 지역으로 신풍면(新豊面)이라 하여 기곡(基谷) · 길산(吉山) · 지전(芝田)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풍서면의 불대 · 북동 · 미천 등 9개 리와 횡천면의 심곡 등 7개 리를 병합해 설천의 이름을 따서 설천면이 되었다.

중앙에 거칠봉과 서부에 적성산 등의 높은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북으로 원당천이 남대천으로 흘러든다. 주곡작물인 쌀 · 보리 외에 고랭지채소와 수박 생산이 많다. 철과 아연을 생산하는 광산도 있다. 설천면은 덕유산국립공원의 명소들을 포함하며, 인월담 · 비파담 등 구천동 33경이 전개된다. 소천리의 나제통문은 근세에 굴착하여 이름을 붙인 암반 터널이다. 여기를 경계로 하여 동부와 서부가 언어 · 풍습이 다르다.

무주 · 무풍, 무주 · 구천동 · 거창간의 도로가 나누어진다. 문화유적은 소천리에 나제통문 · 설효사 · 관음사, 기곡리에 효열각, 두길리에 서벽정 · 유천사 · 매월당부도, 삼공리에 백련사 등이 있다. 소천(所川) · 기곡(基谷) · 길산(吉山) · 청량(淸凉) · 대불(大佛) · 미천(美川) · 장덕(長德) · 두길(斗吉) · 심곡(深谷) · 삼공(三公) 등 10개 리가 있다.

  1. 안성면(安城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97.26㎢, 인구 4,60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기리이다. 본래 금산군 지역으로 안성소가 있었으므로 안성면이라 하고 1895년에 무주군에 편입되어 일안면 · 이안면으로 분리,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가면의 일부와 상곡면의 일부를 병합해 다시 안성면이 되었다.

면의 남부에는 덕유산을 비롯해 만봉 · 시루봉 등의 높은 산지가 있다. 덕유산 북서 사면에는 고도 400∼500m의 넓은 분지가 발달해 있고 금강의 상류인 구량천이 여기에서 발원한다. 이 분지는 3단의 단구상을 이루어 우리 나라 남서부 내륙분지의 형성과정을 모식적으로 보여준다. 면의 북쪽에는 군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를 이룬다.

주곡인 쌀 · 보리 외에 잎담배 · 인삼 · 약초 · 고랭지채소 재배가 활발하다. 도로는 면내에서 전주 · 진안 · 장계 · 무주간 국도, 진안 · 안천 · 무주간 도로, 동향∼안성간의 도로가 교차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죽천리에 원통사지 · 죽계서원, 공정리에 칠연의총 · 칠연정, 사전리에 도산서원, 진도리에 도남사, 덕산리에 백운암지 등이 있다. 남동쪽에 구천동의 남쪽 입구에 해당하는 용추폭포 · 칠연폭포가 있어 관광지로 발달하고 있다. 장기(場基) · 공진(貢進) · 죽천(竹川) · 공정(公正) · 덕산(德山) · 금평(琴坪) · 사전(沙田) · 진도(眞道) 등 8개 리가 있다.

  1. 적상면(赤裳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35.82㎢, 인구 2,7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천리이다. 본래 무주군 지역으로 적상산 아래 골짜기가 되므로 상곡면이라 하여 북창(北倉) · 초리(初里) · 표내(浦內)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가면의 길왕 내사 등 10개 리와 부내면의 자하동을 병합하여 적상산의 이름을 따서 적상면이 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높은 산지를 이루고 적상산의 동쪽과 서쪽에서 금강 상류인 남대천 지류와 적상천 · 삼류천이 흐른다. 하천 주변에 좁은 충적지가 발달해 있다. 주곡작물인 쌀 · 보리 외에 인삼 · 담배 · 약초의 생산이 많다. 산채나물 · 버섯 · 토종꿀 등의 특산물이 생산되며, 금 · 규석 · 석회석 등의 광물도 소량 생산하고 있다. 도로는 전주 · 진안 · 안천 · 무주간 도로, 전주 · 진안 · 장계 · 무주간의 도로가 사천리에서 교차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북창리에 적상산성 · 적상산사고, 괴목리에 호국사 · 안국사 등이 있다. 사천(斜川) · 사산(斜山) · 삼가(三加) · 삼류(三柳) · 방리(芳梨) · 북창(北倉) · 포내(浦內) · 괴목(槐木) 등 8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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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www.jeonbuk.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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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군(www.muj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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