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민영모(閔令謨)의 아들이다.
1167년(의종 21) 과거에 급제하였고, 명종 말년 내시(內侍)로 입적하여 왕의 측근이 되었다.
최충헌(崔忠獻)이 권력을 장악하고 1197년(명종 27) 명종을 폐위시킬 때 다른 70여 명의 측근과 함께 축출되었으나 이듬해 우산기상시로 발탁되었고 벼슬이 형부상서에 이르렀다. 성품이 활달하고 도량이 넓어, 귀천에 관계없이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