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행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한성부서윤, 통례원봉례, 정선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석곡(石谷)
  • 성지(聖之)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병자호란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656년(효종 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한성부서윤|통례원봉례|정선군수
  • 출생 연도1578년(선조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공원령
  • 최종수정 2023년 05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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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서윤, 통례원봉례, 정선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지(聖之), 호는 석곡(石谷).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박충원(朴忠元)이고, 아버지는 생원 박호현(朴好賢)이며, 어머니는 군수 유영(兪泳)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인도(利仁道) · 창락도(昌樂道)의 찰방이 되고,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을 거쳐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에 올랐다. 1621년(광해군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인조가 즉위한 뒤 파방되어 다시 재시에 응하여 급제하였다.

그러나 종질 박승종(朴承宗)이 왕실과 혼인하여 위세가 있었기 때문에 재시고관(再試考官)이 박안행의 이름을 삭제하여 버렸다. 1624년(인조 2) 사헌부감찰이 되고, 그 뒤 세자익위사위수(世子翊衛司衛率)를 거쳐, 용담현감 · 당진현감을 역임하였다.

이어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금부도사로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다. 그 뒤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 통례원봉례(通禮院奉禮) · 정선군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힘입어 비로소 관직에 나갔다. 벼슬은 별좌(別坐) · 봉례(奉禮)를 거쳐 군수에 올랐다.

참고문헌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인물고(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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