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행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한성부서윤, 통례원봉례, 정선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성지(聖之)
석곡(石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8년(선조 11)
사망 연도
1656년(효종 7)
본관
밀양(密陽)
주요 관직
한성부서윤|통례원봉례|정선군수
관련 사건
병자호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서윤, 통례원봉례, 정선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지(聖之), 호는 석곡(石谷).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박충원(朴忠元)이고, 아버지는 생원 박호현(朴好賢)이며, 어머니는 군수 유영(兪泳)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인도(利仁道) · 창락도(昌樂道)의 찰방이 되고,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을 거쳐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에 올랐다. 1621년(광해군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인조가 즉위한 뒤 파방되어 다시 재시에 응하여 급제하였다.

그러나 종질 박승종(朴承宗)이 왕실과 혼인하여 위세가 있었기 때문에 재시고관(再試考官)이 박안행의 이름을 삭제하여 버렸다. 1624년(인조 2) 사헌부감찰이 되고, 그 뒤 세자익위사위수(世子翊衛司衛率)를 거쳐, 용담현감 · 당진현감을 역임하였다.

이어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금부도사로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다. 그 뒤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 통례원봉례(通禮院奉禮) · 정선군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힘입어 비로소 관직에 나갔다. 벼슬은 별좌(別坐) · 봉례(奉禮)를 거쳐 군수에 올랐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송자대전(宋子大全)』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인물고(人物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