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안변부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도 대원군의 복권을 상소한 부사과(副司果) 이휘림(李彙林)의 국문(鞠問)을 요구하는 옥당의 연차에도 참가하였다. 같은 해 부교리(副校理)에 임명된 뒤 김옥균(金玉均) 등과 함께 손영로(孫永老)사건, 신철균(申哲均) 사건 등의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옥당의 연차에 계속 참여하였다.
1877년 부응교(副應敎), 이듬해 장령(掌令)이 되는 등 언론을 담당하여 활동하였다. 1880년에는 부묘도감(祔廟都監)의 부향친제시(祔享親祭時) 도청(都廳)에 참가하여 가자(加資)되었다.
1882년 안변부사로 재직할 당시 일본인이 조약을 어기고 개항장 밖으로 월경(越境)하여 조선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도한 행위를 하여 군중에게 난타당하고 그 중 1인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함경감사와 남병사(南兵使)가 장계를 올리자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에서 책임을 물어 덕원부사 정학묵(鄭學默)과 함께 처벌받았다. 1885년에는 동부승지가 되었으나 왕명을 어긴 죄목으로 숙천부(肅川府)에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일성록(日省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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