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수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종묘서직장, 연원도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아수당(我誰堂)
  • 언실(言實)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정묘호란|병자호란
  • 본관진원(珍原: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
  • 사망 연도1641년(인조 1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종묘서직장|연원도찰방
  • 출생 연도1590년(선조 2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종묘서직장, 연원도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원(珍原). 자는 언실(言實), 호는 아수당(我誰堂). 아버지는 군자감정(軍資監正) 박근효(朴根孝)이다. 김수항(金壽恒)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27년(인조 5)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학행(學行)으로 추천되어 종묘서직장(宗廟署直長)을 거쳐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이 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장생(金長生)을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로, 안방준(安邦俊)을 의병장으로 하고, 자신은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전주에까지 이르렀다가 곧 화약(和約)이 성립되자 그만두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아우 박춘장(朴春長), 아들 박진형(朴震亨) 등과 함께 300여 명을 모집하여 보성(寶城)에서 청주에까지 이르렀으나, 강화(講和)의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의병을 해산하고 군량(軍糧)을 모두 완영(完營: 全羅監營의 별칭)에 반품하였다. 그 뒤로는 죽을 때까지 후진양성에만 힘썼다.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충효스러우며 할아버지 때부터 창의활동(倡義活動)을 하여 칠현(七賢)이 한 집안에서 나왔다. 좌승지 겸 참찬관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호남병자창의록(湖南丙子倡義錄)』

  • - 『칠현거의록(七賢擧義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