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범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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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 현대
문교부 차관, 충남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경제발전이론을 한국 경제학계에 처음으로 도입한 경제학자·교육자.
이칭
  • 내남(乃南)
인물/근현대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22년
  • 사망 연도1981년
  • 본관밀양(密陽)
  • 출생지경상북도 김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종철 (서울대학교, 경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문교부 차관, 충남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경제발전이론을 한국 경제학계에 처음으로 도입한 경제학자·교육자.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내남(乃南). 경상북도 김천 출신. 대구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였고, 1968년 「후진국에 있어서의 자본의 조달과 산업별 배분」이라는 논문으로 동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 법정대학 교수(1952∼1957)를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1957∼1968)로 봉직하면서, 경제연구소 소장과 학장을 지냈다. 문교부차관(1968),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1970), 충남대학교 총장(1973)을 역임한 뒤, 1980년 이후 계명대학교 교수로 후진양성에 여생을 바쳤다.

1960년대에는 경향신문 논설위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자문위원, 행정 및 사법고시 위원, 외자도입촉진위원회 위원, 경제개발계획평가위원 등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문교부차관 재직시는 중학 교무시험진학제 실시, 국민교육헌장 및 가정의례준칙 제정, 아주대학교 설립 등에 공이 컸고, 충남대학교 총장 재임시에는 캠퍼스 이전, 교수자질·강의수준 향상에 뛰어난 행정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경제계획을 지지하였으나,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경제발전이론을 한국경제학계에 처음으로 도입하고, 1960년대 한국경제학계를 주도한 경제학자들 중에서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민족주의적이었던 경제학자였다.

그의 학문적 입장은 「경제개발과 경제체제」 또는 「제도변혁과 구조변혁」 등의 논문에서 보듯 제도학파에 더 가까웠고 기능주의를 배척하고 구조주의를 지지하였으며, 선진국경제이론을 무비판적으로 한국경제에 적용하려는 학계 일부 동향을 날카롭게 공격하였다.

주요 저서로는『한국경제성장론』(1970) 이외에「로스토우경제성장이론에 대한 비판」·「우리나라 경제구조와 발전과정」 등 많은 논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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