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제

  • 과학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대한외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의사.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9년(고종 3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구충 (전 우석대학, 의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대한외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의사.

생애 및 활동사항

1915년 평안북도 정주(定州)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6개월간 투옥으로 퇴학을 당하였다. 1921년 복교하여 졸업하였다. 1921년 총독부의원 부수(副手)로 근무하다가 1923년 의사면허증을 받아 등록하였다.

조선총독부 의원으로 외과 근무를 하였다. 1928년 일본 동경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동시에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1930년에 조선의사협회가 조직되자 간사로 선임되었다.

1936년에 다시 1년 6개월간 프랑스·독일·미국에 유학하였으며, 1941년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를 사임하고 백외과(白外科: 현재 인제대학교 부속 백병원)를 서울 저동에서 개업하였다. 1945년 9월에 서울의과대학(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 주임교수 겸 부속병원장(소격동 소재)에 임명되고 1945년 12월 서울의사회 초대회장에 피선되었다.

1946년 10월 국립 서울대학교 창설과 함께 의과대학 외과 주임교수로 임명, 1947년 1월에 사임하였다. 1947년 대한외과학회 초대회장, 대한의학협회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

1946년 11월 재단법인 백병원을 설립하였다. 그의 연구는 다방면에 걸쳤으나 특히 구루병(佝僂病)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 이외에도 혈액에 대한 연구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참고문헌

  • - 「의계의 개척자들」(정구충, 『의협신보』,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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