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사리감.
내용
이 사리감은 화강암제로서 윗부분을 아치형으로 처리하여 전체 모양이 능산리고분군의 중하총 현실(玄室)과 같은 모양을 나타내고 있으며, 측면을 파서 감실을 마련하였다.
의의와 평가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백제사원이 조사되었으나 명확한 절대 연대가 밝혀진 곳이 없었는데 이와 같은 절대 연대의 확인은 백제시대 사원 연구뿐만 아니라 백제고고학 전반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둘째 새로운 형태의 사리장치의 발견이다. 능산리고분 중하총의 현실(玄室)과 같은 사리감의 형태 또한 새로운 자료이지만 사리감을 목탑 심초석(心礎石) 위에 심주(心柱)와 함께 나란히 세워 놓은 것도 처음 발견되는 예로서, 삼국시대 사리장치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셋째 백제의 칭원법을 확인한 점을 들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창왕, 즉 위덕왕 13년은 병술년이며 정해년은 1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삼국사기』는 왕의 즉위년을 선왕이 사망하고 새 왕이 즉위한 해를 새 왕의 원년으로 삼는 즉위년칭원법을 사용한 반면, 백제는 그 이듬해를 새 왕의 원년으로 삼는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을 사용했음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명문의 글씨체가 중국 북조(北朝)계의 글씨체인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시 백제가 중국의 북조와도 활발하게 교류했던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 절터 및 부여 정림사지 등에서 출토된 소조불(塑造佛) 등에 북조인 북위(北魏)의 양식이 드러나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의 출토 의의」(김창호,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연구』2,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학연구소, 1998)
주석
-
주1
: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무덤 속의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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