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학 ()

유옥역전
유옥역전
현대문학
개념
한 나라의 문학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옮긴 문학.
정의
한 나라의 문학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옮긴 문학.
개설

외국문학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경우와 자국문학을 외국어로 옮기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번역문학이라 함은 후자보다는 전자의 경우를 가리킨다.

우리 나라 번역문학의 효시는 1895년에 역간된 <유옥역젼>과 <텬로력뎡>이다. <텬로력뎡>은 캐나다인 목사 게일(Gale, J.S) 부처가 번역한 것이므로, 국적을 한국인으로만 정한다면 이동이 번역한<유옥역젼>이 단연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지본의 순한글 필사본(100면)으로 <아라비안나이트, Arabian Night>의 번역소설이다.

그러나 개화기 번역문학의 주요 흐름은 이러한 문예물에 있지 않고, ≪태셔신사≫(1897) · ≪아국략사 俄國略史≫(1898) · ≪중동전기≫(1899) · ≪미국독립사≫(1899) · ≪법국혁신전사≫(1900) · ≪애급근세사≫(1905) 등의 역사류와, <나팔륜전>(1895) · <비스막전>(1906) · <항가리애국자갈소사전>(1906) · <피득대제전 彼得大帝傳>(1907) · <라란부인젼>(1907) · <국부인젼>(1907) · <이태리건국삼걸젼>(1907) · <퓌일트젼>(1908) 등의 전기류에 있었다.

번역작품은 초기일수록 문학의 사회적 효용성이 두드러진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즉, 국권과 민권의 수호를 그 공분모로 한 역사물이 32편, 전기류 12편, 정치소설 8편, 교양물 중에서도 정치성을 띤 ≪음빙실자유서 飮氷室自由書≫(1908) · ≪중국혼≫(1908) · ≪멸국신법론 滅國新法論≫(1906) 따위의 역간이 3편 등 총 55편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당시 번역문학의 특성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개화기 후기에 접어들면서, 육당(六堂)최남선(崔南善)의 역간 취지에 따른, 초기와는 이질적이나 역시 육당 나름대로의 사회적 효용성을 공분모로 한 순수문학으로의 길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국 번역문학을 사회적 효용성이 배제된 순수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데도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육당의 공적은 불멸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개화기 당시 우리 번역문학의 원류는 그것이 서양인에 의하여 씌어진 작품이라 할지라도 전부 한 · 일 역본의 중역이 아니면 한 · 일 서가 대본으로 사용되었다. 또 번역태도도 번안 · 초역 · 의역 · 경개역 · 역술 등이 그들의 수용태도의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번역에 크게 공헌한 역자는 사학가 현채(玄采)였다.

이상으로 개화기의 번역작품은 창작소설보다 앞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03년의 ≪황성신문≫에 게재된 <대동애전 大東崖傳>이 창작소설의 효시이기 때문이다.

개화기 번역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육당의 <소년>이다. <소년>의 번역작품은 개화기의 역사류와 전기류와는 판이한 새 시대, 새 국가를 건설할 역군인 소년을 활동적 · 진취적 · 발명적 대국민으로 양성하기 위해 원동력을 계발하려는 육당 나름대로의 공지적인 문학관에 입각한 서구의 문학작품이기는 했지만, 근대적 의미의 픽션(fiction)의 내용을 갖춘 문예작품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소년>은 그것이 초역 · 경개역 · 번안이긴 하지만 근대적 의미의 서구의 문예작품을 이 땅에 최초로 이식(移植)시킨 공로자의 하나라는 의의를 지니며, 개화기의 서구물 번역에 국권 수호라는 공리성 추구 일변도에서 문예작품으로의 길을 터놓아 우리 번역문학에 제1전기를 공급한 공로자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개화기에는 역사류 · 전기류가 주였던 것이 이 10년간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자취를 감추고 본격적인 서구 문예물이 이식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개화기에 <소년>에 의하여 소개되었던 이솝 · 톨스토이 · 빅토르 위고 · 바이런 · 존 번연, 쥴 베르느 · 주더만 · 실러 · 다니얼 디포우 · 스위프트 · 제임즈 몽고메리 · 차알즈 맥케이 · 캐롤라인 F. 오언 · 샤뮤엘 스마일즈 · 에브니저 · 엘리어트 · 안도레에 네모에프스키이 · 앨프레드 테니슨 외에 이 10년간에는 ≪태서문예신보≫에 등장하는 작가 · 시인 외에 역시 초역 · 경개역 · 축역 · 역술 · 의역 등이기는 하지만 단편에 구애되지 않고 육당식 공리적인 작품 외에 서구의 명작이 폭넓게 이 땅에 번역되었다.

즉, 보아고베이 · 쥴 베르느 · 이솝 · 사무엘 스마일즈 · 타고르 · 워싱턴 어빙 · 빅토르 위고 · 톨스토이 · 밀튼 · 세르반테스 · 초우서 · 에지워스 · 라미이부인 · 스토우부인 · B.고트프리드 아우구스트 · 복카치오 · 브랏트 · 뒤마 · 셴키에비츠 · 모파상 · 도스토옙스키 · 투르게네프 등의 작품이 번역되었던 것이다.

또 대본 문제도 한서 관계의 중역은 전혀 자취를 감췄고, 일역서의 중역이 국내에서 역간된 35종 중 25종, 전체의 71%에 해당된다. 수용태도의 문제도 축자역이 10종, 기타 중역술 · 중번안 · 경개역 · 의역이 15종이다.

이렇듯 1910년대에 이 땅에 이식된 서구문학의 양은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질에 있어서는 개화기보다는 전진이 있었다. 그리고 육당식 사회적 효용성 위주의 순수문학이 그 효용성의 베일을 벗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어 서구문학으로의 문호가 개방되었으며, 그로 인해 ≪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가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의 초기 번역문학사에서 이 주간 문예지가 차지하는 공적은 당시의 번역문학이 대개 내용에만 편중됐고, 외형 · 내용 병중의 충실성을 무시한 경향을 내용 · 외형 병중의 의식시대로 이끌어 올린 최초의 시도였다는 데 있다. 그 주도적 역할을 한 역자가 안서(岸曙)김억(金億)이다.

1920년대

1920년대의 번역문학은 그 수에 있어서 1910년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증가했으며, 1910년대의 단행본 15편, 잡지 · 신문에 게재된 것 33편, ≪태서문예신보≫의 41편, 도합 89편에 비해 1920년대에는 단행본이 124편, 신문 · 잡지에 게재된 것이 ① 영국문학 151편, ② 미국문학 65편, ③ 독일문학 68편, ④ 프랑스문학 100편, ⑤ 러시아문학 127편, ⑥ 인도문학 126편, ⑦ 이탈리아 및 그 밖의 나라의 문학이 34편, 도합 671편으로 격증되었음을 보이고 있다.

그 수뿐만 아니라 질도 순수문학으로 일변되어 있으며, 또 소설 · 시 · 평론 · 수필 · 논술 · 동화 따위로 그 장르의 구색도 다양하리만큼 갖추어졌다. 이렇듯 1920년대에 번역문학이 격증된 데에는 첫째 정치적 영향, 즉 1919년의 3 · 1운동 후의 일제의 문화정치 표방정책에 따라 종전의 탄압 일변도였던 언론정책의 수정 때문이다.

1920년 3월 6일에 ≪조선일보≫, 4월 1일에 ≪동아일보≫, 1924년 3월 21일에 ≪시대일보≫, 1926년 11월 15일에 ≪중외일보≫ 등이 창간되었고, 168종의 잡지의 창간과 7종의 잡지의 속간되었다. 그 중에서도 ≪근화 槿花≫ · ≪신청년≫ · ≪문우 文友≫ · ≪장미촌≫ · ≪백조≫ · ≪르네쌍쓰≫ · ≪금성≫ · ≪페허이후≫ · ≪문예운동≫ · ≪생장 生長≫ · ≪시촌 詩村≫ · ≪령태 靈台≫≪조선문단 朝鮮文壇≫ · ≪백치 白雉≫ · ≪생(生)의 성(聲)≫ · ≪신시단≫ · ≪조선문예 朝鮮文藝≫ · ≪신소설 新小說≫ 등 문예 전문지가 우후죽순격으로 속출되었다는 사실이 문학 발달을 촉진시켰다는 증거가 된다. 그것은 번역문학의 수용에 그만큼 큰 문이 열렸다는 증좌가 되기도 한다.

둘째는 시대의 문학의식의 진보를 들 수 있다. 일본 문단을 통하여 흘러 들어온 세계 문예의 영향은 자연히 그 시대의 문학의식의 진보를 촉진하여 서구문학을 이입시켜 자국 문학의 질적향상을 도모해야겠다는 의식을 싹트게 했다.

셋째는 일본 유학생의 증가에 따라 각국 문학에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또 그 전공 분야도 넓어졌으며(해외문학파와 같은 경우), 그들의 애국심에 외국문학을 자국에 이입시켜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넷째는 일어로써 자유자재로 외국문학을 감상할 수 있는 독서 능력은 아직 없지만, 국민 전체의 교육 수준이 높아져 외국문학을 동경하는 분위기가 높아졌다. 즉 광범위한 독자층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금성≫과 ≪해외문학≫의 한국 근대 번역문학사에서의 공적이다. ≪금성≫은 제3전기, ≪해외문학≫은 제4전기를 제공하리만큼 우리 번역문학사에서는 중요한 문예지들인바, ≪금성≫과 ≪태서문예신보≫가 그 성격이 다른 점은 저자가 거의 시 위주의 동인지(동인:梁柱東 · 柳春燮 · 李相佰 · 李章熙 · 白基萬 · 孫晉泰-제3호)인데 반해 후자는 번역 위주의 주간지라는 점, 후자가 동인지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금성≫이 한국 번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역필을 든 사람이 동인 중 불과 4명이라는 소수이긴 하지만 거기 실린 번역작품이 개별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동인이라는 조직력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한국 최초의 시도였다는 데 사적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시도가 원어를 텍스트로 한 데서 이루어졌으며, 그들이 대학에서 외국어를 이수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특이점의 하나가 된다.

≪금성≫은 창간호가 1923년 11월 10일, 제2호가 1924년 1월 25일, 제3호가 1924년 5월 24일에 나온 후 폐간되고 만다. 이 문예지의 주간격인 양주동이 쓴, 후기라고 할 수 있는 창간호의 ‘6호 잡기’와 제3호의 ‘잡조(雜俎)’에 이 문예지의 주장이 피력되어 있는바, 그것을 요점만 뽑아 기록하면, ① 이 잡지는 문예 일반지가 아니라 시가 위주의 동인지이며, ② 창작시만이 아니라 번역시도 게재하며, ③ 번역의 경우, 때로는 극소수의 번역소설도 게재한다는 것이다.

한국 근대 번역사에서 ≪금성≫의 사적 의의와 위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창작시 위주의 시 잡지이지만 번역시도 게재하였다. 그 범위는 주로 19세기 후반기의 프랑스 시와 타골의 <신월>에 집중되어 있어 ≪태서문예신보≫가 의도한 범위와 시대보다 별로 앞선 흔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태서문예신보≫가 주간 장두철(張斗徹)의 편집 방침에 따라 기고자의 개별적인 고립된 입장에서 역자들이 투고한 데 반해, ≪금성≫은 동인을 이루어 조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즉, 1927년에 대두되는 ≪해외문학≫의 선구 역할을 다하여 의식적으로 조직적인 동인의 힘을 동원하여 일정한 계획 아래 번역을 한 우리 나라 최초의 기도였다는 것이다.

② ≪태서문예신보≫도 직접 원어를 번역할 것을 소극적이나마 주장하였지만, ≪금성≫은 일역의 중역과 무책임한 번역이 판을 치던 시대에 유독 그러한 번역태도를 의식적으로 배격한 우리 나라 최초의 문학지였다.

③ 번역태도가 전공어에만 국한하였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최소한 영역의 중역에 의존했으며, 전공자의 양심에서 원작자 · 역자(아호까지도 배격)의 이름을 명기하였고, ‘역자 머리말’을 반드시 붙여 원작자 및 원작의 해설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중역일 경우엔 반드시 역자가 사용한 언어를 명기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번역문학을 정상 궤도로 끌어올리려는 중요한 태도로서 1930년대에 이르러 해외문학파가 이룩한 번역의 성실성의 선구적인 역할을 다했을 뿐더러, 우리 나라의 번역문학을 정상궤도로 올려놓으려는 첫 시도를 이루었다.

④ ≪금성≫은 한국 근대 번역문학사에 번역 논쟁의 문을 열었는데(제3호의 “≪개벽≫ 4월호의 ≪금성≫ 평을 보고”-양주동), 이 논쟁에서 자기의 번역태도를 밝혔을 뿐 아니라, 원작에 충실한 축자역이 번역의 바른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안서의 역시, 즉 창작시라는 의역을 중시한 번역태도를 날카롭게 공격하여 이후의 번역태도에 경종을 울린 우리 나라 최초의 시도였다.

≪해외문학≫은 창간호를 1927년 1월 17일에, 제2호를 1927년 7월 4일에 내고서 폐간되고 만다. 여기 모인 동인은 동경 유학생들로서, 이하윤(異河潤, 법정대학-영문학) · 정인섭(鄭寅燮, 와세다대학-영문학) · 김진섭(金晉燮, 법정대학-독문학) · 이선근(李瑄根, 와세다대학-사학과) · 홍재범(洪在範, 법정대학-철학과) · 김명엽(金明燁, 동경고사-영문과) · 김온(金 , 동경외대-노어과) · 손우성(孫宇聲, 법정대학-불문과) · 함병업(咸秉業, 동경제대-일본문학과) · 이병호(李炳虎, 와세다대학-영문과) · 장기제(張起悌, 법정대학-영문과) · 정규창(丁奎昶, 와세다대학-영문과) · 유석동(柳錫東, 와세다대학-영문과) · 김삼규(金三奎, 동경제대-독문과) · 이홍종(李弘鍾, 동경외대-노문과 중퇴) · 이헌구(李軒求, 와세다대학-불문과) · 김광섭(金珖燮, 와세다대학-영문과) · 최정우(崔珽宇, 동경제대-영문과) · 유치진(柳致眞, 입교대학 · 영문과) · 서항석(徐恒錫, 동경제대 · 독문과) · 박용철(朴龍喆, 동경외대-독어과 중퇴) · 조희순(曺希淳, 동경제대-독문과) · 이형우(李亨雨, 입교대학-영문과) · 김상용(金尙鎔, 입교대학-영문과) · 허보(許保, 법정대학-영문과) · 함대훈(咸大勳, 동경외대-노문과) 등으로 막대한 자원을 보유했다.

이들은 아직 예과 또는 학부 하급생들로 그들의 역업에 대하여 일종의 소인 번역시험장 같다는 악평을 들을 만큼 그 범위가 월터 베션트(1836∼1901) · 코넌 도일(1859∼1930) · 모파상(1853∼1893) · 투르게네프(1818∼1883) · 롱펠로우(1803∼1882) · 베르레느(1844∼1896) · 예이츠(1865∼1939) 등 19세기의 작가 · 시인에만 국한된 취약점을 갖고는 있지만, ≪태서문예신보≫의 안서 일인 독재, ≪금성≫의 과소군단 세력에 비해 막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해외문학≫은 ① 외국어를 다룰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전문가를 비로소 다수 가지게 되었다는 것, ② 그것이 과거의 독소인 번안 내지 초역적 수법을 파기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 아래 외국문학연구회로 굳게 뭉쳐 ≪해외문학≫에서 미숙하나마 그것을 실증했다는 것, ③ 유능한 인재를 확보했다는 것, ④ 유령번역이 차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번역문학에 신풍을 불어넣는 작용을 했다는 것, ⑤ 한국의 번역문학을 그 인적 능력이나 의욕에 있어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금성≫ 이후의 두 번째의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것 등에 의의가 있다.

이렇듯 앞의 3개 문예지에서 그 원칙을 얻은 한국 번역문학은 1920년대를 거쳐 1930년대에는 번역문학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1920년대의 번역을 도표로 제시하면 [표 1] · [표 2] · [표 3]과 같다.

[표 1] 1920년대 잡지 게재분

연도\국별 파사
1920 10 6 15 8 15 1 0 0 0 10 1 0 0 0 0 0 0 0 66
1921 7 8 13 15 1 1 0 0 0 11 1 0 0 0 0 0 0 0 57
1922 5 5 2 23 3 2 0 0 0 56 2 0 0 0 0 0 1 0 99
1923 23 5 9 11 6 0 0 0 1 7 0 0 0 0 0 0 0 1 63
1924 19 5 9 10 13 1 0 0 0 30 1 1 0 0 0 0 0 0 89
1925 24 12 5 18 5 0 0 0 1 8 0 0 0 0 0 0 0 1 74
1926 26 2 9 8 3 1 0 0 0 2 1 0 0 0 1 0 0 0 53
1927 19 11 24 17 16 2 0 0 0 1 2 1 1 0 0 2 0 0 96
1928 7 5 5 6 4 1 0 1 0 0 0 0 0 0 0 0 0 0 30
1929 11 6 9 11 2 1 1 0 0 1 1 0 0 1 0 0 0 0 44
151 65 100 127 68 10 1 1 2 120 10 2 1 1 1 2 1 2 671
※ 서=스페인, 파=폴란드, 전=스웨덴, 나=로마, 항=헝가리, 유=유태, 토=터어키 체=체코, 인=인도, 폴=폴란드

[표 2] 1920년대 단행본

연도\국별 스위 미상
1920 1 1 1 0 0 0 0 1 0 0 1 0 5
1921 5 3 2 2 0 0 0 0 0 1 1 3 17
1922 2 0 5 2 1 2 0 0 0 0 0 1 13
1923 6 0 4 3 5 1 1 0 0 1 1 0 22
1924 6 0 4 3 3 0 2 1 1 0 0 3 23
1925 8 2 4 2 0 0 0 0 0 0 0 3 19
1926 4 0 2 3 0 0 0 0 0 0 1 0 10
1927 1 2 2 0 0 0 1 0 0 0 0 2 8
1928 1 0 0 0 0 0 0 1 0 0 0 2 4
1929 0 0 0 0 0 0 0 1 0 0 0 2 3
24 8 24 15 9 3 4 4 1 2 4 16 124
※ 놀=노르웨이 스위=스위스

[표 3] 1920년대 중역 여하와 번역태도

중 역 여 하 번 역 태 도
직 접 역 27 완역 축자역 40
일역의 중역 51 초역 15
영역의 중역 1 의역술 14
미 상 45 번안 5
초역술 15
경개역 6
미 상 29
계 124 계 124

[표 3]에서 보는 것처럼 번역태도의 완역 · 축자역 40은 1920년대에 가서 우리 번역문학이 내용 · 외형 병중의 정도의 중요성을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끝으로 1920년대에 공이 많은 역자들과 그 번역작품을 도표로 들어보면 [표 4]와 같다.

[표 4] 1920년대 번역자 및 번역작품

역 자 명 편 수 번 역 작 품 명
김억 10 오뇌의 무도(1921) 윌슨(1921) 나의 참회(1921) 프랭크린(1921) 기탄자리(1923) 죽음의 나라로(1923) 신월(1924) 잃어진 진주(1924) 당상염작(1924)원정(1924)
홍난파 9 첫사랑(1921) 어데로 가나?(1921) 애사(哀史, 1922) 짠발짱의 설음(1923) 매국노 의자(1923) 청춘의 사랑(1923) 사랑의 눈물(1924) 나나(1924) 청년입지편(1925)
이상수 6 인형의 가(1922) 사랑과 설음(1923) 해부인(1923) 인육장사(1923) 귀신탑(1924) 베니스의 상인(1924)
게일 이원모 5 양극탐험기(1923) 류락황도긔(1924) 그루소표류긔(1925) 소영웅(1925) 일신량인긔(1926)
양재명(하엽) 4 헬만과 도로페아(1922) 막베스(1923) 사로메(1923) 지요케네스(1924)
천리구(김동성) 3 엘렌의 공(1921) 붉은 실(1921) 괴물(1923)
춘계생 3 부활(1923) 마논레스코(1923) 데카메론(1924)
양백화 3 노라(1922) 소년 벨테르의 비뇌(1923) 3주간(1924)

1930년대

1930년대의 번역문학은 그 수를 1920년대와 비교해 볼 때, 잡지 게재분은 [표5]에 나타난 것처럼 압도적으로 많으나, 단행본은 겨우 21편에 불과하다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표 5] 1930년대 번역문학

연 도 잡 지 단 행 본
1930 149 5
1931 90 0
1932 117 0
1933 141 4
1934 127 1
1935 111 3
1936 61 2
1937 16 2
1938 28 1
1939 54 3

1935년을 분수령으로 하여 그 전후의 소계를 내보면, 1935년 이전은 잡지 735, 단행본 12, 1935년 이후는 잡지 159, 단행본 8로 나타난다. 잡지 · 단행본을 막론하고, 1935년 이후는 급강하하는 현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거기에는 일제가 1935년에 국제연맹에서 탈퇴하여 영미를 위시한 독일 · 이탈리아 이외의 국가들에 대한 적대행위 결과 조성된 서구문화 배격과 그 통제의 피해를 가장 예민하게 받은 식민지로서의 입장이 가장 으뜸 가는 원인이다.

또 하나, 내재적인 원인으로서 일역서에 눌려 우리말 역서의 판로가 없어 출판사에서 출판을 꺼렸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1930년대의 번역을 표로 정리하면 [표 6] · [표 7] · [표 8]과 같다.

[표 6] 1930년대 잡지 게재분

연도\국별 파사 스위 불가
1930 81 9 18 11 16 4 0 4 1 1 0 1 1 1 1 0 0 0 0 149
1931 30 9 11 21 8 2 2 0 0 0 1 2 0 0 0 0 0 0 4 90
1932 36 18 9 19 24 4 1 0 0 1 1 1 0 0 0 1 0 0 2 117
1933 63 15 15 20 13 6 1 4 0 1 2 0 0 1 0 0 0 0 0 141
1934 63 10 8 9 28 1 1 0 0 0 7 0 0 0 0 0 0 0 0 127
1935 36 16 17 7 21 3 1 4 5 0 0 0 0 1 0 0 0 0 0 111
1936 20 13 9 6 5 0 1 2 0 0 4 0 0 0 0 0 0 1 0 61
1937 5 3 3 2 1 1 0 1 0 0 0 0 0 0 0 0 0 0 0 16
1938 11 3 5 4 4 0 0 0 0 0 0 0 0 0 0 0 1 0 0 28
1939 22 8 13 2 7 0 2 0 0 0 0 0 0 0 0 0 0 0 0 54
367 104 108 101 127 21 9 15 6 3 15 4 1 3 1 1 1 1 6 894
※ 포=포르투갈, 불가=불가리아

[표 7] 1930년대 단행본

연도\국별 미상
1930 0 0 1 0 1 1 0 2 5
1931 0 0 0 0 0 0 0 0 0
1932 0 0 0 0 0 0 0 0 0
1933 1 2 0 0 0 0 0 1 4
1934 0 0 1 0 0 0 0 0 1
1935 0 2 0 0 0 0 1 0 3
1936 0 1 0 0 0 0 0 1 2
1937 0 1 0 0 0 0 0 1 2
1938 0 0 0 0 0 0 0 1 1
1939 2 0 0 0 0 0 0 1 3
3 6 2 0 1 1 1 7 21

[표 8] 1930년대 중역 여하와 번역태도

중 역 여 하 번 역 태 도
직접역 12 완역 축자역 10
일역의 중역 5 초역 2
영역의 중역 1 의역 1
미 상 3 축 역 2
미 상 6
계 21 계 21

21편 중 직접역이 12편이라면 비율로 보아 1920년대보다 월등히 양호해진 편이며, 이는 외국어를 전공한 이하윤 · 최재서(崔載瑞) · 임학수(林學洙) · 이헌구 · 박용철 등이 기여한 공적이다.

1940년대

1935년부터 감소 일로를 걷던 번역문학은 1940∼1945년 일제가 독일 · 이탈리아 이 외의 나라와 적대관계에 있던 관계상 번역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30년대에 228종이었던 잡지 수도 1940년대로 들어서면서 18종으로 줄었다.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암흑기적 현상이 식민지로서 더욱 극심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실태를 도표로 살펴보면[표 9] · [표10] · [표 11]과 같다.

[표 9] 1940∼1945년(광복 이전)까지의 잡지 게재분

연도\국별 기타
1940 15 7 9 2 7 4 44
1941 6 1 4 1 6 1 19
1942 0 0 1 1 7 0 9
1943 0 0 1 0 1 0 2
1944 0 0 0 0 0 0 0
1945 0 0 0 0 0 0 0
21 8 15 4 21 5 74

[표 10] 1940∼1945년(광복 이전)까지의 단행본

연도\국별
1940 4 2 2 0 1 1 1 11
1941 1 0 0 1 0 0 0 2
1942 0 0 0 0 0 0 0 0
1943 0 0 0 0 0 0 0 0
1944 0 0 0 0 0 0 0 0
1945 0 0 0 0 0 0 0 0
5 2 2 1 1 1 1 13

[표 11] 1940∼1945년(광복 이전)까지의 중역 여하와 번역태도

중 역 여 하 번 역 태 도
직접역 5 완역 9
일역의 중역 4 번안 1
영역의 중역 3 경개역 3
미 상 1
계 13 계 13

1942년 이후로 잡지 · 단행본을 막론하고 전무에 가깝다. 번역태도는 1930년대보다는 전진하고 있다.

1945년 이후

1945년 8 · 15광복 이후 1950년 6 · 25전쟁이 발생할 때까지 번역문학의 실태를 제시하면 [표 12] · [표 13] · [표 14]와 같다.

[표 12] 1945년(광복 이후)∼1950년(6 25)까지의 잡지 게재본

연도\국별 기타
1945 0 3 9 2 0 1 15
1946 4 17 18 6 4 5 54
1947 12 26 15 11 4 4 72
1948 15 41 16 9 2 13 96
1949 13 54 8 5 11 6 97
1950 12 62 1 15 7 2 69
56 173 67 48 28 31 403

[표 13] 1945년(광복 이후)∼1950년(6 25)까지의 단행본

연도\국별 기타
1945 0 0 0 0 0 0 0
1946 0 3 5 0 1 3 12
1947 5 1 10 0 0 2 18
1948 15 3 11 8 0 3 40
1949 6 13 9 1 2 1 32
1950 1 7 0 1 0 0 9
27 27 35 10 3 9 111

[표 14] 1945년(광복 이후)∼1950년(6 25)까지의 중역 여하와 번역태도

중 역 여 하 번 역 태 도
직접역 78 완역 78
일역의 중역 20 번안 23
영역의 중역 13 초역 10
미 상 0 미상 0
계 111 계 111

1945년 8 · 15광복의 환희는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분야에서 급증의 곡선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1948년을 정점으로 하여 1950년 6 · 25전쟁의 정치적 불안을 예상한 듯 다시 하강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중역 여하와 번역태도의 도표가 보여준 결론은 우리의 번역문학이 거의 내용 · 외형 병중의 정도에 도달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그 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어 다시 안정이 오는 것과 더불어 1955년부터 개화하기 시작한 때의 질보다 낮지 않았다는 것으로서, 결국 개화기 이후 50년간의 시련 끝에 우리의 번역문학은 그 정도상에 올랐다는 것이 된다.

[표 13]의 단행본 연표 중, 미 · 소의 대비는 27:35로 소련물이 단연 많다. 소련의 35편을 연도별로 분석하면 [표 15]와 같다.

[표 15] 1945년(광복 이후)∼1950년(6 25)까지 소련문학의 번역작품

연도 번 역 작 품 명 소 계
1945 0 0
1946 에세닌시집 심리학으로 본 인생의 행복(톨스토이) 이베 스타린(C.크리브쵸프) 강철(전편)(느오쓰뜨롭쓰끼) 문화와 정치:골키에게 보낸 레닌 서간집(니코라이 레닌) 5
1947 단편집첼카슈(골키) 나의 대학(골키) 문학론(골키) 문학의 본질(누시노프) 항복 없는 백성(상)(보리스 고르바또프) 인생의 행복(톨스토이) 종교란 무엇인가(톨스토이) 부활(톨스토이) 10
1948 첫사랑(투르게네프) 문학입문(비노그라도브) 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상 하)(빅톨 크라브첸코) OK(삘리냐크) 사람은 얼마나 땅이 필요한가(톨스토이) 예술사회학(프리이체)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톨스토이) 부활(톨스토이) 낮이나 밤이나(상 하)(콘스탄틴 씨모노프) 11
1949 유년시대(골키) 밤주막(골키) 고요한 돈(쇼로홉) 미국의 자유문학(벨리냐크) 구주문학발달사(프리이체) 글로스전원의 사람들(삐샤 인제리나) 쎄바쓰또뽈이야기(톨스토이) 창작방법론(문학논총서1)(로겐가리) 문학원론(문학논총서2)(누시노부 쎄이트린) 9
1950 0 0
35

위 표 중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를 제외한 15명이 소련의 작가 · 평론가들이며, 그로써 색깔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왕성했던 ‘붉은 문학’은 6 · 25전쟁 이후 이 땅에서 모습을 감춰버린다. 6 · 25전쟁 후 강력한 반공국가가 된 남한에서 ‘붉은 문학’은 완전히 소멸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문학의 완벽성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은 못 된다. 이러한 기형성은 언젠가는 소멸되고 우리 나라에서도 마음놓고 ‘붉은 문학’도 읽혀져야 한다. 6 · 25전쟁 후 우리 나라에서 번역된 세계 각국의 작품의 작가 수는 대략 4,500여 명에 이른다. 6 · 25전쟁 후부터 1980년대까지 얼마나 많은 세계 각국의 소설이 우리 나라에서 번역되었을까?

[표 16] 6 25전쟁 이후의 각 국별 번역작품 수

연 대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비 고
국별\작품수
영 국 128 246 782 627
미 국 192 332 1,158 1,409
프랑스 258 372 937 611
러시아 81 152 471 287
독 일 89 183 605 313
중 국 28 120 244 169
일 본 7 467 503 530 1950년대의 일본 7편은 일문학의 전부

[표16]은 1970년대가 우리 나라 번역문학 100년사 중 그 절정의 황금기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광복 전의 번역문학이 외형 · 내용 병중을 향한 노력의 흔적이었다면, 6 · 25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의 번역문학이 지향한 바는 번역문학의 완벽성(붉은 문학)으로의 전진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그 전초로서 1960년대 후반기에 제3세계 문학의 문이 열리더니 역시 1970년대에 가서 그 절정에 이르렀고, 그 여세는 1980년대까지도 쉬지 않다가 급기야는 중공과 소련과의 국교 수교에 이르러 우리와는 우방이 되었고, 그 문학은 과거의 인류의 유물이 인류의 문화재로 사랑받듯이 우리의 애호품이 되었다.

아직 그리 활발하지는 않지만 조심스럽게 베르톨트 브레히트 · 울리히 플렌쯔도르프 · 에른스트 블로흐 · 제루쥬 루카치 · 밀란 쿤데라 · 미하일 사도비아누 · 울라디미르 막시노프 · 막심 고르끼 · 빠진(巴全) 등의 작품이 1980년대에 번역되었다. 특히 1999년에 ≪브레히트선집≫ 전 10권이 한마당에서 역간되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로, 21세기가 되기 전에 우리의 번역문학은 그 완벽성을 성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현대번역문학사연구』 상·하(김병철, 을유문화사, 1998)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연구』(김병철, 을유문화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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