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나마(奈麻)였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고구려를 차례로 정복하고 삼국통일을 완수해 가는 시기에, 신라는 한반도를 공략하려는 당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이 때 신라는 고구려 부흥세력을 지원하여 당나라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한편 외교사절을 파견하여 당나라의 공세를 완화하려는 양면책을 사용하였다.
672년(문무왕 12) 9월 문무왕은 외교책의 일환으로 당나라에 외교사절을 파견하였는 바, 변산은 급찬(級飡) 원천(原川)과 함께 파견되었다. 이때 신라가 당나라에 대항하여 싸울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사정과 이를 사죄하는 것을 요지로 하는 글을 휴대하였다.
따로 신라가 억류하고 있던 당나라의 왕예(王藝)와 왕익(王益), 백제의 사마예군(司馬禰軍)과 사마법총(司馬法聰), 군사 170인 및 각종 공물(貢物)을 당나라에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