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2m, 너비 2.9m.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된 사천왕상일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이전에 제작된 유일한 상이기도 하다. 1539년(중종 34)에 처음으로 조상하였고, 그 후 1668년(현종 9)과 1777년(정조 1)에 중수하였다.
16세기 초에 제작된 이 사천왕상은 천왕문에 안치된 목조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세밀한 제작 기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전체적인 균형감과 함께 활달한 율동감은 이 작품의 우수성을 유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후로 만들어질 조선 후기 사천왕상의 전형(典型)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칼을 들고 있는 사천왕상이 일반적으로 긴 칼을 오른손으로 들고 있는 것과 달리 양손에 짧은 칼을 잡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얼굴은 굴곡이 없이 원통형으로 처리되었으며 눈동자에는 마노(瑪瑙)와 같은 광물질을 박아 처리하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으나 무서움을 주지 않는 온화함을 느끼게 한다. 화려한 보관의 높이가 얼굴의 길이보다 더 길게 강조되어 있다. 4위(位) 천왕의 팔꿈치 대의가 모두 심하게 말려 위쪽으로 올라갔으며 이것을 묘사한 기법은 천의 자락의 현란한 표현 기법과 더불어 이 작품의 우수성을 잘 보여 주는 면이라고 하겠다.
팔뚝이 신체 비례보다 강조되는 반면 가슴과 배 부분이 빈약하게 표현되었다. 보림사 사천왕 4위의 신체 구조는 팔꿈치에서 손가락까지만 변화가 있을 뿐 거의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목조사천왕상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팔뚝에서처럼 신체의 강건함을 강조하려는 듯 다리의 자세에서도 두툼한 질량감을 드러내고 있다.
3위 모두 왼쪽 다리를 들고 오른쪽 다리를 수직으로 내리고 있는데 용, 보주를 든 사천왕만이 두 다리를 아래로 내리고 있다. 현재 발밑의 악귀는 보탑을 든 천왕의 왼쪽 1구만 남고 모두 없어졌으며 4위 모두 발을 허공에 띄우고 있는 점을 보아 8구의 악귀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라남도 영광 불갑사의 사천왕상과 거의 흡사한 점으로 보아 불갑사상의 모본이 된 것으로 보인다. 1995년 2월에는 이 상의 해체 조사 작업 중 무릎과 발 등에서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국보급 희귀본을 포함한 전적류 250여 권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