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경주시 북천(北川)의 남안인 남천리(南川里)에 위치하였던 신라시대의 사찰인 봉덕사의 관리를 맡았다. 봉덕사는 원래 성덕왕이 증조인 태종무열왕의 추복(追福)을 위하여 건립을 시작하였으나 성덕왕이 죽자 효성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추복을 위하여 738년(효성왕 2)에 완성한 것이다.
여기에는 혜공왕 때에 완성된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 안치되었으며 왕실의 원당(願堂)의 성격이 강하였다. 관원으로는 처음에는 금하신(衿荷臣)·상당(上堂)·적위(赤位) 각 1인과 청위(靑位) 2인, 사(史) 6인을 두었다.
경덕왕 18년(759)의 관제개혁 때에 봉덕사성전은 수영봉덕사사원(修營奉德寺使院)으로, 금하신은 검교사(檢校使)로, 상당은 부사(副使)로, 적위는 판관(判官)으로, 청위는 녹사(錄事)로, 사는 4명이 감축된 뒤 전(典)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776년(혜공왕 12)에는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그뒤 애장왕대에 금하신은 영(令)으로, 상당은 경(卿)으로 개칭되었다. 각 관직에 해당하는 관계로는 금하신은 대아찬(大阿飡)에서 각간(角干)까지이고 상당은 나마(奈麻)에서 아찬까지이며, 청위는 사지(舍知)에서 나마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