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경주시 성동동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사찰인 봉성사의 관리를 맡았다. 봉성사는 685년(신문왕 5)에 신충(信忠)을 추선(追善)해서 세워졌으며 신인종(神印宗)의 강룡신앙(降龍信仰)과 관련이 깊다. 근래에는 신문왕 때의 봉성사가 경덕왕 때에 신충봉성사(信忠奉聖寺)로 중창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관원으로는 처음에는 금하신(衿荷臣)·상당(上堂)·적위(赤位)·청위(靑位) 각 1인과 사(史) 2인을 두었다. 759년(경덕왕 18)의 관제개혁 때 봉성사성전은 수영봉성사사원(修營奉聖寺使院)으로, 금하신은 검교사(檢校使)로, 상당은 부사(副使)로, 적위는 판관(判官)으로, 청위는 녹사(錄事)로, 사는 전(典)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776년(혜공왕 12)에는 다시 봉성사성전·금하신·상당·적위·청위·사로 원상복귀되었다. 그 뒤 금화신은 애장왕대에 영(令)으로 개칭되었다. 금하신이 될 수 있는 관계는 대아찬(大阿飡)에서 각간(角干)까지이고 상당은 나마(奈麻)에서 아찬까지이며 청위는 사지(舍知)에서 나마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