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서.
내용
관원으로는 처음에는 금하신(衿荷臣) · 상당(上堂) · 적위(赤位) · 청위(靑位) 각 1인과 사(史) 2인을 두었다. 759년(경덕왕 18)의 관제개혁 때 봉성사성전은 수영봉성사사원(修營奉聖寺使院)으로, 금하신은 검교사(檢校使)로, 상당은 부사(副使)로, 적위는 판관(判官)으로, 청위는 녹사(錄事)로, 사는 전(典)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776년(혜공왕 12)에는 다시 봉성사성전 · 금하신 · 상당 · 적위 · 청위 · 사로 원상복귀되었다. 그 뒤 금화신은 애장왕대에 영(令)으로 개칭되었다. 금하신이 될 수 있는 관계는 대아찬(大阿飡)에서 각간(角干)까지이고 상당은 나마(奈麻)에서 아찬까지이며 청위는 사지(舍知)에서 나마까지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황룡사구층탑지의 연구-성전과 정법전문제를 중심으로-」(변선웅, 『국회도서관보』 10·10, 1973)
- 「신라중대 왕실사원의 관사적 성격」(이영호, 『한국사연구』 43, 1983)
- 「신라통일기 성전사원의 구조와 기능」(채상식, 『부산사학』 8, 1984)
- 「新羅の寺院成典と皇龍寺の歷史」(浜田耕策, 『學習院大學文學部硏究年報』 20,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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