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각 고을에서 생원·진사들의 수학(受學)을 위해 설립한 학교 기구.
사마소의 등장
사마소는 조선 초기부터 건립 사례가 보이지만, 각 고을에서 자율적으로 설립하였기 때문에 사마소의 설립 시기는 고을마다 달랐다. 생원 · 진사들의 배출 정도나 지역 사회와 수령의 관심과 지원 여부에 따라 설립이 결정되었다. 연산군 대에 사마소가 조정의 이목을 끈 것에 비추어 보면 이즈음에는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은 수가 설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마소의 쇠퇴와 중건
그런데 숙종, 영조, 정조 대에 이르면 다시 각지에서 사마소를 중건하고 고을 출신의 역대 생원 · 진사 명단을 기록한 사마안(司馬案) · 사마록(司馬錄)을 작성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지역에 따라서는 생원 · 진사의 명단인 사마안을 확장하여 문과 급제자도 함께 수록한 연계안(蓮桂案)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사마소의 성격
중건된 사마소는 양반층의 신분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이 시기에는 양반들이 향촌 사회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고 그 사회적 위상이 하락하였다. 또 고을 유력 양반들의 명부인 향안(鄕案)의 작성이 중지되고, 서원이 문중 기구화하는 등 내부에서도 균열이 발생하였다. 이 가운데 양반들은 사마소를 중건하고 과거 합격자와 그 후예라는 이력을 내세워 지배 신분으로서의 위상과 사회적 지원을 보장받고자 하였다. 기존의 유향소와 향안을 대체하여 사마소나 사마안, 연계안을 양반들의 기구와 명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 때의 사마소와 사마안 · 연계안은 과거 합격자라도 서얼이나 향리 등 비양반층 출신은 배제하는 신분적 폐쇄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사마소의 가입과 사마안 · 연계안의 입록을 둘러싼 분쟁들이 발생하며 사마소나 사마안도 치폐를 거듭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명종실록(明宗實錄)』
단행본
-윤희면, 『조선시대 사마소와 양반』(한국사학, 2019)
논문
- 김준형, 「조선 후기 진주 지역 司馬所의 연혁과 성격」(『남명학연구』 22, 남명학회, 2006)
- 윤희면, 「慶州 司馬所에 대한 一考察」(『역사교육』 37·38, 역사교육연구회,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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