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홍제암은 해인사 일주문의 서편 2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명대사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이곳에서 은거하다가 1610년(광해군 2)에 입적하자, 광해군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시호(諡號)를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 내리고, 그의 비를 세우게 했다고 한다.
홍제암의 경내에는 모두 7기의 탑과 비석이 건립되어 있는데, 사명대사의 비와 탑도 이 중 하나이다. 비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춘 높이 3.1m의 규모인데,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에 비문의 내용이 한국인의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하여 당시의 경찰서장이 이 비를 네 조각으로 부수어 길가에 방치하였다고 한다.
광복 후 사찰의 스님들이 방치되었던 비편을 명월당(明月堂)에 모아놓았고, 1958년에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비문은 당대의 석학 허균(許筠)이 써서 1612년(광해군 4)에 건립하였다.
비석에 표현된 양식적 우수함과 더불어 사명대사에 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사료적 가치 또한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탑은 높이 1.3m 규모의 석종형부도(石鍾形浮屠)이다.
방형의 기단 상면에 높직한 원형 받침을 마련하고, 상면에 보주(寶珠)가 표현된 석종형의 탑신을 놓았다. 비와 탑은 건립연대가 확실하여 다른 석조물의 연대추정에 근거를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식적인 면에 있어서는 17세기 초반에 유행되던 석조미술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